제1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5929


훨훨 날아가 버리려는 연(鳶), 그러나 끈질기게 묶는 연-<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부산 남성여고 2학년 박선빈

 

  

 

1973년 아프가니스탄.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자히르샤의 40년 통치가 막을 내린다. 그 후에도 미.영 합공에 의해 2001년 탈레반 정부가 무너지기까지 아프가니스탄에 불어 닥친 역사의 소용돌이는 끔찍할 만큼 가혹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 비극적인 역사는 그 드라마틱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영화나 책으로 재현되었다. <연을 쫓는 아이> 역시 이 비운의 역사에 깊이 가담한다. 아미르와 하산의 감동어린 우정, 이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적 비극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종교나 인종 등의 외적인 조건은 너무나 달랐지만 두 사람은 한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고 소년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한 몸과 다름없었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우정은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아미르가 연 날리기 대회에서 자신을 위해 파란색 연을 쫓아가다 곤경에 처한 하산을 보고도 두려움에 이기지 못해 외면하는 그 순간 까지. 결국 그 일로 인한 죄책감을 벗어 던지기 위해 아미르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쫓아낸다. 

 

작가는 여기서 두 사람의 결별을 통해 연의 의미를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아프가니스탄을 하나로 묶는 대안을 말없이 제안하면서 말이다. 하산과 아미르가 파란색 연줄을 끊어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곧 이 두 사람에게 연은 '영원히 끊을 수 없는 끈'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 의미가 전쟁으로 분열된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연은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를 마음껏 과시한다. 그러나 연줄은 어떠한 경우에도 연을 '끈질기게 묶는'다. 이러한 연의 의미와 관련지어 본다면, 하산과 아미르의 이별은 결코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연은 분열된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의 징후를 소리 없이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산과 아미르가 힘을 합쳐 파란색 연의 줄을 끊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불행한 역사에 저항하고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느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소망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파란색 연을 쫓던 하산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를 구하지 못한 아미르가 결국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해 그를 집에서 쫓아내기 때문이다. 연이 두 사람을 언제나 이어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늘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함께 하지만, 언제나 인종과 종교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둘이 헤어진다는 것은 전쟁 중의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아프가니스탄의 황폐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은 이러한 아미르와 하산의 비극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바로 아미르의 아버지인 바바의 불행이다. 아미르에게 미국은 과거로부터 잠깐이나마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바바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카불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던 바바는 미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아프가니스탄을 그리워한다. 마치 연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어떤 특정한 점을 향해 날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는 이러한 그리움으로 위궤양을 얻고 몸도 많이 허약해진다. 끝내 미국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카불식을 고집하는 바바에게서 전쟁으로 인해 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바바의 죽음은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비극의 절정이다. 결코 묶일 수 없는 연, 그래서 영원히 그리워만 하는 삶, 그리고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러한 비극의 밑바닥에서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또 다시 연이다. 아무리 멀리 날던 연이라도 실패를 감으면 되돌아오듯 30여 년이 흐른 후에 연은 하산의 아들인 소랍과 아미르 두 사람의 마음을 다시 묶는다. 아미르는 하산을 외면한지 30여 년이 지나서야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고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고 다시 좋아지기 위해 아미르는 과거의 나약함을 던져버리고 카불로 향한다. 

 

결국 소랍을 구해내고 입양해 미국으로 함께 가지만 그 과정에서 소랍은 웃음도 말도 잃는다. 그런 소랍이 다시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연이다. 아미르와 소랍이 함께 녹색 연을 끊고 아미르는 하산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라고 말하며 연을 잡으러 간다. 연을 날리는 동안 소랍이 보여준 미소는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한 줄기 희망을 나타낸다. 함박웃음도 아닌 입 한쪽으로만 짓는 미소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앞으로의 ‘역사에 환한 빛이 될 씨앗’인 셈이다.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하산의 아들이며 그를 너무나 닮은 소랍이 아미르와 연을 날리며 교감함으로써 아미르와 하산은 재회한다. 

 

연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의 상징이기도 한 연, 그러나 소설<연을 쫓는 아이>는 궁극적으로 연의 의미를 ‘희망으로 귀착’시킨다. 이는 소설의 말미에서 선명하게 포착된다. 아미르와 하산이 한 핏줄, 혈육이라는 사실은 바로 이를 증명한다. 수많은 시련을 거치며 먼 길을 둘러오기는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피로써 묶인 하나의 존재와 같다. 작가는 연이 필연적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듯 서로 다른 이념이나 사상으로 싸우더라도 결국 다 같은 한 핏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 사실이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올 수 밖에 없는, 꼭 평화를 찾아야만 하는 가장 첫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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