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체에게 부치는 편지 -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읽고
해운대구 반송2동 한명주
글쎄,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내가 태어날 즈음 한줌의 재로 스러져 간 당신이지만 아직도 늘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람이기에 그냥 친구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체’라고 부를게요.
사실 당신을 처음 만난 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쿠바혁명에 관한 책을 읽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땐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른 체 권장도서 목록에 자주 오르는 당신이 누굴까 궁금하기도 하고 검은 베레모로 상징되는 당신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끌리기도 해서 책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땐 당신 배낭의 존재조차 모를 때였고 혁명가로서의 모습만 부각된 터라 별다른 감흥은 없었어요.
80년대의 한국 상황과 맞물려 당신의 혁명을 주의 깊게 생각했다는 정도였어요. 그것도 잠시,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이방인은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졌고 서민으로서의 나의 평범하고 나태한 삶 속에 거의 잊고 지냈죠. 그러다 얼마 전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이 책이 눈에 띄었고 당신의 배낭 속이 궁금해져 책을 펼치게 되었죠.
아, 이런... 나의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았어요! 그 유명한 일기와 함께 당신의 편린들이 담긴 메모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네 명의 시인(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흐,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들의 앤솔러지라... 참 당신다우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이죠. 혁명가와 시(時)라니. 워낙 나에겐 생소한 시인들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네루다의 서정적인 시가 좋았습니다.
오늘밤 난 쓸 수 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예컨대 이렇게 씁니다/밤은 별들 총총하고/또 별들은 멀리서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스무편의 사랑의 시 中) 청년시절 남미를 여행하면서 암송하던 시이니 이런 류의 시가 마음에 와 닿았겠죠.
당신이 남긴 시들은 당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마추픽추를 노래하는 대목에서는 나조차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나와 함께 오르자 아메리카 사랑이여/함께 비밀스러운 바위들에 입을 맞추자/우루밤바 강의 쏟아지는 은이/그의 노란 잔 위로 꽃가루를 날리게 한다~~
당신이 꿈꾸던 품위 있는 죽음의 이미지인 나무 등걸에 편하게 기대 앉아 시를 필사하는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합니다.
체, 많이 외로웠나요? 아님 불안했나요? 그래서 긴장된 마음을 달래고 여유를 찾고 싶었나요? 당신의 시는 마음의 고향 같은 의미일 테니까요. ‘난 많이 좌절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염세주의에 빠진다. 정체성을 찾고자 마테와 시 몇 줄로 마음을 달랜다’던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나도 한때 열심히 시 나부랭이들을 끄적이던 때가 있었어요. 그땐 참 삶이 암흑 같고 외롭고 불안했었거든요. 무언가 붙잡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갈망 또한 가득했죠. 애정이 없으면 시를 쓰거나 읽지 못하죠.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엄습해오는 천식의 고통을 참아가면서 69편의 시를 옮겨 쓴다는 건 자신의 신념에 강한 믿음을 부여하고 싶어서였겠죠.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민중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책임감을 다잡기 위함이기도 했겠죠.
체, 난 당신이 내내 안타까웠어요. 아르헨티나 부르조아 출신으로 태어나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혁명가로서의 고단한 삶에 뛰어들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다니! 물론 당신의 자유분방한 영혼이 평범한 삶을 거부 했을 테지만 또 어릴 때부터의 열렬한 독서와 여행이 당신의 눈과 귀를 뜨게 하고 인간회복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 했겠죠.
하지만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에 심취해 급진적 개혁가로 변신하게 되는데 꼭 그 방법만이 옳았는지는 전 아직 잘 모르겠네요. 혹 모험심이나 승리감에 사로잡혀 부질없는 행동은 않았는지요. 워낙 무력이나 폭력을 혐오하는 제겐 게릴라전의 행태는 무척이나 경계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이네요. 무력은 또 다른 무력을 부를 뿐이니까요. 뭐 그때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요. 다행히 곳곳에 묻어나는 인간적인 고뇌,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 마음이 조금 놓이긴 합니다. 당신이 필사한 시의 대부분도 호전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니까요.
체, 이쯤에서 여자의 입장으로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가족은 어떤 의미였나요? 가족을 상쇄 할 만큼 민중해방에 대한 책임감이 더 강했나요? 일종의 영웅심리 아니었나요? 그럼 가족은 또 하나의 희생자가 아닌가요? 당신의 여성관, 딸에게 보내는 애정만 보더라도 가족을 소홀히 할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하지만요. 민중을 위한 더 큰 대의라구요? 하긴 콩고를 떠나기 전 남긴 시(時) 영원일 수도/순간일 수도 있는 사랑/다시 사랑하기 위해/자유로워지는 사랑~~ 에서 알 수 있죠. 지금이라도 당신이 즐기던 마테 한잔 앞에 놓고 밤새워 토론하고 싶어지는 대목이네요. 어쨌든 이 책에서는 당신의 혁명적 모습만이 아닌 인간적 고뇌와 심리상태까지 옆에서 보는 듯 느낄 수 있어서 당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 책으로 하여금 당신을 많이 알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도 살짝 해야 할 것 같아요. 근래 당신이 다시금 재조명되면서 당신이 혐오하던 미 제국 주의 내에서조차 당신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데 대해 상당히 불쾌하시겠지만요.
체, 들리세요? 당신의 시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당신에 관해 재잘대는 소리가...
당신의 배낭은 결코 홀쭉하지 않았어요. 민중해방을 위한 사랑과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20세기 한 위대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메아리는 영원히 울릴 겁니다.
편히 잠드세요.
Chapter
- 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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