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영광독서 감상문
<어린왕자>를 읽고
<어린왕자>를 읽고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 박윤태
책처산자 <冊妻山子>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며 매주 산행을 하는데, 무박 산행에서 보는 밤하늘에 펼쳐진 끝모를 별들의 풍경에 황망하여 어디를 보아도 두렵고 막막할 때가 있다.그러나 허리를 굽혀 우주 공간으로 손을 길게 내뻗으면 별가루들이 손바닥을 간지럽히며 묻어날 것 같기도 하고 빙긋이 웃고 잇는 별들이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듯 하건만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나는 이 작고 희한한 행성에서 우스꽝스럽게 길들여져 온 미물에 불과하기 떄문이다.그래서 별은 인간에게 있어서 유토피아이면서 추억의 고향인 것 같다. 김 동민은 '무지개'에서 인간의 허망한 욕심을 무지개를 잡으려는 소년의 일생으로 묘사 했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잇어서 별은 무지개보다 훨씬 우월한 이상향의 대상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는 범할 수 없는 지고한 사랑을 노래하는 별을 볼 수 있고, 황 순원의 '별'에서는 꾸밈없는 순박한 동심과 고향의 서정을 읊는 별을 발견할 수 있다. 견우니 직녀니 하는 이름과 온갖 전설과 신화를 별에게 부여한 것도 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동경심 때문이다.
생 떽쥐페리의 "어린 왕자" 역시도 별을 오가는 것으로 선택한 것도 적잖은 그러한 인간의 감정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그리고 이 책은 언제나 추억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는데, 꽤 오래 전에 트리폴리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던게 아직껏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어린 왕자' 때문이다.
그때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하라 사막은 수경을 쓰고 맑은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맑고 고요했다. 한참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잘 다듬어진 모래밭 위로 불시착이라도 하듯 한 두번 뒤뚱거리다가 사뿐히 내려 앉았다. 사막이 거기에 있었고, 나는 사막위에서 비행사처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가다메스 신공항건설을 위해 머무르고 있던 동포들을 만났을 때, 난 무인도에서 구조선을 만난것처럼 반가웠다. 마침 신정 연휴라서 난 그들에게 사막 구경을 부탁했고, 곧이어 우리는 약2백여리에 걸친 여행길에 올랐다.나는 도중에 말로만 듣던 신기루도 보았고, 거대한 모래산맥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책에서 읽었던 소혹성들이 사막 위에 별처럼 흩어져 있는 풍경이었다.
몇십만년전 바다였던 이곳, 이제는 바다의 흔적만을 목걸이처럼 띠로 두르고 있는 작은 섬들, 그들이 바로 혹성이었다. 물이 빠져나간 작은 섬들 사이로 나는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어떤 아이가 나타나 그대들을 향해 미소를 띄우면... 그애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를 보내주세요." 하는 작가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어린 왕자의 목소리 같기도 한... 그러나 어린 왕자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죽어있는 사막, 그러나 장미꽃과 여우 달팽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자가 지금껏 떠나고 있지 않은 사막, 나를 이 사막 한가운데로 불러 들인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내게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준 하나의 마술이었다.
사막은 죽어있음으로 해서 살아있는 것들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드는 법.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떨어진 사내,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직업을 갖게 된다. 모래 언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사막.끝없이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털어내며 비행기를 고치던 사내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망토를 걸친 어린 왕자를 만난다. "아저씨, 나 양 한마리만 그려줘"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하며 수줍은 듯 부끄러운 미소를 짓고 마침내 사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이 소혹성 B612호에서 왔다는 어린 왕자. 그의 별에는 커다란 바오밥 나무가 있고, 자꾸만 화를 내는 장미꽃이 있다. 자신이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늘 투정만 부리는 장미꽃을 견디지 못해 여행을 떠난 왕자는 지구에서 한 무더기의 꽃을 보고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그것은 수많은 장미꽃들.자기의 별에 있는 단 하나의 꽃인 줄만 알았던 어린 왕자는 이제야 그 꽃이 흔하디 흔한 꽃 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 왕자의 곁에 한마리의 여우가 다가온다. 그리고 여우는 어린 왕자를 달래며 보석 같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울지마 꼬마야. 너는 정말로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장미꽃을 가진거야. 왜냐하면 너는 장미꽃에게 길들여져 있거든. 나는 이 세상에 사는 수없이 많은 여우 중의 하나이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한마리의 여우가 되는 거야."
길들여진다는것, 만일 그가 네시에 온다면 세시부터 마음이 설레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는 것.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듣고 두고온 장미꽃을 생각한다. 내가 정말 그 꽃에 길들여졌을까. 꽃도 지금쯤 내 발자욱 소리를 그리워 할까. 여우는 떠나간다.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며 그들은 비록 헤어졌지만 여우와 어린 왕자는 어느새 '서로를 길들인 사이'가 된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듣던 사내는 작은 감동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이제 이별의 시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어린 왕자가 두고 온 장미꽃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사내를 위해 우물을 찾아준 어린 왕자는 그가 잠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사내는 오래 슬퍼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으므로... 그라 바라보는 하늘 어딘가에서 어린 왕자가 웃고 있을테고, 이제 사내는 '웃을 줄 아는 단 하나의 별'을 가지게 되었으므로.이처럼 이 책은 '관계의 소중함'을 말해준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에서 단 하나만을 바라보면 그것은 쉽게 내 마음의 별이 된다.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그렇게 되던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단 하나의 사람은 너무도 쉽게 내 곁을 떠나가고, 어렵게 서로를 길들인 우리의 많은 관계는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곤 한다. 미성년의 껍질을 벗고 울타리 없는 성년의 세계에 서게 되는 순간부터는 순수하다는 것은 차라리 커다란 약점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선가에는 아직도 마음 속에 등불을 켜고 '따스한 길들임'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어린 왕자처럼 그런 믿음마저 없다면 삶은 너무도 허탈할 것이다. 끈적한 땀이 마음 속으로까지 흘러들어 잠깐 잠들어도 나쁜 꿈만 찾아오는 여름밤이나, 무박산행길에 잠을 설친다면 아예 밖에 나가서 하늘의 별을 실컷 바라보노라면 '나'라는 자그마한 물체를 우주공간으로 힘차게 다시 튕겨 보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우주공간은 끝이 없을 것이다.
만약 우주의 끝이란 곳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먼 거리에 그 엄청난 크기에 놀라 혼절해 버릴 정도의 신비한 무엇으로 가로막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바깥은 또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이렇듯 우주공간이 온통 신비스러움으로 가득차 있는데도 우리의 탐요과 집착이 어디에서 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짧고 허망하며 물욕과 빈심 또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집착에 지나지 않는지는 맑은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보면 금방 깨닫게 되지만 날이 밝기가 무섭게 우리는 다시 그 어리석은 획득의 전쟁에 숙명적으로 몰입하게 되고, 때로는 철저히 타락하고 추악해질수록 영웅으로 찬양되기도 한다.
집착으로 인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힘들게 허비하여 왔으며 무가치한 대상을 진실로 경배하는 어리석음을 더하여 왔던가. 우리는 스스로를 다독거려 우주질서의 존재의미대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기껏 타인을 제어하고 무너뜨림으로써 독선적 욕망을 쟁취할 수 있는 교묘한 방법과 이기적 행동에만 골몰하여 왔다. 그것은 결국 서로를 겨누는 화살과 포탄이 되어 우리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부정적 울타리속으로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여 오늘날 이 우스꽝스러운 행성을 건설하고 말았다.
밤하늘의 별과 어린 왕자는, 결코 위대하다거나 현명한 적이 없는 아둔한 인류의 보잘 것 없는 용기와 정의, 과학과 사상이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왜소하고 하찮은 것인가를 조롱하고 있다. 무변광대 영겁의 우주에 비하면 한줄기 장대비에 떨어지는 푸른 낙엽 갚은, 아침 바다에 문득 피었다 사라지는 물안개 같은 우리네 찰나의 삶에서 노심초사할 일이 무엇이며 기고만장할 것은 또 무엇인가.그까짓 것들을 다 훌훌 털어 버리라고 타이르는 듯한 소혹성 B612호.
심심해서 턱을 고이고 엎드린 채 멀리 지구의 지붕들을 바라보던 어린 왕자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신나게 손이라도 흔들어 줄 것 같아서 오늘밤도 신비스럽고 거대한 허공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기도 싶거니와, 까나리 액젖이나 포도주처럼 숙성과 원숙의 해탈을 꿈꾸며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엎드려 침잠하고도 싶다. 그곳은 낙엽이 등에 쌓이고 겨드랑이로 새풀이 돋아나는 어느 외진 혹성의 깊은 숲 속 호젓한 곳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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