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291

 

그래, 살아갈 희망은 있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금정구 청룡동 임인숙

 

 

 

장영희 선생님! 

당신은 말했지요.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 아끼는 마음으로 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 누군가 그 죽음을 진정 슬퍼해 주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고 (p208 좋은 사람에서) 

나는 영광도서 독서 감상문을 쓰기 위해서 선생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택하고 당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집니다. 산다는 것은 정말 이런 건가 봅니다. 점심시간이라서 콩나물국에 만 밥과 김치 한 보시기를 마루에 널어놓고 먹으면서 선생의 장례식 이야기와 많은 조사들을 읽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들 말합니다. 

 

나는 2002년에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에게 빠져서 그 분을 살아생전 만나지 못했음에 눈물지었었는데, 이제 또 당신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고 나의 필치가 둔해 맘만 먹고 쓰지 못하는 내 이야기를 두 분 선생이 책으로 엮어준 것만 같아서 마치 내 살붙이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신이 생전에 잊고 싶어 했던 암환자 장영희, 장애인 장영희였기에 이 글을 쓰기가 더 편해졌습니다. (p178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에서) 

1998년 7월 생각지도 않은 유방암이란 불청객을 만나 투병 5년 만에 극심한 생활고로 온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 2004년엔 그 스트레스로 두 번째 암수술을 받고 여성의 상징인 젖가슴 두 개를 다 도려내었지요. 겨드랑이의 림프샘까지 파내고 나니 양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고, 아직도 이런 저런 아픔으로 병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 

당신의 투병얘기가 고스란히 담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내가 겪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병상에 누워서 내가 빠져 있는데도 지구는 잘 만 돌아가는 것에 대한 박탈감,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려서 보쌈을 먹는 TV 속 남자가 부러웠던 일, 살아가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하면서 김종삼 시인의 ‘어부’의 한 구절이 뼛속 시리게 다가온다.”는 이야기들이. (p124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내 졸필로 쓴 병상에서의 시 한수를 옮깁니다. 

 

<초조> 

창 너머 솔숲에서 바다 내음새가 난다./잔바람에 출렁대는 솔바다는/나를 잠재우기보다는 온통 끌어안고 싶어/솔바람으로 갯내음을 콕콕 찔러 보낸다.//그러나 정작 솔숲에는 내 마음을 털어 낼 물파래도 없고/내 꿈을 담을 조가비도 없이/솔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파고들어/바다를 그리워하는 나를 비벼대며 서 있다.//솔향기가 잠시 나를 어지럽게 붙잡지만/응급실 침대가 관 속 같은, 나를/더 이상 안지 못하고 안타까이 울고 있다./울고 있다.//언제쯤이면 그 바다로 갈 수가 있나./엄마처럼 나를 숨겨 줄 그 바다에 언제쯤 갈 수가 있나./죽는 것 보다 사는 것이 더 힘겨운 몸뚱이를/달콤한 잠 같은 그 물결 위에 뉘일 수 있나.//밤이나 낮이나 솔숲 위에서/바다에 가고 싶다고 속 소리로 외쳐대지만/솔바다는 진짜 나의 바다인양 파도만 칠뿐 듣지 못한다./듣지 못한다.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사회가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 단지 신체적 능력만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비장애인들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p178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에서) 그러나 정작 장애인들은 말하고 노력합니다. “이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보통사람들처럼 되자”고. TV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서 시각장애인이면서 두 눈 있는 사람 뺨치게 농사를 잘 짓고, 붉고 푸른 고추 골라내는 일에서부터 재봉틀 돌려 바지 깁는 것까지 못하는 일 없는 시골의 한 할머니가 그랬지요. “사람은 한 곳을 못 쓰게 되면 남은 아홉으로 살아가게 마련인데 다만 사람들이 그 남은 아홉을 쓰지 않을 뿐이다.”라고. 

어쩌면 ‘장애인’이 완전히 장애인으로 남는 것은 스스로가 장애인이라는 굴레를 벗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가 아닐 런지요? 

 

장영희 선생! 

당신은 남의 이목보다는 자신의 가치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은 어리석고… 정말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다.”(p117내가 살아 보니까에서) 정녕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기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제일 먼저 걱정합니다. 

목욕탕에서 젖가슴이 없는 것이 부끄러워서 수건으로 가리고 마치 죄인인양 구석자리만 찾아 온 나, 이처럼 환자로 취급당하기는 싫어하면서 정작 환자 대접을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 땐 온갖 세상사를 혼자 다 떠메고 가야 하는 양 엄살 부린 나를 부끄럽게 하는 말입니다. 

 

당신은 “유명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면서도 정작 유명한 선생이 되고 싶기도 하다.”(p208 좋은 사람에서)고 마치 앞을 내다보기라도 한 양 말했지요. 

‘그는 참 맑은 사람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남에게 감동을 주었다, 희망 전도사로서 언제나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사랑과 기적과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자신의 장례 때 수고할 제자들의 수고비를 챙겨 두고 간 사람’ 등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장영희 선생, 당신은 둘 다 이루셨네요. 

저는 아이디(ID)가 ‘좋은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뿐이지 정녕 선생의 말처럼, 남을 좋아해 주고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 등의 작은 기적을 이뤄낼 생각을 실천하지 못하고 삽니다. 언제나 내가 제일 어려운 것 같고, 나의 삶이 가장 피폐한데 누굴 도울 수 있겠는가 변명하지요. 

나는 나중 어떻게 기억될 런지요. 

캐서린 하이드의 ‘미리 갚아요’라는 영화 이야기는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도 저자처럼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기에 고맙고 갚아야 할 빚이 너무도 많은데 미리 갚기는커녕 받은 만큼이라도 돌릴 수 있을까가 걱정이 됩니다. 

 

“내가 살아 온 일들이 다 희망의 힘이라고, 너무 떠들어서 나쁜 운명을 깨운 건 아닌 가 걱정하면서도 그 힘을 믿기에 희망을 크게 말하며 살아 온…” (에필로그에서) 장영희 선생! 

당신의 책을 읽고 다시 살아갈 기적을, 희망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꿈도 못 꾸었던 기막힌 축복이 되었는지요? (p178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에서)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p37 마음속의 도깨비) 라는, 당신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세상의 비바람에 주눅 들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내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저도 ‘20년 늦은 편지’에서처럼 그렇게 인사 할게요. 

내일(훗날) 만나요. 

 

                                                                                    이천구 년, 시월도 다 간 스무 이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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