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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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당신에게 -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국제고 2학년 김가현

 

 

 

누구든 한 번쯤은 연을 날려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게 된 당신도 어린 시절 한번쯤은 연을 쫓아 달려 보았겠지요. 오늘 우리가 이야기 할 연은 저 서역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미국의 하늘에 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심한 몸살을 앓아야 하나 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지만 어머니가 없는 어린 아미르의 꿈인 ‘연’은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하는 것입니다. 하산은 듬직스러운 하인이자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온화한 친구입니다. 하산은 늘 아미르의 곁을 지킵니다. 열두살의 어느 날, 아미르는 하산의 도움으로 연 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하여 아버지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꿈을 실현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미르는 최고로 기뻐해야 할 그날, 포악한 아세프에게 강간당하는 하산을 외면합니다. 이후 아미르에게는 승리의 전리품인 연도, 그 연으로 얻은 아버지의 관심과 애정도, 바라보기조차 괴로운 대상일 뿐입니다. 이 책의 나머지 이야기는 비인륜적인 행태에 모멸당하는 아미르가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손에 넣은 ‘연’이 그를 중년에 이를 때 까지도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그리고 글짓기와 사랑하는 아내 소라야로 나타나는 자신의 새로운 연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리고 자신이 등 돌린 진실과 양심을 어떻게 다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미르의 이야기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꿈(아미르에게는 아버지의 애정이겠지요)을 찾으며 양심(아미르에게는 하산)과 갈등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외면한 진실(아미르에게는 하산의 아들인 소랍입니다)을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거치는 통과 의례입니다. 

어린 시절 아미르의 연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의 연은 아버지를 닮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강한 우상이었습니다. 아미르가 자신의 연을 자신이 겁쟁이라는 진실을 알아차리며 놓아버린 것은 열두살, 내가 나의 연을 놓아버린 것은 열네살 때였습니다. 내가 받아들여야 했던 진실은 ‘약한 아버지’였습니다. 당신께 쓰는 이 편지에 구체적으로 적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허황된 곳에 돈을 바닥까지 긁어 쓰고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눈물 흘리는 어머니에게 하는 약한 아버지. 내 앞에서는 다시 강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나의 일그러진 우상. 그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토록 어려웠습니다. 나의 우상은 무결한 존재여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야했습니다. 내 안의 하산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이라고 말입니다. 끔찍한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 소년 가장이었던 아버지.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게는 돈을 쓰는 행위가 감히 바라보지 못할 하나의 ‘연’이자 콤플렉스였다는 진실을 어느 순간인가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그 연보다 더 높이 떠서 날고 있는 ‘연’이자 아버지 곁의 하산이 바로 그의 딸인 나 자신이라는 진실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쫓고 있는 연이 과연 아름다운 것인지, 그리고 그 연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무작정 달리기만 해서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 곁의 하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겠지요. 하산이 인도한 진실 앞에서 등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놓인 연을 바라보며 함박웃음 지을 수 있겠지요. 

 

이제는 당신과 아미르와 하산이 뛰놀던 들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들의 들판인 아프가니스탄에는 아미르가 속한 파쉬툰인과 하산이 속한 하자라인이 화합하지 못하고, 파쉬툰인이 하자라인을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언덕에 소련군은 침공해서 들판을 들쑤셔놓고, 그들이 물러간 뒤에는 탈레반이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들판의 모든 이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과연 우리와 먼 곳의 이야기이기만 할까요. 우리 학교의 이야기를 당신께 들려주고 싶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부산국제고)에는 스무 명 가량의 외국인 학생들이 있습니다.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출신의 친구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들이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려고 찾아올 때는 한국인 친구들과의 따뜻한 교류같은 것을 어느 정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현실 속 우리 학교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사회를, 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인 학생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뚜렷한 큰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급식에서 말고기나 양고기가 나오지 않는 다는 불평하는 그들을 우리가 이해하기에, 또 시험기간이면 일주일씩 밤샘 공부하는 우리를 그들이 이해하기에 우리 간의 거리는 너무도 멀기만 합니다. 남녀 공학인데다가 기숙학교여서 학우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긴 학교이기에 교내 이성교제 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는데, 한 번도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간의 이성교제는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개교 한지 10년도 넘었는데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인종 갈등이 전쟁이나 물리적인 압력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산이 속한 하자라인들이 아미르가 속한 파쉬툰인들에게서 많은 상처를 입었듯이, 탈레반들이 비 탈레반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듯이,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상처를 입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이 너무도 여러 번 들었을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과는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결혼 이주 여성들,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 외국인 교수들. 이들 모두가 현재 한국의 얼굴들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해가 달구어지고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거든, 나의 연을 찾아 달리는 나의 들판에 한번쯤 당신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의 연을 쫓는 데에 당신이 나를 도울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우리 반 중국인 친구인 우비와, 우비에게 홀딱 반해서 우리 반에 매일 놀러오고는 하는 카자흐스탄의 쉐르한이 우리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드는 것을 서툴게나마 돕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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