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295

 

파란만장한 그들의 시간 속에서 핀 라일락 -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국제고 1학년 박기옥

 

 

 

아미르와 하산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이었다. 친구들은 마지막 기말고사를 무사히 치르고 저마다 고등학교 원서를 준비하기 위해 부산을 떨고 있었다. 그 때, 난 이미 고등학교가 결정이 났었기 때문에 한층 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그 여유로움에 취해 나른한 겨울 햇살이 비추는 학교 도서관에 찾았고 우연히 이 책에 손을 뻗었다. 상당히 매혹적인 푸른 하늘 아래 어깨동무한 두 아이들에게 이끌려 책을 골랐는데, 그 내용은 더욱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1975년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뀐 아미르, 그리고 그와의 시간 속에서 나의 2008년 겨울은 눈물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어릴 적, 아미르는 신흥 부촌인 와지르 아크바르 칸에서 살았다. 그는 카불에서 손꼽히는 부자였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바바의 외동아들이었고 알리와 하산이라는 하자라인 하인들도 있었다. 알리와 바바가 함께 자랐듯이 알리의 아들 하산과 아미르도 같은 유모의 품속에서 자랐다. 그들은 형제와도 같이 뛰어놀았고 어린 시절을 늘 함께 했었다. 그러나 때때로 아미르의 숨겨진 심술은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문맹이었던 하산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척 하며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산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기도 하며 자기가 쓰지 않거나 부서진 장난감들만 주는 그를 보며 얄미웠다. 또한 그가 하산에게 해주는 이 모든 것들이 하산을 위한 큰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위선이라 느꼈다. 파쉬툰 인이자 부자인 아미르에게는 하자라인보다 더 낫다는 자만심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바바의 아들인 그가 때론 큰 인심을 쓴다는 듯 하인인 하산과 놀아주는 걸 보며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거울을 보듯이 그와 난 닮아 있었다. 사촌들 중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를 가진 오빠가 한 명 있다. 사촌들 중 난 공부도 가장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체를 가졌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사촌 오빠를 무시하곤 했다. 내 앞에는 반듯한 길이 놓여있고 오빠의 눈앞에는 가시 덩굴이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오빠를 보며 모든 걸 가진 내가 그와 웃으며 대화한다면 그에게 큰 행복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오빠를 기다려주며 난 착한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오빠와 눈을 마주친 적 없었고 손도 잡아주지 못했다. 난 아미르와 같이 자만심에 한껏 부풀어 올라 바보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뀌게 될 1975년 겨울, 연날리기 대회가 열린다. 아미르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리고 하산은 아미르와 겨루다 끊어진 마지막 연을 쫓으러 간다. 하산은 연을 빼앗으려고 하는 아세프의 무리를 만나게 되고 연을 지키기 위해 성폭행을 당한다. 아미르는 그 장면을 보았지만 겁쟁이였기 때문에 도망친다. 자신을 위해 천 번이라도 하겠다던 충성스런 친구를 버리고 매정하게 뒤돌아서서, 비겁하게 달아난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아미르는 하산을 피하고 둘의 사이는 틀어진다. 결국 아미르는 하산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하산과 알리를 쫓아내고 만다. 하산도 안쓰러웠지만 난 나와 같은 아미르에게 더 큰 동정심을 느꼈다. 그는 용감하지 못한 선택으로 인해 오래도록 가슴에 큰 상처를 새겨야만 했다. 크나큰 죄책감 속에서 갇혀 살아가는 그가 가여웠다. 하산을 쫓아내버리는 그의 고통을 느끼며 그를 안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가 상처 속에서 해방되길 빌었다. 

 

1981년 소련군의 침공을 피해 카불을 떠나 바바와 아미르는 캘리포니아 프리몬트로 간다. 미국에 정착한 바바와 아미르에게 잠시 주어진 평온함에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소라야와의 행복한 신혼도 잠시 바바는 위궤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바바의 죽음 이후에도 아미르와 소라야는 아기를 갖지 못해 또 다른 아픔을 겪는다. 아미르는 이 아픔을 자신의 어릴 적 잘못으로 인해 생겼다고 죄책감에 젖어든다. 2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후회의 벽을 깨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웠다. 

 

2001년 6월, 바바와 아미르의 영원한 친구인 라힘 칸이 전화가 온다.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하는 라힘 칸의 말에 아미르는 페샤와르로 간다. 그리고 라힘 칸을 만나 흘러간 지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가 떠난 후 아프가니스탄의 시간들, 그리고 하산과 그의 관계. 아미르는 다시 되돌리기 위해 카불로 가서 하산의 아들 소랍을 찾는다. 소랍을 위해 그가 발휘한 용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인 겁쟁이 소년이 아니었다. 하산의 형이자 소랍의 삼촌으로서 그는 당당했고 아세프로부터 소랍을 데려가기 위해 겨뤘다. 비록 그가 아세프에게 맞아서 심한 부상을 입었더라도 그의 미소는 밝게 빛났고 아름다웠다. 그의 흉터들은 그의 지난 고통들이 빠져나간 영광의 상징이었다. 그가 소랍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단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는 진정한 바바의 아들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의 아버지였다. 

 

2002년 아미르, 소라야, 소랍은 프리몬트의 엘리자베스 호수 공원의 아프가니스탄인 집회에 참여한다. 곧 그들의 푸른 하늘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연들이 보인다. 그들의 연과 싸우던 연이 끊어지자 연을 쫓아 달린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미소를 한껏 안고는 소랍에게 연을 주기 위해 아미르는 달린다. 

 

아미르가 그 무엇보다도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아니, 나도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오래되어 먼지 쌓여진 번호를 눌렀다. ‘오빠, 잘 지내? 요즘 사회복지사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열심히 해.’ 방학 때 만났을 때는 오빠와 같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었다. 움직일 수 없이 굳어 버린 손은 따뜻한 장갑으로 덮어 주었다.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듯이 아미르는 내개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연보랏빛을 띄며 봄에 은은한 향을 퍼뜨리는 라일락의 꽃말은 ‘우정’이라고. 라일락 같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2008년 12월은 눈물로 젖어야만 했고 그 어느 겨울보다도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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