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5065

아내의 빈자리

<아내의 빈자리>를 읽고 

강원도 원주시 태장2동 함정금

 

 

태풍은 너무나 잔인하게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10월은 내 곁에 와 있었다. 신세대 학식 높은 어머니들이나, 나처럼 나이 많고 배우지 못한 어머니나, 자식 잃은 슬픔은 같은 마음이기에 「아내의 빈자리」를 읽고 독후감을 쓰려고 하니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 하고 가슴이 울렁거린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이나 친구등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뒤, 슬프고 외로운 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았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처럼 그들의 아픈 사연을 함께 나누고 싶다. 떠나간 사람에게 보내는 남아있는 사람의 고백이며 스스로의 반성이 깊게 묻어나고 있다. 나도 내 자신을 돌아보며 먼저 간 가족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인간은 마음속에 너무도 많은 사랑과 슬픔을 담고 사는 존재인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찬 서리가 내리며 바람이 인다. 백두산과 금강산을 거쳐 온 바람일까, 아니면 태평양으로 흘러 온 바람일까, 낙엽을 지우는 이 계절, 인생은 낙엽만 보아도 마음이 스산한데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은 70이 넘은 등 굽은 늙은이지만 나에게도 남들이 푸른빛이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60년대의 일이니 몇 년이 흘러간 것일까. 전쟁이 끝난 잿더미 위에서 오직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위해 살던 어려운 시대에 9살 난 딸을 흙 속에 묻었다. 그 때도 요즘처럼 빨간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던 때였다. 그땐 너무 가난해서 병원에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딸을 보낼 때, 남편은 딸의 시신을 업고 나는 괭이와 삽을 가지고 먼동이 틀 무렵 산에 오르던 그때, 시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그 기분 어찌 이 지상에 표현이 될까, 푸른 하늘의 은빛별도 울고 밤새가 울고 산천초목이 울었다.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친구, 스승 등등 여러 가지 종류의 죽음의 이별이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이별은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는 슬픔과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버이의 아픔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부모가 죽으면 문턱 너머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 속에 묻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그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나는 땅 속에 묻은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묻고 큰 사위를 28년 전에 저 세상으로 보냈다. 세상에 남겨진 손녀딸과 지금까지 혼자 살아가는 딸을 보면 가슴이 미여지는 아픔을 느낀다. 오늘따라 먼저 간 가족들이 왜 이리도 그리울까. 세월이 약이라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자식들, 이렇게 많은 아픔을 겪고도 세상을 사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런 것을 가르쳐 인생 고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을 보내고 남편이 아내를 보내고 아내가 남편을 보내며 형제를 떠나보낸 슬픔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이 아픈 것은 「아내의 빈자리」에서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고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아빠를 챙기느라 라면을 침대이불 속에 넣어둔 그 아이, 엄마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이 높아서 넣지 못하다가 키가 자라면서 그동안 쓴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아이, 보고 싶은 사람의 사진을 안고 자면 꿈에 나타난다며 밤마다 엄마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잔다는 그 아이가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불쌍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루빨리 자라서 엄마를 잊었으면 좋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쓴 편지 중의 은경이 아빠, 요즘은 자꾸만 너의 기억이 가물거려 힘이 든다며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정녕 세월이란 놈은 아빠한테는 가혹하다는 아빠, 마음속에는 항상 7살 어린아이로 남은 은경, 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 나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에 눈시울이 뜨겁다.

재규를 보내고 나서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끝내는 울면서 고개 숙이고 만다는 어머니, 추우니까 몸조심하고 오늘 밤에는 엄마 품속에 놀러 오라는 그 마음, 자식을 먼저 보내고 사는 사람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그 안타까움, 동병상련이랄까 나도 내 자식 보낸 서러움에 한없이 울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쩌지 못할 숙명이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가슴에 담고 사는 줄은 몰랐다. 

 

그 당시에는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을까 하고 세상을 원망도 해보았지만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흐르고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 사람들은 거의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픔들을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살고 싶다.

옛날에는 자식들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자식을 많이 잃었다. 지금처럼 병원에 입원 시키고 최선을 다 하다 보내도 가슴이 아픈데, 병원에도 못 가보고 떠나보낸 자식에 대한 죄책감은 평생의 멍에로 남았다. 

 

떠나 간 사람은 아무리 울부짖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들의 영혼이 편안할 수 있도록 명복을 비는 수밖에....... 오늘 이 순간이 슬픈 삶일지라도 누군가에게 간절한 소망의 대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받고 남은 가족들을 정성으로 다독이며 열심히 사는 것이 떠나간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가슴 아픈 아들과 전국에 계시는 모든 분들과 그 슬픔을 나누고 싶다. 내 주위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가슴엔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이제 남은 시간 푸른 물결이 출렁거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먼저 떠나간 모든 분들에게 주고 싶다. 다시는 이 땅 위에서 이런 슬픔에 우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 두 손 모아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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