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220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독서는 시작된다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북구 덕천1동 김정경




서가에 진열되어 있던 많은 책들 중에 유독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책 제목 때문이었다. 여러 가치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민주시민사회에서, 정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현실의 삶 저변에 깔려있는 정의(正義)를 그러모아, 이성의 영역으로 꿰어 정의(定義)해 보겠다는 제목은 도발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이, 저자 샌델이, 정의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이면, 그 동안 해왔던 세상에 대한 고민들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했다. 물론 그 순진한 생각은 1강을 채 다 읽기도 전에 깨져버렸다. 


저자는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완결성 있는 주입식 서술방법을 포기하는 대신, 그 자리에 질문이라는 빈틈을 마련해 놓았다. 그 빈틈만큼 책은 나를 향해 열려있었고, 나는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을 이정표 삼아 사고의 여행을 하듯 미국의 사례로 쓰여진 책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내 삶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철로를 이탈한 전차로부터 어떻게 사람을 구해낼 것이냐는 그의 첫 번째 질문부터가 나를 괴롭혔다. 물론 이 경우는 저자가 도덕원칙을 찾기 위해 선택의 불확실성과 같은 우연적 요소를 배제한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실 속에서도 나는 이 같은 도덕적 딜레마에 매 순간 직면하며 살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때마다 나는 저 마다의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해왔고, 정의에 대한 보편적인 원칙을 세워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가치관을 불편부당하게 고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사고과정이 나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그런 문제들이 불편해 지금껏 외면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골치 아픈 책의 질문세례를 회피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나만의 답을 달아 나갔다. 


저자는 책에서 크게 정의를 이야기하는 세 가지 방식을 정치철학자들의 견해를 빌어 제시했다. 행복극대화에서 출발한 공리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여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마지막으로 정의를 미덕과 좋은 삶과 연관 된다고 보는 미덕이론이 그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차례로 제시되는 각각의 견해에 일순간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저자가 곧바로 제시하는 해당견해의 단점과 비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되면 나는 내 생각들에 의문을 가지고 반추해 보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기존의 내 생각과 가장 닮은 자유지상주의부분에 와서는 이 과정이 쉴새 없이 반복 되었다. 자유지상주의에도 철학자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고 저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나는 여기에 일면 수긍하고 일면 부정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라면 삶에 있어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때의 선택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드시 개인의 의지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만은 아니기에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정부역할의 필요성이 있다는 기존의 내 입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미덕이론으로 넘어가면서 나는 또 공격적인 질문을 받게 되고 내가 생각했던 정의로운 사회의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말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도입부터 치열하게 전개된 내용에 비해 결말은 좀 허무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답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샌델은 마지막 미덕이론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정의로운 사회에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고, 사회는 시민들이 사회전체를 걱정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샌델은 그 방법으로 그간 정치나 사회문제를 논할 때면 의도적으로 제외되곤 했던 도덕과 종교의 적극적인 개입을 꼽는다. 그의 해결책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 역시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연대의식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88만원 세대와 G세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은 서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승열패의 자본주의적 폭력에 너무 둔감해져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타인의 고통을 제 아픔처럼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지금껏 사람들과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부딪힐 때면 나는 쿨 한척 이렇게 말해 왔다. “나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와 닿지는 않지만, 타인의 인권과 권리도 소중하니 나는 너를 존중 해.” 라고 말이다. 타인의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겠다는 결과에 있어서는 같을 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런 태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공감없는 인정은 방관과 다를 바 없고 이럴 경우 소통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그래야만 양극화된 서로의 간극을 줄이고 연대감을 형성해 나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샌델은 도덕과 종교를 제시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책과 공연같은 좋은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것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미덕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조차도 철저히 이성적으로 정의에 접근하여 서술하려 애썼다. 이는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보다 보편적인 원칙을 생각게 하려는 샌델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쓰여진 이 책은, 올 한해 내가 읽은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감성적인 책이었다. 


결국 책의 종반부에 이르러서도 애초에 내가 얻고자 했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정의(定義)를 찾진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 세종시 문제, 4대강 개발, 무상급식, 프로라이프 의사회로부터 촉발된 낙태문제, 최근 고위공직자 자녀의 특채사건이 올곧이 자리 잡는다. 나는 이 고민들을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나의 지인들과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때론 도덕적· 종교적 신념이 달라 골치 아픈 논쟁이 시작될지도 모르지만 샌델이 책의 말미에서 말한 것처럼 피하기보다는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은 내 주변사람 절반은 읽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던가? 


이렇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책 속보다 치열한 삶의 독서가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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