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저를 사랑하겠습니다.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박영숙
혜민 스님,
재작년 겨울에 이어 이태 만에 다시 뵙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계신지요?
처음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통해 제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셨지요. 누군가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생명이 하루씩 더 연장된다고 하셨나요? 몇 해에 걸쳐 하나, 둘 차례로 동기간을 잃고 실의에 빠진 저를, 스님은 몇 겹의 문장들로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스님. 그러나 홀로이 서 있는 인간은 지극히 나약하고 생의 외길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어 두려운 곳인가 봅니다. 오늘의 이 반가운 재회가 이토록 절실했던 까닭을 스님은 아실런지요.
올 들어 남편이 인근 학교의 야간 경비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홀로 적막한 집안에 우두커니 있으려니 걱정이 걱정을 몰고 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밤들을 지새웠습니다. 황혼녘, 태양은 기어이 서산을 넘어가고야 마는, 생의 외길 끄트머리에서 때로는 더디게 걷는 이 걸음마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산 자의 땅에 발붙이고는 있으나 저란 존재는 이 땅의 짐이 될 밖에, 한 사람분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남을 날들 동안 하염없이 죽을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음에 세월이 야속하고 삶이 덧없다 여겨졌습니다. 하루 종일 벗 삼아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지만 소통하지 못하니 그 또한 곤혹스러워 꺼두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때였지요, 스님을 다시 만난 것이.
저녁 먹은 뒷정리를 끝내고 우두커니 식탁에 앉아 맥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문득 거실 문갑 위에 놓여 있던 전날에 스님께서 쓰신 책을 다시 보게 된 것이지요. 이음새가 벗겨지고 거뭇하게 손때까지 입은 전날의 책을 보고 있자니, 그간의 슬픔과 그 슬픔을 견디려 절실하게 파고든 구절들이 연달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책을 통해 길을 구하고자 결심한 것은 그 밤이 지나서였습니다.
다음 날 저는 작년까지 청소 일을 하던 도서관을 찾았고, 몇 년간 일을 하며 교분을 쌓았던 사서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바로 스님의 책이었지요. 도서관에서 일을 했을 때에도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열람실을 찾아 책을 읽곤 했는데, 그래서일까요?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사서가 건넨 책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스님의 위로를 구했었는지, 열람실 입구의 게시판에 ‘이달의 추천도서’로 스님의 책이 올라있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는 짧은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열람실 책상에 한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자, 한 장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스님, 신이 모든 사람을 굽어 살필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셨나요? 어린 자녀를 두고 먼저 떠난 남편 때문에 실의에 빠진 독자를 만났던 날 한 걸음에 따뜻하게 안아주셨다는 일화를 읽었을 때, 스님은 번뇌와 고통 속에 울부짖는 많은 이들 곁에 함께 있고자 이 책을 쓰셨다는 것을 짐짓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는지 스님은 아실까요. 우리는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사랑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사랑받을 만한 것이라는 말씀이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여느 집안의 부모처럼 자식들에게 화수분이 되어주지 못해 늘 애달팠습니다. 말썽부리는 육신이 거추장스럽고 혹여 자식들에게 짐이라도 될까 염려되는 마음에 안부를 묻는 전화가 오면 늘, “오래 살아 뭣하리. 일찍 죽어야지.”라며 속에 없는 말을 뱉고는 했습니다. 그 때는 그 말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스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보니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딸아이가 전화로 “엄마는 꽃이 왜 좋아? 엄마한테 뭘 해준다고 좋아?”라고 묻기에 “뭘 해줘서 좋나, 그냥 있으니 좋은 거지.”라고 대답하니 딸이 대뜸, “나도 그래. 엄마가 뭘 해줘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것만으로 좋아.”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의 참뜻을 스님의 말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딸애의 가슴에 무수한 상처를 낸 것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세상은 고리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중 하나가 아프면 다 같이 아프다는 말씀을 읽으니 저의 가장 가까운 고리인 딸애가 편안하도록 스스로가 먼저 편안해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스님, 책 한 권에 빼곡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값진 존재라는 걸 꽃을 보며, 딸애를 보며, 그리고 스님을 통해 알아갑니다. 허무와 허탈과 무기력함으로 어제 죽어간 이의 소망하던 시간을 허투루 허비한 것을 반성합니다. 혼자인 때에는 내면이 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을 오늘을 살겠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황망한 어둠속을 걷는 날이 오면 그때 다시 스님을 뵙겠지요. 그날을 온 힘껏 미루며, 내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이 당신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께 경배합니다, 나마스테!
이천십육 년 시월 스무날
박영숙 올림
Chapter
- 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정유진 / <채식주의자>를 읽고 -
- 대상(학생부) - 이한나 / 부산 동여고2학년 <카피책>을 읽고
- 금상(일반부) - 박영숙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 금상(일반부) - 임가영 / <채식주의자>를 읽고
- 금상(학생부) - 강우림 / 목포 덕인고2학년 <1그램의 용기>를 읽고
- 금상(학생부) - 이소현 / 제주 함덕고2학년 <7년의 밤>을 읽고
- 은상(일반부) - 박희주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임문호 /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최윤하 / <채식주의자>를 읽고
- 은상(학생부) - 박준영 / 여명중학교 3학년 <바그다드 우편배달 소년>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임승민 / 경주고등하교 2학년 <1%로 승부하라>를 읽고
- 은상(학생부) - 조용준 / 서령고등학교 1학년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노영일 /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백선영 /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진주 / <완벽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손혜미 / <채식주의자>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조민정 / <채식주의자>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명현 / 초연중 3학년 <카피책>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임하진 / 예원초4학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정다혜 / 장유초5학년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장유진 / 개금여중3학년 <7년의 밤>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조수빈 / 예원초 6학년 <구름>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