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 <채식주의자>를 읽고 -
임가영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하나의 인간이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나의 나됨을 위해 감당하거나 발휘해야할 무수한 폭력성을 하나 하나 일깨우는듯한 이야기이다. 때로는 현실적으로, 또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삶의 근본에 내재한 폭력들이 마치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여정 위에 깔린 유리조각들처럼 알알이 맨발 속에 파고드는 것만 같다. 주인공인 영혜는 그녀를 둘러싼 세 가족들의 시점을 통해 때로는 피해자처럼, 또는 가해자처럼 그려진다. 그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나 속물적인 남편, 자기몰입적인 형부에 의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피해자이다. 그들은 영혜의 자신됨을 끊임없이 부정하거나 방해하고, 또는 오해하면서 자신의 욕망대로 이용하려한다. 한편 영혜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개인적 관계를 거부하며,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가족을 파괴하기도 한다. 또한 영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가 의문스러워질 정도로 격렬하게 저항하는 인물인데, 그 저항의 방식과 목적은 자기파괴적인 결말과 맞닿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처럼 영혜라는 인물 위에 엇갈리는 폭력의 문제가 결국 근본적으로는 나의 나됨,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거듭나고 연명하려는 욕구와 그러한 욕구의 양면성에 대한 것이라 보았다. 소설의 제목인 ‘채식주의자’는 일반적 의미로 개인의 자기 삶의 결정권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택 가능성’이다. 채식주의자는 사회의 주류적 경향과는 다른 무언가를 선택해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닿아있는 개념이다. 영혜가 처음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냉장고에 들어찬 고기들을 버리고, 능숙하게 조리해 상에 내던 요리들을 포기하고, 거부감 없이 먹어 삼켜 몸의 일부로 만들었던 음식의 맛과 식감, 흔적을 완전히 지워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영혜의 이러한 시도는 실행법의 극단성과 가족사와 맞물려 다양한 폭력을 촉발시킨다. 가족들은 설득과 걱정, 회유와 강제의 방식으로 영혜의 ‘채식주의’에 관여한다. 결국 어떤 톤으로 행해지든 그들의 말은 영혜에게, 선택 가능성을 포기하라는, 나의 나됨을 추구하지 말라는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소설 채식주의자는 이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신만의 삶에 대한 추구보다 더 치열하고, 또한 벗어내기 힘든 물음에 대한 것이다. 이 물음은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려고 한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으로, 알레르기니 아토피니 하는 체질을 바꾸려고, 혹은 환경을 보호하려고’가 아닌, 꿈에서 만난 ‘얼굴들’ 때문이었다는 것에서 이끌어내 볼 수 있다. 레비나스는 나의 나됨과 무한한 자기보존을 추구하는 인간이 ‘얼굴의 현현’을 통해 타자와 만나고 윤리적 요구에 직면한다고 설명한다. 강영안,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문학과지성사, 2005 결국 내가 직면하는 얼굴은, 나의 시선을 되돌려보내면서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저지를 수 있는(또는 이미 저질러오고 있는) 폭력을 상기시키는 모든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영혜는 꿈을 꾸지 않고 얼굴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몸에 고여있는 독을 내보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나의 나됨 자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성에서는 좀처럼 자유로워질 수 없다. 결국 모든 폭력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나의 나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나됨을 위해, 역설적으로 그녀는 죽음을 ‘선택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영혜의 극단적인 이야기는 이해 못할 광인의 것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그녀 언니의 시선을 통해 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희미하고 불안하게 떨리는 희망, 혹은 열림을 읽었다. 이 희망은 고통으로 쌓아올려진 것이다. 영혜의 언니는 ‘저 멀리 가버린’ 영혜의 뒤를 따라가면서 영혜의 삶과 선택이 자신의 삶에서도 결국 고스란히 찾아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쌍꺼풀이 있거나 없거나, 목소리에 더 여성스러운 색깔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 작은 차이처럼, 부지런히 견뎌온 그녀의 삶 또한 영혜의 것처럼 연명 그 자체의 조건이라는 무수한 고통 속에서 형성되어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마지막 순간, 그녀는 영혜와 자신의 삶 모두를 깨어나면 전부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하나의 꿈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모른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그녀의 말은 영혜의 존재, 그녀가 결국 벗어내 버리려고 한 나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애초 영혜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녀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그리고 영혜가 그 꿈이 자신의 삶 전부를 바꾸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말은 영혜에게 가장 적합한 위안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이 말에서, 내 존재의 필연적인 폭력성을 극복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에 대한 상상이 불러일으켜진다. 타인의 얼굴은 단지 나의 존재를 윤리적으로 추궁하는 것만은 아니며, 나를 넘어선 무엇으로서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열린 가능성(꿈에서 깬 이후)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일 수 있다. 이것이 정말 열린 가능성일지, 다시 나의 나됨을 부정하는 폭력의 세계로의 초대일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원한다면 읽는 이는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존재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소설처럼 치열하고 극단적으로 마주설 수도 없겠지만, 어쩌면 나무들처럼 형제같이 닮아, 서로 공명하는 고통을 주고받는 타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Chapter
- 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정유진 / <채식주의자>를 읽고 -
- 대상(학생부) - 이한나 / 부산 동여고2학년 <카피책>을 읽고
- 금상(일반부) - 박영숙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 금상(일반부) - 임가영 / <채식주의자>를 읽고
- 금상(학생부) - 강우림 / 목포 덕인고2학년 <1그램의 용기>를 읽고
- 금상(학생부) - 이소현 / 제주 함덕고2학년 <7년의 밤>을 읽고
- 은상(일반부) - 박희주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임문호 /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최윤하 / <채식주의자>를 읽고
- 은상(학생부) - 박준영 / 여명중학교 3학년 <바그다드 우편배달 소년>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임승민 / 경주고등하교 2학년 <1%로 승부하라>를 읽고
- 은상(학생부) - 조용준 / 서령고등학교 1학년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노영일 /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백선영 /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진주 / <완벽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손혜미 / <채식주의자>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조민정 / <채식주의자>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명현 / 초연중 3학년 <카피책>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임하진 / 예원초4학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정다혜 / 장유초5학년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장유진 / 개금여중3학년 <7년의 밤>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조수빈 / 예원초 6학년 <구름>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