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577

  "비타민F" 를 읽고

 

 

사람들은 ‘현실적이지 않은’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접하려고 한다. 현실을 모티브로 했으나 현실보다 한 단계 뛰어넘는 그런 류의 것들은 우리의 유한한 상상력이 무한해지게끔 날개를 달아주고 감성을 샘솟게 하여 풍만하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9이를테면 영화나 만화, 책- 중에서도 특히 픽션-등)을 많이 즐긴다는 것은 곧 현실이란 얼마나 무감각한 공간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지루하게, 그러나 빠듯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느 만큼의 감정을 충돌시키며 살아가는가.

 

길을 가다 문득 본 펫숍 윈도우에서 쳇바퀴를 쉬지 않고 돌리는 다람쥐를 보며 그 모습이 막힌 틀 안에서 바득바득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과 너무도 비스새보여 서글퍼진 적이 있었다. 

 

그런 고로 우리가 간접적으로 즐기는 것들은 결국 우리에게 있어 이루기 힘든‘가정법’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의 소재가 현실적일 때 ‘재미없다’라는 표현을 종종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문제는 그 책의 내용이 지극히, 너무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즈음에서 내사고회로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 책은 소재나 주제나 현실 속 일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현실을 재미없고 일률적이라고 삐딱하게 바라봐도 어차피 삶은 현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결국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박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대리만족 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기 마련이니까

 

그렇듯 내 생각의 변환점이 된 <비타민F>에는 ‘F'라는 키워드를 이용한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었다.’Father', 'Friend', 'Fight', 'Fragile', 'Fortune' 등……. 그리고 그 키워드들의 가장 바깥에 있는 마지막 키워드는 ‘Family' 였다.

 

말년에 들어선 어머니의 예상치 못한 반란을 인정해 주는 아들의 모습을 담은<어미니 돌아오다>, 젊은 세대의 거침에 주눅이 들어버린 중년의 이야기인 <주먹>,복권이라는 매개물로 인해 자신이 아들인 동시에 아버지임을 깨닫는 한 남자를 그린 <떨어진 복권>, <판도라>와 <셋짱>에서는 딸이 커가며 겪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어하는 아버지의 심리를 말해주며,<바닷가 호텔에서>는 어느 날 끄집어내진 과저로 인해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는 남자의 모습을, <부스럼 딱지 눈꺼풀>에서는 서로 간에 무관심하던 가족이란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트러블을 그린다. 

 

단편들은 여러 개인 동시에 하나같이 느껴진다. 각기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이야기가 섞인 듯한 상황에 처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인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라 해결책도, 확실한 끝맺음도 없이 책은 마지막 장까지 넘어갔다. 그저 각 마지막 부분에서 주는 여운 속에서 약간의 희망의 빛을 내비칠 뿐이다. 하지만 그 희망들이 집약되어 있는 ‘비타민 F'라는 제목 덕분인지 대책 없이 막막하다가 보다는 산듯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현대 사회가 만든 병폐 중 하나인 가족 붕괴 현상, 이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통사회와는 달리 가족 구성원들 간에 이어져 있는 고리가 느슨하다. 이러쿵저러쿵 자잘한 트러블에 질리기도 하고,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만을 덮어쓰고 사는 타인이라 느낄 때도 있지만 그 고리는 끊어진 것 또한 아니어서 결국은 자신이 있을 곳은 가족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밤 늦은 시간에 하교하면서 친구에게 요즘은 가족과 얼굴 맞대기도 참 힘드네―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우리 나이대가 다 그렇지,뭐-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었다. 나 역시 그러려니 했었고, 허나 지금에 와서 개달은 것은 지금 이 나이대가 사회로 나가게 될 앞으로의 나날들 보단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적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섭섭했다. 게다가 ‘가족’이라는 요람 안에서 기대기만 하며 제멋대로 살아온 나는 아직 너무도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더욱 씁쓸해졌다. 물론 남은 시간동안 나름대로의 노력은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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