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252

-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 - 

 

                                                                                                                                             백선영

 

 

오랜만에 독후감을 써보고 싶은 책을 만났다. 그러고 보니 가장 최근에 독후감을 써본 기억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은 후였다. ‘라플라스의 마녀’와 같은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는 경외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과 상상을 불허하는 반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전직 경호 보안 회사 직원인 다케오는 마도카라는 한 소녀의 경호를 맡게 되면서 이 소녀의 주위에서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마도카는 마치 앞으로의 일들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행동들로 다케오를 놀라게 한다. 정확한 날씨 예측과 바람의 방향을 알아내는 등의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그녀 주위에서 일어난다.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소녀를 경호하면서도 다케오는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사명감과 정의감이 강한 다케오는 이야기 내내 마도카를 도와주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러던 중 온천에서 의문의 황화수소 가스 중독 사고가 연달아 일어난다. 첫 번째 사고는 아카쿠마 온천지에서 아내와 함께 관광 왔던 미즈키 요시로라는 영화관계자에게 발생했다. 사고가 난 날 우연히 황화수소 농도가 높아진 순간 사고 장소에 들어갔던 것이다. 두 번째 황화수소 중독 사고는 도마테 온천에서 발생했는데 피해자는 나스노라는 배우였다. 그 역시 우연히 가스 농도가 높아진 시간과 장소에서 사고를 당했다. 영화 업계 관련자가 연달아 사망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온천지에서 황화수소를 흡입하고. 이건 과연 우연일까. 두 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결국은 이런저런 연결고리들로 연관이 되어서 감탄하게 된다. 이 사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궁리해 봤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느끼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등장인물 중 또 한명의 매력적인 인물은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 아오에이다. 그는 황화수소 중독 사고에 관해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두 사건지역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두 군데서 마도카와 마주치면서 본의 아니게 일련의 사건들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마도카는 한 청년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왜 중독 사고가 일어난 곳에 와서 그 청년을 찾고 있는지 두 사람은 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문투성이다. 

 

아오에는 인위적으로 황화수소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므로 두 온천지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불운한 사고라는 견해를 밝힌다. 하지만 아오에는 자신의 추론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우연한 사고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 데이터에 의하면 사고 현장에 황화수소 농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한 적은 그날 이후 한 번도 없었고 농도가 올라갔다고 해도 극히 제한된 구역에서 시간적으로도 한순간의 일이라서 우연히 그런 곳에 사람이 들어간다는 것은 확률로 보면 거의 제로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두 온천지에서 일어난 일을 정말 단순 중독 사고로 처리해버려도 될까. 어쩌면 엄청난 실수를 범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문을 가지는 그에게 마도카는 드라이아이스에서 나오는 흰 연기를 이용해 황화수소 가스의 움직임을 비슷하게 재현해보는 실험을 보여준다. 실험 결과 드라이아이스에서 발생한 스모크는 확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달했고, 게다가 거기서 줄곧 고여 있었다. 스모크는 확산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조건이 갖춰지면 흐트러짐 없이 흐르고 한곳에 모여서 고이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화수소 가스의 움직임도 비슷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즉, 황화수소의 흐름을 예측해서 인위적으로 사고를 일으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마도카가 어떻게 이 시각 이 장소라면 그 조건에 합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는가, 라는 점이다. 

 

아오에는 두 온천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조사하던 중 아마카스라는 영화감독이 이 두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카스는 황화수소 중독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아들 겐토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식물인간 상태였던 겐토는 우하라 젠타로라는 의사가 살려냈는데 그 의사는 마도카의 아버지이다. 마도카는 황화수소 사고가 있었던 온천지에서 한 청년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 키워드들이 어떻게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질 수 있을까. 역시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카스가 가족을 잃은 황화수소 사고가 사실은 아마카스 자신이 가족을 몰살시키려 저지른 범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아들이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두 온천지에서의 중독 사고도 아버지와 공범인 두 인물에 대한 겐토의 단죄였다. 그리고 마도카는 그것을 눈치 채고 겐토를 막기 위해 찾아다니는 것이다. 결국 마도카는 겐토가 아마카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획한 장소를 찾아내고 가까스로 비극을 막아냈다. 

 

아버지라는 자가 제 가족을 몰살시키려 하고, 그걸 알게 된 아들이 제 아버지를 죽이려하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든 사건에 대해 우하라 박사는 ‘부성 결락증’을 이야기한다. 선천적으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결락된 인간의 심리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아마카스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똑같이 완벽하기를 강요하는 습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도 딸도 아들도, 자신이 꿈꿔온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범행을 계획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반평생을 영화로 만들어서 그 속에서 훌륭한 가족으로 새로 태어나도록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아마카스의 ‘대다수의 범용한 인간들은 아무런 진실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고, 그런 인간들은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는 말에 겐토는 대답한다. ‘이 세상은 몇몇 천재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게 아니다.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다. 인간은 원자다.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다.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다. 단 한 개도.’ 이 말이 큰 의미로 마음속에 남았다. 굳이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이 태어남 이유가 있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마카스처럼 능력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게 될 때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는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존재에게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겐토가 황화수소 사건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라플라스의 악마’같은 예측 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도카가 보여준 평범하지 않은 능력들도 그녀가 뇌수술의 영향으로 ‘라플라스의 마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겐토와 마도카는 오감을 통해 수집되는 현재 상황에 관한 정보를 즉각즉각 분석해서 그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해낸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통해 주사위 숫자나 양궁의 화살이 어디에 맞을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황화수소 농도가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 불현듯 이 책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의 마음을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능력은 끊임없이 자신의 상식과 현실안주를 깨부수는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인공두뇌가 소설까지 집필한다는 시대지만 역시 이런 작품은 인간의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말미에 다케오의 “이 세상의 미래 말이야.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라는 질문에 마도카는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한다. “그건요, 모르는 게 더 행복할걸요?” 우리는 미래를 궁금해 하고 예측하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알 수 없어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모른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꿈을 가질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범용한 사람들은 성실하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한다. 이것이 의미 없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 또한 이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결국 세상의 미래를 이루는 것이다. 의미 없는 행동은 없다. 모든 인간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세상의 소중한 원자이다. 

 

책을 덮으니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불쑥 솟아나는 듯했다. 조금 더 밝은 미래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야하는 이유가 생긴 것 같다. 언제든 내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흔들릴 때 이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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