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인간 種으로 살아가기 - <채식주의자>를 읽고 -
조민정
모든 죽음이 슬픈 것은 아니다. 경건한 죽음, 무의미한 죽음, 즐거움을 주는 죽음, 다양한 죽음들. 우리는 보편적인 죽음에 대해, 심지어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죽음에 대해서도 애도를 표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무수한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요리와 향락들. 우리는(일반적인 식생활을 가진 인간은)나도 모르는 사이 하루에 수십, 수백 의 죽음을 통해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어느 날, 이를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나도 그랬다. 요리는 그저 돈과 교환되는 음식으로만 존재 했다. 치킨, 삼겹살, 보쌈, 족발, 닭발 등을 매일같이 즐기면서도 그것을 먹으며 닭이나 돼지의 살아있는 몸체를 상상하진 않았다. 먹기 위해 만들어 진 것들일 뿐.
하지만 지금은 거의 10년이 다 되어버린 그 어느 날, 처음으로 팔뚝만한 고깃덩어리에 직접 칼을 찔러 넣었던 순간 깨달았다. 손으로 쥐었을 때의 탄력과 촉감, 그리고 잘라내기 위해 칼을 집어넣으면 퉁겨내는 단단하고 질긴 느낌, 지금 내 앞에 있는 살덩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처럼 개별 호흡기관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는 것을. 그 팔뚝보다 작은 돼지고기를 장조림을 하기 위해 다 잘라냈을 때에는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나의 육식은 계속되었다. 물론 삶을 유지하려는 이유보다는 맛을 즐긴다는 이유가 강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채식만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원래부터 채식만을 즐기는 독특한 취향이 있는 사람을 배제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주인공 영혜는 갑자기 채식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 영혜는 나처럼, 갑자기 어느 날 도마 위에 무력하게 누워있는 그것들에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자행되어왔던 아버지의 폭력, 그리고 가족들의 무관심은 그녀를 순응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남편이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던 몹시도 평범한 그녀의 취향, 평범한 외모, 평범한 옷차림, 무던한 성격, 이것들은 그녀가 사회 속에 자신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보호색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최대한 지울 수 있는 안전한 방법.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던 폭력, 그리고 그런 상처를 품고 사는 영혜에게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남편의 언행들로 인해 급기야 그녀는 내부에 곪아있던 상처가 터지고 그것을 어디에 분풀이 할 수도 없이 본인스스로에게 폭력성을 드러낸다.
자지않기, 먹지않기, 그렇게 서서히 스스로를 죽여가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던 본인 스스로의 통제력을 느끼며 학습된 폭력을 내부적으로 표출하며, 스스로는 만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자체의 자의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면에서.
그러면 왜 작가는 주인공 영혜가 아닌 그녀를 둘러싼, 이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갔을까? 그것 또한 스토리 못지않게 궁금한 점이었다. 만약 영혜가 화자였다면 그녀의 복잡한 심리상태와 내면을 세밀하게 설명해 낼 수 있었을까? 가정해보니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어느날 문득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그로인해 평범함으로 가장했던 삶에 균열이 일어난다. 그녀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전개된다 하더라도 명확한 이유나, 본인의 심리는 잘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연작소설에서 화자는 남편, 형부, 영혜의 친언니이다. 각 부 별로 묘사된 영혜는 물론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기는 하나 모두 다른 인격의 사람인 듯하다.
이 세 사람에게 그려진 영혜의 모습에는 서술하는 본인들의 모습이 투영된 듯하다. 서로 상반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그 속에 내제된 각기 다른 욕구들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흥미로운 구성과 생각해 볼만한 주제로 읽는 시간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었다. 이 책은 연작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각 부는 각각 다른 잡지나 책에 출간되었던 중편이라고 한다. 책이 완성되기 까지 작가는 이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영혜의 다른 사람과 같은 느낌은 각 부가 원래는 별개의 단편이었다는 사실도 큰 작용을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채식주의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떠한 모임에 비건이라 불리는 채식주의자가 있는 날이면 메뉴를 골라 식당을 가기도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그들이 지키고 있는 엄격한 이념 앞에, 그 눈앞에서 피, 근육, 지방질 가득한 누군가의 살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들이 속으로 나를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 없는 야만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분명 나도 모르게 사회성을 위장한 전체주의에 물들어 남들 다 먹는데, 유별나다고 아니꼬와 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 다 하는 걸 안하는 것을 불편해 할까? 그리고 왜 가족, 사회라는 익숙한 이름으로 둔갑한 폭력성에는 무관심 할까? 왜 나의 본능적 즐거움을 다른 존재의 고통보다 우위에 놓을까?.
Chapter
- 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정유진 / <채식주의자>를 읽고 -
- 대상(학생부) - 이한나 / 부산 동여고2학년 <카피책>을 읽고
- 금상(일반부) - 박영숙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 금상(일반부) - 임가영 / <채식주의자>를 읽고
- 금상(학생부) - 강우림 / 목포 덕인고2학년 <1그램의 용기>를 읽고
- 금상(학생부) - 이소현 / 제주 함덕고2학년 <7년의 밤>을 읽고
- 은상(일반부) - 박희주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임문호 /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최윤하 / <채식주의자>를 읽고
- 은상(학생부) - 박준영 / 여명중학교 3학년 <바그다드 우편배달 소년>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임승민 / 경주고등하교 2학년 <1%로 승부하라>를 읽고
- 은상(학생부) - 조용준 / 서령고등학교 1학년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노영일 /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백선영 /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진주 / <완벽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손혜미 / <채식주의자>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조민정 / <채식주의자>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명현 / 초연중 3학년 <카피책>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임하진 / 예원초4학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정다혜 / 장유초5학년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장유진 / 개금여중3학년 <7년의 밤>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조수빈 / 예원초 6학년 <구름>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