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247

당신의 밤은 지속되지 않기를 - <7년의 밤>을 읽고 -

 

개금여자중학교 3학년 장유진

 

 

7년째 아침을 맞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 [7년의 밤]. 이 책의 저자 정유정 작가님의 전작 중 하나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남긴 신선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나에겐 너무도 읽고 싶은 책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섬세한 묘사와 읽는 이를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드는 팽팽한 긴장의 끈, 그것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도 연이 닿지 않을 수 있는지, 자주 들르곤 하는 중고 책방부터 대형 서점과 도서관까지 해매 보아도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갈 때마다 늘 재고가 없었고, 누군가가 대출 중인 상태. 내게 [7년의 밤]을 찾아 읽어보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것이었다. 오매불망 책이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리는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몇 개월째 계속되는 야속한 상황에 지칠 대로 지쳤고. 머릿속엔 포기 아닌 포기라는 단어가 퍼져나갔다. 때로는 손을 뻗을수록 잡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폭풍 같은 돌진보다 뒤로 물러서는 한 걸음이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될 때, 그게 지금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가 오면 필시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 지나치게 몰두했던 마음을 가벼이 만든 후 바람에 실으려던 찰나, 우연히 친구에게 이끌려 간 학교 도서관에서 바라왔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마법처럼 나타난 소설 앞에서 나는 다시금 조바심이 나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그 첫 순간, 이야기의 첫 장을 눈에 담은 그 찰나의 순간부터 책에 푹 빠지게 되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간결하고 충격적인 첫 문장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란 작가의 초대장과 같다. 나는 어서 이야기 속에 뛰어들어 이 작은 세계를 마음껏 헤집어 놓으라는 격한 손짓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 그 뒤에 숨겨져 있을 것들에 대한 호기심에 등 떠밀려, 나는 7년의 밤하늘 위로 뚝 떨어졌다. 아침이 오지 않아 악몽을 이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차가운 밤 위로. 새하얀 안개로 수놓은 길고 긴 어둠 속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은 사형 집행인이 된 소년, 서원이었다. 12살에 머무른 19살, 없는 죄에 쫓기는 도망자,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소년에게 주어진 이름들이었다. 그 이름을 처음 부여받았던 것은 7년 전 밤, 서원의 아버지 현수가 이웃집 소녀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그 아버지마저 죽였다는 날이었다. 눈이 돌아 제 부인마저 죽였다는 날이었다. 극악무도한 미치광이 살인마가 마을 하나를 물에 잠기게 만들어 마을 주민 다수를 죽였다는 날이었다. 그날부로 서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존재, 모두가 피하는 괴물이 되었다.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게 쏟아져 내렸던 경멸의 시선들, 목을 조여 오던 수 만개의 손아귀. 그것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서원은 아버지의 목에 밧줄을 걸어 사형을 집행했다. 세어 볼 수 도 없을 만큼 많이 사형을 집행하고, 또 하고,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 어쩌면 진짜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존경했던 아버지, 어머니와 모두를 죽였다는 나의 아버지. 그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텨냈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소년에 대한 안타까움이 극대화 되려는 찰나, 나는 비로소 숨겨져 있던 소설의 진짜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 비운의 포수, 난데없는 운명의 변화구를 피할 수 없던 남자, 무수히 죽고 죽은 사형수, 서원의 아버지 최현수. 그는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으나, 시작이 되고 싶었던 적 없었다. 그는 그저 한물 간 투수였고, 철없는 남편이었으며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한 순간도 가져 본 적 없었는데, 운명은 그의 작은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갑작스레 들이닥친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눈앞에 펼쳐진 최악의 상황. 제 차에 치여 죽어가는 소녀와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은 호수, 아른거리는 아들 서원의 얼굴. 그는 예고 없이 날아오는 변화구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의 죄는 최악의 상황 속에 빠져 든 것이 아니라 그 대처 방법이 그릇되었다는 것이다. 현수는 당장 눈앞의 상황만을 피하고자 소녀를 호수에 던져 생명의 불씨를 완전히 꺼트려 버렸고, 이는 더 큰 파멸로 이어졌다. 사건을 덮으려 할수록 죄가 커졌다. 실수는 이미 처음 소녀를 발견한 그 순간 부로 끝났다. 그는 7년 동안 이어질 밤의 시작이 될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렇게 도망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래야 모두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를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누구라도 운명의 갑작스런 소용돌이와 마주치게 된다면 지레 겁을 먹고 만다. 이성적 사고라는 것 자체가 멈춰버린다. 이런 상황이 들이 닥친다면 불타오르는 정의감과 용기로 똘똘 뭉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가. 3초 내로 확답을 내 놓을 수 있을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말과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하는 의문들은 내가 책을 읽으며 현수를 욕할 수 없던 이유이다. 그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 과오와 실수와 잘못들을 모두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두려움에 잠식된 채 최악의 상황에서 도망쳐 더 최악의 상황을 빚어냈다. 그저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이다. 내게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파멸의 길로 치닫는 한 남자의 긴 긴 밤을 담은 소설 [7년의 밤] 우리는 모두 이 책을 보며 원치 않았던 갑작스런 절망의 순간,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건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끝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히 다지고 7년의 밤을 지새운 사내의 이야기를 곱씹어 하나의 실수가 불러올 파장을 되새겨야 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날아들어 올 인생이 변화구에 대비하기 위해, 7년의 밤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Chapter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