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님의 노래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임종훈
역사(歷史)는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든 사건이든 그 생전의 업적이나 행적, 그리고 사건의 전말과 자초지종을 냉철하게 평가하여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들도 그를 통해 교훈과 반성이라는 역사 본연의 가치를 체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임으로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록이기도 하다. 역사를 반면교사 삼지 못하는 나라와 민족에게 결코 미래가 없다는 경고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英雄)들을 일단 경계한다. 그들이 당대의 삶들에 끼친 업적들을 결코 폄하해서가 아니다. 당대의 언론이나 광고에서 무수히 남발되고 있는 영웅이며 전설 운운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들마다 다른 영웅의 의미와 그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준거를 적용하는 것이 몹시도 어렵기 때문이다.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고찰에 기초하지 않고 업적만 지나치게 미화되어 거품이 잔뜩 낀 인물이나 입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자를 영웅이라 칭하고 싶지 않는 것이 내 솔직한 속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이나 속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아니, 이 나라의 명맥과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웅이라 칭해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분, 그 이름 받드니 이순신 장군이시다.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었다. 헌법재판관을 지내셨다는 저자의 이력이 선입관으로 작용한 때문인지 읽는 내내 이순신 장군의 전 생애가 편년체(編年體)로, 그리고 그 행적은 가감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영웅의 일대기를 판결문으로 요약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다룬 책들은 제목만 다를 뿐 이미 세간에 넘치도록 많고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그 불세출의 영웅적인 생애를 달달 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다시 장군의 생애를 다룬 책을 읽는 것에 외람된 말이지만 식상함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군의 일대기나 업적을 다룬 여타의 책들과 비교해보며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틈나는 대로 읽었다. 아울러 난세(亂世)가 영웅(英雄)을 만든다는 말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장군을 호명(呼名)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장군의 애민(愛民)과 위국(衛國)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하수상한 시절 탓이기도 할 것이라는 자못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던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한 마디다.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임진왜란 당시도 그랬고 지금까지조차 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왜 저 쉬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인데 책의 제목이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가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유비무환은커녕 당파싸움에만 골몰한 나머지 외침에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한 당대의 어리석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권력과 그 권력의 터무니없는 질시와 견제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마침내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수모를 겪으면서도 사력을 다해 백척간두에 놓인 조국과 백성을 구했던 장군의 위업은 유비무환의 뼈저린 교훈과 함께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대대손손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 그 이름 석 자. 이 나라 역사가 지속되는 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리하여 불세출의 성웅(聖雄)이자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다시금 불리어지며 회자되는 구국(救國)의 이름으로 불멸(不滅)일 그 이름. 그러나 장군 자신의 기록인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그는 영웅이 아닌, 끊임없이 고민하고 번뇌하는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사나운 바람 앞의 등불로 언제 그 명운을 다할지 모르는 조국과 그로 하여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자신의 능력으로 능히 그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두려움과 무게감에 짓눌려 때로는 나약한 한 인간 혹은, 무인(武人)으로서의 소회를 토로하기도 한다. 이순신 장군이 더 위대한 것은 모든 면에서 그 어떤 흠도 잡을 수 없을 만큼의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그런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오로지 위국(爲國)과 위민(爲民)의 일념으로 극복해서일 것이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활자에서 눈을 떼고 거듭 생각한 것은 역사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들이었다. 이미 지난 일들에 관한 사실이나 기록들을 굳이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는-. 저명한 역사학자 A. Toynbee가 설파했듯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의 거듭됨에 다름 아니라면 임진왜란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누란의 위기이자 도전일 것이고 그에 맞서 치자와 피치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나라의 구성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치단결하여 그를 극복해내야만 하는 것이 응전일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익히 알고 있듯이 임진왜란의 경우에 있어 유비무환은 말뿐 도전에 대한 준비조차 당리당략에 따라 사분오열(四分五裂)로 갈라져 변변히 대비를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응전은커녕 무능한 군주와 권신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하여 백성과 도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도주하기에 급급했다.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대체 나라라는 것이 무엇이며 위정자의 의무가 무엇인지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던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 임진왜란이며 그것은 또한, 그 의문에 그 어떤 답도 할 수 없을, 그리하여 국가와 위정자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었다. 무능한데다 용렬하기까지 한 임금과 일부 권신들의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작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임에도 악전고투 끝에 연전연승을 거둔 장군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기는커녕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전공을 폄하하고 나아가 모함하기에 급급했는데 그런 그들에게 나라와 백성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이 들던 것이다. 영웅을 키우고 그 업적을 치하하기보다는 그로 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당할 것만 염려하여 그 싹을 애당초 자르려 드는 것이 소위 힘 있는 자들의 속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쩌면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일부 역사학자의 추측에 공감하게 되고 갈수록 그것은 단순히 추측이 아니라 사실(事實)로 받아들여지던 것이다. 만약, 장군이 전쟁이 끝나고 죽지 않고 살아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면 선조와 일부 권신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하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장군은 전제군주제 하에서 그들의 계속되는 시기와 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으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그리하여 장군의 최선의 처신은 그들의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계략에 속절없이 걸려 불명예로 죽으니 차라리 전투에서 명예롭게 전사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사실(史實)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장군이 마지막 해전에서 몸을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 적탄의 표적이 되고자 했던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신념으로 난관을 헤쳐 나간 장군의 결기가 오롯이 느껴지는 것이다.
올해로 광복 70주년, 참담했던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조국은 안팎의 이런저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나 역시 압제에서 벗어나 다시금 자유의 숨통이 트인 것을 기꺼워하는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임진왜란 이후 300여년이 흘렀음에도 그 국가적 환란에서 그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다시 주권 상실이라는 치욕을 당하게 되었는지를 뼈아프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준엄한 경고이며 거듭하여 새겨들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교훈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한다. 장군이 펼친 신묘한 전법(戰法)과 불패(不敗)의 전공(戰功)은 세계 그 어느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혁혁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이 나라 역사가 지속되는 한 우리들이 가슴에 새겨 길이 이어가야 할 것은 장군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절하게 우러나온 호국(護國)과 애민(愛民)의 마음이다.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고 장군이 아뢴 것은 왕에게 아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비무환을 실천치 못한 어리석은 위정자에게 던지는 장군의 통렬한 꾸짖음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장군이 그 출전(出戰)을 아뢴 것은 조국과 백성, 그리고 역사에 아뢴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장군은 가셨지만 그 애국충정의 마음은 이 나라, 이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남아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불리어질 노래인 것이다. 장군이시여,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이 나라와 역사에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도 능히 이겨낼 준비를.
Chapter
- 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저자특별상(일반부) - 임종훈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금상) - 김벼리 / 광주 운남초 3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은상) - 박혜나 / 경기 체러티 크리스천 중 1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대상(일반부) - 김효진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 대상(학생부) - 신채은 / 울산 문현고 3학년 <윌든>을 읽고
- 금상(일반부) - 남정미 /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미경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강우림 / 목포 덕인고 1학년 <세븐틴 세븐틴>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김규리 / 혜화여고 2학년 <요금 괜찮니 괜찮아>를 읽고
- 은상(일반부) - 김낙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 은상(일반부) - 김현정 /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조은솔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 은상(학생부) - 김은혜 / 민락초 6학년 <남북 공동 초등학교>를 읽고
- 은상(학생부) - 금소담 / 부산 이사벨중 1학년 <세븐틴 세븐틴>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임현진 / 사직여중 1학년 <나는 옷이 아니에요>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견선희 /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을 읽고
- 동상(일반부) - 김미진 / <황금방울새>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수자 / <요즘 괜찮니 괜찮아>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슬기 / <완벽한 계획>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이효중 / <나는 넘어질 때마다 무언가를 줍는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민지 / 영도초 6학년 <바느질 소녀>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예리 / 김해 가야고 1학년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상헌 / 사천 동성초 5학년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박수정 / 연제초 6학년 <빨간머리 앤>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손예진 / 모덕초 1학년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