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507

부녀지간, 본질 회복의 전환점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 

 

                                                                                                                                             김효진

 

서점에서 책과의 만남은 늘 설렌다. 누구나 집어 들고 훑어보지만, 아무나 사지 않는 책을 찾고 싶기에 말이다. 그 날도,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아 서점을 서성거렸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내 무의식은 이 제목이 불편했는지 자연스레 스쳐갔다. 아니, 일부러 지나친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존경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신간이었음을 의식했을 때, 내 관심이 움직였다. 나는 처음에 왜 이 책을 반감으로 대했을까? 나의 아버지는 TV드라마에 나오는 아버지같이 혹은 여타 어느 아버지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각인되어 있었다. 내 생일에 축하 인사 한마디 들을 수 없었던 분. 특별한 날일 것도 없이, 평상시 인사에도 본인의 피곤함에 무응답으로 맞으셨던 분. 기억이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의 아버지는 무뚝뚝하며 일로 지쳐있는 그런 아버지였다. 취침 전 잘 자라는 가벼운 인사조차 기대할 수 없는 아버지에게 굿나잇 키스라니. 사실 이제서 생각해보니, 부녀지간을 콘텐츠로 삼은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도 나의 감정은 냉담하고 무미건조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순간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가 어떤 의미인지, 이어령 선생님은 깊이 있고 담담하게 말씀해 주실 것만 같았다. 책을 처음 마주쳤던 감정과 달리, 기대감을 가지고 이 책을 서점으로부터 데려왔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각인을 바꾸는 최고의 만남이 되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자제이신, 이민아 목사님의 소천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그 때서야 굿나잇 키스의 의미를 어렴풋 짐작했다. 딸을 이 땅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별이자 작고의 키스였구나 하고.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것은 표면적 의미였음을 깨달았다. 이어령 선생님의 마음속 살아있는 딸에게 보내는 매일 저녁의 키스,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책 1부는 저자의 후회와 통한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딸의 어린 시절, 저자가 집중하고 있는 일 때문에 딸과 눈을 맞추고 굿나잇 인사를 해주지 못했던 일. 30초면 충분했을 시간인데, 무엇이 중요해 인사를 제대로 해주지 못 했던 것일까 하는 후회가 딸이 죽고 나서야 밀려들게 된 것이다. ‘네가 없는 굿나잇 키스’ 그 먹먹함과 가슴 아픈 아련함이 전달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 그랬을까, 아 이랬어야 했는데’ 뒤늦게나마 후회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단면인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 친구, 자녀들 등 소중한 사람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시급한 현실과 타협한다. 소중한 사람들은 잠시만 일시 정지 시킨 채 당장 해내야하는 일들에 몰두한다. 특히나 이 땅의 아버지들은 평생에 수고하여 가정을 지키는 그 거룩한 숙명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가정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라는 목적을 위해 헌신하며 뛰고 또 뛰느라, 자녀들의 성장 속 아름다운 마디마디를 놓치고 만다. 가족과 자녀들이 머물러있기를 바라는 소망과 달리 세월은 야속할 뿐이다. ‘이어령’이라는 시대적인 문인도 그렇구나. 어쩌면 이 책은 한 아버지의 후회가 낳은 열매로 이뤄진 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세상 아버지들의 자화상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 역시 나와 함께 하는 것보다, 고단한 일에 지쳐 쉬는 것 혹은 본인이 더 중요했음이 사실이었다. 그 사이 나는 벌써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버지께서는 함께하지 못했던 많은 시간을 후회하고, 미안했다고 하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넘어,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 속 진실을 보는 시작이 되었다. 

 

‘네가 떠나고 난 다음에서야 아빠의 자격증을 딴 아빠가 뒤늦은 인사를 한다.’ 아빠의 자격증이라, 그것을 취득하고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우리 아버지도 저자와 같이 20대 일찍,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이 으레 해야 하는 줄 알고 결혼을 이루셨다. 결혼이라는 것 뒤에 올 수 있는 수많은 변수와 상황들을 거의 예측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정말 의식 속에서 한 생명체를 맞이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을 때, 나를 맞이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자녀양육과 관계에서 당연한 결과가 왔다. 나는 아버지와 관계의 단절, 정서적 교류가 침체된 상태로 커왔다. 그러나 어느 아버지가 이처럼, 그 누가 딸을 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살아가겠는가. 아버지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서툴렀으며 무면허로 준비되지 아니했었다. 

 

아버지가 조금씩 방법을 알아가고 터득해 가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나는 아버지를 어색해하며 밀어냈다.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책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변명 혹은 합당한 이유를 듣게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도 내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모르는 실타래를 보며 얼마나 답답해하셨을까. 분명히, 나의 어린 시절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하고 싶으셨을 텐데 쉽지 않은 현실에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속으로 많이 우셨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서투르셨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으셨다고, 이제 원망을 거두어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단숨에 1부를 읽어 가며, 내게 부성애라는 낯선 단어가 마음속에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단어가 조금은 따스해져, 장작의 불꽃이 아른아른 어리기 시작한 기분이 드는 듯 했다. 그리고 접어든 2부, 저자가 천국에 있는 딸을 그리며 쓴 시들을 찬찬히 읽어갔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해일처럼 밀려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 아버지의 사랑은 이런 것이구나. 문인은 딸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그리움을 글로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했구나.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표현한 것을 나는 왜 그토록 내가 정형화된 표현만을 생각했을까. 그러면서 왜 스스로 힘겨워하고 착각했던 것일까. 아버지와 나 사이의 단절, 갈등에 대해 크게 잘못 생각해왔던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더 능력과 여유가 있으셨다면, 더 배우셨다면 내게 더 사랑을 표현하시고 사이가 좋지 않았을까 했던 것이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경제력 능력 수준 유무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더 나아가서는 성격 성향 등에 따른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근본적 본질은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 딸을 향한 아버지의 내리사랑. 혈육으로 맺어진 끈끈한 뿌리. 아버지와 나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3부 속, 사랑은 주관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민아 목사님의 편지를 보며 깊은 공감과 눈물이 넘쳐흘렀다. 부성애라는 단어가 내게 참된 의미로 다가와 내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이제 나도 괜찮아졌다. 그 어떤 아버지의 표현도 나를 향한 사랑의 표현임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모습의 아버지라도 원망스럽지 않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녀지간의 본질에는 항상 사랑이 숨어있고 지속 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와 아버지는 둘 다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지 않는가. 지금까지는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놓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버지를 진실로 이해하고 주관적인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내가 먼저 아버지께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더 늦기 전 주어져있는 이 시간에, 내가 아버지와 회복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 감사했다. 저자는 자신이 그렇지 못했던 한을 통해 나에게 그 마음을 전달해 준 것 같았다.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 속 ‘나는 딸 하나를 잃고 더 넓은 세상의 딸들을 품는다.’ 이 구절처럼,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만 하며 자란 나를 저자가 책으로 품어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슬픔과 아픔이 독자인 나에게 유익과 축복이 된 것임은 이기적인 견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받은 유익이 내게서 그치지 않고, 어디선가 아버지와의 관계 단절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친구들에게 멘토로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고, 네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그런데 아버지의 탓이 아니라고, 아버지 역시 어쩌면 이 세상 흐름과 시대의 피해자였다고. 살갑고 다정하게 우리를 대하지 못했지만, 본질은 무조건적인 사랑 그 자체라고 말이다. 

 

저자의 굿나잇 키스는 딸의 영혼을 향해 생전에 해주지 못했던 것을 글로 편지로 대신했다. 통상적으로 굿나잇 키스는 하루의 마감을 의미한다. 또 이 밤이 지나고 새로운 아침을 위한 마음의 준비이기도 하다. 나와 아버지의 허물어진 관계를 이제 굿나잇 키스로 영원히 재우고 마감하려한다. 그리고 우리의 새로 회복된 관계를 굿모닝 키스로 맞이할 여명을 가슴 벅차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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