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513

이키주쿠리- <세븐틴 세븐틴>을 읽고 - 

 

                                                                                                                                        목포 덕인고등학교 1학년 강우림

 

열일곱은 축복일 줄 알았다. 대한민국 고딩 1학년의 시작은 불꽃쇼처럼 멋진 팡파르가 울릴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불발탄이었다. 피시식! 불길만 내뿜다가 시들어버리는 허무함만이 찾아왔다. 일류대학 합격이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야간자율학습으로 내몰리는 일상이 나의 숨통을 꽉 조였다. 허파의 횡격막이 수축되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돌고, 뇌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입시의 손길은 어디든지 따라 다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서점의 ‘청소년 독서’ 코너에 놓여 있던 회색빛 책을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소설 한 권 읽기보다는 문제집 한 권 더 풀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을 무시하고 나는 선뜻 대담하게 책을 집었다. 왜냐고? 내가 바로 ‘세븐틴’이었기 때문이다. 

 

폭식증에 걸린 나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입한다. 불만이 있을 때마다 먹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한 마리의 돼지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으로 나를 대한다. 나는 바퀴벌레처럼 이상한 존재로 무시당한다. 그런 나에게도 하나의 눈부신 태양은 있다. 바로 ‘반장’이었다. 반장은 아이돌 가수처럼 어느새 내 마음의 이상향이었고, 나는 반장의 모든 면을 사랑했다. 그러나 반장은 어느 날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은 생생하게 청소년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앓고 있는 문제들을 조목조목 족집게처럼 뽑아내어 햇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순간순간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꼼꼼하게 담아내서 내가 쓴 일기처럼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대학입시에 시달리는 청소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에 목매는 것은 소위 우등생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성적을 포기한 학생들은 다른 곳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다. 이 글의 주인공도 바로 그런 예이다. 굴다리를 지나갈 때는 공포심에 휩쓸리는 여린 소녀의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무자비한 폭군으로 군림하려 한다. 수많은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다중인격의 주인공에게 현실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냉장고 안의 음식이다. 그리고 반장에 대한 짝사랑이 그녀의 또 다른 버팀목이다. 내가 뚱뚱한 그녀였다면 어쨌을까? 

 

열일곱의 생일은 반장과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아주 가느다란, 그래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인연의 매개물이다. ‘열일곱의 생일을 축하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불행해진다.’는 영화의 한 구절을 마녀의 저주 섞인 주문처럼 외우는 주인공은 반장의 생일이 지나갈까봐 걱정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그녀는 용기를 내어 반장을 찾아간다. 근육위축증으로 시들어가는 육신을 붙들고 있는 반장은 의외의 방문에 놀란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반장은 주인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입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이 잘못 나오고 둘의 관계는 위기에 처한다. 결국 반장의 지혜로 위기는 수습되고 우리는 ‘세븐틴’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된다. 빛나는 별처럼.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어떤 때는 폭식증에 걸린 주인공이 되었다가, 다른 때는 근육위축증에 걸린 반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뜻도 모른 채 남이 시키는 대로 대학입시를 위해 무작정 지식만 먹어 치우고 있는 괴물은 아닐까? 아니면 내 진정한 자아의 곳간은 텅텅 비어, 따듯한 인간의 정이 사라져 삐쩍 마른 영혼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어느 쪽을 비추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러한 내 모습과 내가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멋진 세븐틴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에잇틴, 나인틴이 되어도 나는 계속 고민할 것이다. 고민을 하는 것이 바로 답이기 때문이다. 고민조차 없다면 그 청춘은 죽어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이키주쿠리’가 생각났다. 

 

일본의 횟집에 가면 특별한 요리가 있다. 생선의 머리와 꼬리는 남겨놓고 몸통 부분을 살아있는 채로 회를 뜬다. 생선회의 신선도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생선은 살아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한 점 한 점 회로 뜯겨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침내 생선의 살이 다 발라지고 나면 생선은 다시 수족관에 넣어진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뼈만 남은 몸통의 생선은 수족관에서 헤엄을 친다. 그러나 서서히 무게 때문에 수족관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오늘날 우리 세븐틴들은 자신들도 모른 채 이키주쿠리처럼 살고 있다. 그 틀을 깨뜨리고 나올 때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영혼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 때부터 비로소 힘들지만 의미 있는 자신만의 세븐틴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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