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570

"내 생애의 아이들" 를 읽고

 

 

부담 없는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선물을 잘 알고 있는 아들 녀석이 이번 내생일 에도 어김없이 책 선물을 내밀었다. 근래에 와선 활자체가 떨려 보이는 노안 현상으로 독서량이 뚝 떨어져 버린 상태였는데 모처럼 가슴 설레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 “내 생애의 아이들”

 

먼저 작가 가브리엘 루아는 생소한 이름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1983년 작고한 캐나다 여류 작가인데 8년간 교사 생활을 거친 경험을 토대로 여섯 편의 중, 단편을 모아 엮은 이 소설은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비평계의 찬사를 받았고 조국 캐나다의 총독 상을 수여하였다. 

 

작가가 1909년생이고 막 교단에 들어선 풋내기교사시절이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지금부터 족히 70년쯤 전의 시절이다. 그 시절, 가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활하고 황량한 북 반구 대평원의 겨울 풍경과 더불어 낯선 문화권에서 부딪치는, 무엇보다 언어 소통이 불가능한 가난한 이미지들의 공포감과 그런 여건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불안감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언 땅을 비집고 돋아난 새싹들인 여리디 여린 자녀에게 가난한 부모는 새로운 시작의 짐을 지우며 희망을 걸었고 그 새싹들의 영혼의 속사임은 서른 다섯 명의 입학 등록일로 시작된다.

 

우리 모두 거쳐 온 날.

 

두려움으로 그러면서도 설레는 호기심으로 들어섰던 생의 첫 교실! 긴 속눈썹의 맑은 두 눈에 가득 눈물이 고여 고양이가 나뭇가지에 오르듯 교사인 『나』에게로 기어오르던 ‘빈센토’ 꼬옥 껴안고 토닥이며 안심시키려 해보지만 알아듣지도 못할 이태리 말로 절규하던 그 모습…….

 

저마다  부모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울부짖음으로 그날은 작가의 표현마냥 광란의 하루였다. 몹시도 가난하여 교사인 「나」에게 그 어떤 성탄절 선물도 할 수 없어 크게 상심한 나마저 점점 눈빛이 쓸쓸해지고 목소리가 작아지던 클레르…….

 

<나>에게 창친 받는 것이 곧 자신의 삶인 양 작은 일에도 사활을 걸던 반에서 제일 착한 꼬마 신사 클레르가 마침내 성탄절날 늦은 밤 엄마가 가정부 일 나간 집에서 받은 해묵은 손수건 한 장을 들고서 「나」에게로 그 어둡고 눈보라 치는 먼 길을 헤치고 나타난 장면! 성탄절에 관해서는 우리네 정서와는 좀 차이가 있지만 좋아하는 선생님께 기쁨을 드리고 관심을 끌고 싶은 심정이야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가슴서린 장면이 아니던가?

 

여섯 명 모두가 다 그랬지만 ‘집보는 아이’ 앙드레 편에서는 성장기의 고통과 고독, 그 가운데서 찾아내는 용기와 헌신을 보면서 바로 내 아이들이 자란모습이며 나아가 까마득히 지나온 나의인생의 한 단면을 되돌아보는 듯 했다. 특히 많은 분량의 몽상가 메데릭 애기는 곧 사로잡히고 말 순진한 짐승 같은 열네 살 소년이 열여덟 살 교사에게 연정을 느끼는 풋풋함을 그대로 내 뿜었다. 

 

그 수줍음과 떨림,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과 고통이 더 없이 상세한 필치도 그려졌고 무서운 눈보라 속을 뚫고 함께 마을로 돌아오던 날 밤의 그 사랑의 모험, 청춘의 모험, 인생의 모험을 보면서 학교를 단지 지성의 감옥이며 감금의 장소로만 여기던 야생마 같은 몽상가 소년에게 공감과 함께 연민을 느꼈다.

 

그 야성의 바람을 잠재우고 다스려야할 교사인 「나」를 갈등케 한 이유가 「나」역시사춘기를 겨우 벗어난, 때로는 학교를 일종의 함정으로 느끼는 적도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로 충분히 공감하였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특이한 다문화적 환경에서 그려진 풋내기 교사의 소박한 얘기는 실은 67세의 원숙한 대가가 쓴 인생 찬미의 성장소설답게 꼬마 빈세트에서 성큼 커버린 메데릭과의 가슴 아픈 헤어짐으로 가슴 찡~함을 남기고 마지막 페이지를 마무리 짓는다.

 

책을 덮는 순간은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2,3일의 독서로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이 촉촉해지던가!

 

이 책의 겉표지에 모 방송사의 독서 권장프로에 소개되었으며 청소년권장도서라 덧붙여 놓았는데 내 생각엔 물론 청소년에게도 적합하지만 나처럼 나이가 든, 적어도 자녀를 양육해본  경험이 있는 층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지나간 날의 추억을 고스란히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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