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509

내 마음 속 작은 쉼터를 만나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를 읽고 - 

 

                                                                                                                                             김낙곤

 

책장을 펼치고 몇 분쯤 지났을까. 나미야 잡화점의 풍경에 문득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그 곳이 생각났다. 탱탱볼, 플러버, 만득이 등 유행을 겸비하여 낡은 것들까지 없는 것이 없었던 경찰서 맞은 편 문구점. 난 늘 100원, 200원 하는 스티커와 종이인형, 종이돈을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집까지 달려오곤 했다. 주인 아저씨는 색도화지를 건넬 때 아무 색깔이나 주셔서 개눈을 이식하여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단 동네 아이들끼리의 소문도 있었다. 그 문구점에서 색분필을 사서 바닥에 땅따먹기 판을 그리기도 했고, “에에에, 너 혼자 후레뷔! 팔찌 했으니까!” 라고 외치며 동네 아이들과 그 주위를 맴돌았다. 후레뷔 놀이는 홀아비라고 손가락질하는 나쁜 행동이라며 엄마는 그 놀이를 저지하였다. 앉으면 못 잡기 놀이를 한다고 앉은 자세를 취했다가 코가 유난히 빨갰던 동네 강아지 뽀삐에게 엉덩이를 물려 주인 할머니께서 약을 발라주시기도 했다. 안락했던 추억 속에 잠겼던 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서서히 나미야 잡화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둑 셋, 처음부터 밉지가 않았다. 좀도둑이라니, 그것도 초보인지 원래 선한 성품인지 긴장을 잔뜩 한 와중에서도 배고픔에 칭얼대는 세 친구에게서 난 순진함을 읽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공부를 좀 못하고 또래 문화를 지닌 사실 더 의리 있고 순수했던 몇 명 아이들이 도둑들과 오버랩 되었다. 아이들은 일찍이 선생님들의 편견에 낙인이 찍혀 상처를 입었고, 도둑들 역시 변변치 못한 직업을 가진 이들로 간주되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것뿐이지 나쁜 이들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책을 읽는 동안 두려움 없이 도둑들을 믿고 의지했다. 덜덜 떠는 그들을 보며 박진감과 함께 ‘무슨 도둑들이 나보다 더 간이 작아?’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들을 도둑, 아니 세 친구라고 부르려 한다. 

 

세 친구가 편지에 답장을 시작했다. 낡은 잡화점에 숨어 있으면서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심지어 진심으로 고민해주며 글씨와 문장이 괜찮은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상대의 마음이 되어 함께 헤쳐가려는 모습은 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답장까지 해주는가. 그래서 난 이 이야기가 참 따뜻했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땐 손편지를 많이 받았다. 고민을 잘 들어준다고 내가 그 대상이 되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며 나 역시도 변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바쁘고 손편지를 대체할 매체들이 많아서 편리함을 택하게 된 건지 씁쓸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핸드폰 게임을 하며 임시방편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 듣기를 외면하는데, 이는 대충 자신을 속이고 괜찮은 척하는 스스로에게 미안한 행동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첫 번째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큰 병에 걸린 운동선수의 괴로운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난 연애를 할 때면, 늘 애살 있게 무언가를 시도하여 스스로를 바쁘게 만든 나의 일과와 남자친구와의 시간 사이에서 관계의 줄타기를 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편지는 좀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이 더 높은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가려고 하며, 정부 역시도 취업률이란 지표를 내세워 퇴출 대학을 지정하려 하여 대학의 기능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학업을 위한 장이 아닌 취업 시장에서의 전투의 장소가 되어 속상하다. 그래서 일류대학을 그만 두고 자신이 진정 하고픈 일을 하는 두 번째 의뢰인의 용기가 더 멋지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는 어린 아이를 구하려 목숨까지 바쳤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도 한참동안 그를 기릴 수 있었다.

 

올 것이 왔다.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맞았다. 더 인자하고 따뜻한 분이란 게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답장을 쓰는 일이 그 분을 살게 하는 힘이란 것에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나 역시 무기력함은 날 시들게 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남에게 도움이 되고 보람 있는 일을 해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로써 난 행복감을 느낀다. 적성 검사를 하면 어김없이 남을 돕는 일이 내 성향으로 나왔다. 대학생 때 난 해외봉사와 국가 장학금 부서 등에 들를 때마다 자신의 업무 내용을 잘 숙지하고 버무려서 학생들을 도와주는 직원 선생님들을 보며 몹시 동경하였다. 나 역시 그 꿈을 이루어 일하고 있다. 

 

또 인상적이었던 편지는 길 잃은 강아지님의 것이었다. 자신을 길러준 이모할머니를 경제적으로 돕고 싶은데 사무원으로선 그에 미치지 못하고, 돈을 많이 주고 재밌는 호스티스 일에 유혹이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타락한 삶을 살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아, 이 언니는 착한 사람이다. 내가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도둑, 아니 어느새 나의 세 친구가 나침반이 되어 주어 고마웠다. 참 다행이었다. 사실 난 대학생 때 나침반이 없어서 성장통을 몹시 앓았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라는 바른 길을 가지 않는단 쓴 소리를 들어가며, 내가 진정 좋아하며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방황해야 했다.ㅡ감사하게도 찾게 되었지만. 

 

길 잃은 강아지님이 사업가로 성공하여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려는 보육원을 지킨 것은 정말 마음이 짠했다. 나 역시 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은혜를 많이 입었다. 하지만 난 내가 어리니까 보호 받고 도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었다. 왜 내가 그런 은혜를 입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여기며 시간과 노력을 다하여 베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라도 스쳐지나가는 이들에게도 베풀 줄 아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단 다짐을 해본다. 어른, 어른이라…….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내 앞에 선 사람이 혹시 노약자는 아닐지 바지자락 그 이상의 모습을 보려는 노력을 애써 차단한 적은 없었는지. 내 몸 좀 편하고자 ‘또 볼 사람도 아닌데 뭘.’ 하는 마음으로 자리 양보를 미루는 날 포함한 현대인들이 많지 않던가. 나부터 실천하여 우리가 되고 모두가 되면 좋을 텐데, 우린 외부의 스트레스와 내면의 상처를 안고 각자가 적절한 타인으로 살아간다. 대학생 때 저소득 가정 학생에게 멘토링을, 복지관에선 배식과 설거지를, 유니세프엔 기부도 했었다.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가선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단 사실에 깊이 감사했다. 지금의 난 그때의 내가 맞는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은 바쁜 직장인이란 이유로 내 마음을 보듬지 못한 나에게 어린 시절 내 작은 쉼터를 만나게 해주었다. 마음이 한결 깨끗해진 것 같다. 또 각종 범죄에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다고 하나, 우리 세상은 아직 아름답단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휴일, 세 친구는 쉼표가 필요했던 내 육체와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오늘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상대가 미처 꺼내지 못하고 끙끙대던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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