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엄마’로 성장하는 시간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
조은솔
잠든 딸아이의 이마 위로 굿나잇 키스를 건넨다. “잘 자, 사랑한다.” 라는 인사말과 함께. 가만히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미안함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난 오늘 또 왜 딸에게 화를 내고 말았을까. 눈을 바라보며,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줬어야 했는데. 왜 꼭 잠이 든 후에야 후회가 밀려오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부모들의 ‘굿나잇 키스’는 어떠한지. 그래서인가보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제목만으로 매혹된 것은.
처음 제목만 보았을 땐, ‘달콤한 저녁 인사’를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만큼 유명한 작가, 이어령. 그의 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후, 딸에게 해주지 못한 ‘굿나잇 키스’를 담은 것이었으니. ‘처음에 책장을 넘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두렵고, 아프기 때문이다. ‘딸의 상실’을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책을 모두 읽어내길 ‘아주 잘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꼭 아이들의 ‘아빠’와 함께 읽고 싶다.
이제 34개월이 된 딸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 와요?”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한참을 보지 못한 터다. 그 사이,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라 할머니나 할아버지처럼 ‘어쩌다’ 우리 집에 놀러오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나보다. 아이에게 등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등만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모든 ‘아빠들’의 숙명인가 보다. 저자 또한 ‘젊은 아빠’ 시절, ‘가정’의 안녕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글 쓰는 것에 전력을 다 했던 그는, 밤마다 찾아와 ‘굿나잇 키스’를 하는 딸의 인사를 제대로 받아줄 수 없었다. 딱 30초면 되는데 말이다. 눈을 맞추고, ‘그래 잘 자렴’하며 안아주는 인사. 많이 소모해야 5분 남짓. 하지만, 저자는 그러지 못 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으로 딸에게 ‘행복’을 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것을 딸에게 ‘빼앗았음’에 대한 후회가 담겨 있다.
우리 가정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초보 아빠’ 시절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강렬한 욕망. 그것은 남편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은 생각에, ‘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우리의 목표는 번듯한 ‘집’을 갖는 것이다. 어떤 곳에, 어떻게 하면 집을 살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관심사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A house is not a home" 집이 곧 가정은 아니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살 집’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지만, 그 안에서 살아갈 ‘우리 가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가령 한 달에 한 번은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간다든지, 매일 30분씩만이라도 TV나 핸드폰 없이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해 놀아 주자든지 등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넓은 집이 있다한들, 그 집 안에 ‘웃음’과 ‘기쁨’을 채울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실 고백하자면, 난 요즘 참 많이 지쳐 있었다. 34개월 딸, 그리고 7개월 아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나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난 작가를 꿈꾸는 엄마다. 한낱 ‘작가 지망생’에 불과하지만, 온 종일 글 쓰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하지만,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 밥을 먹이고, 쫓아다니며 치우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리기 때문이다. 아직 모유수유 중인 둘째는 잠자다가 나만 없으면, 깨서 운다. 첫째는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 놀아달라고 보챈다. 나는 ‘하나’인데 해야 할 것은 산더미다. 반복된 일상에서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깨달아질 때면, 슬픔이 밀려온다. 분명,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첫째 딸은 나의 ‘화(火)’를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둘째가 사고를 쳤음에도 내 고함소리는 딸을 향한다. 딸의 죄라면, 오직 엄마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뿐인데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 무엇이든 안 된다는 엄마. 그 사이의 실랑이. 그 실랑이에서 이기겠다는 욕망은, 마침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낼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잃어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하루하루 충분히 사랑한다고 속삭이기에도 모자라는 삶이다. 저자의 딸은 그녀의 아들을 갑작스럽게 잃어버렸다. 그녀 또한 그녀의 아버지처럼 자식을 잃은 후 더 사랑해주지 못했음을 슬퍼했을 것이다. 부모란 주고 있음에도 주지 못한 것에 아파하는 사람들 아니던가.
하지만, 과연 ‘죽음’만이 ‘상실’일까? 사춘기 시절을 보내야 하는 자녀들. 그 안에 ‘충분한 사랑’이 없으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옆에 있어도, 나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큰 슬픔이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지금 당장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실’이 내게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모성애가 없는 ‘낙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젖 물리는 것조차 거부하는 낙타가 ‘마두금’의 연주소리를 들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는 이야기. 저자는 그러한 예술이 사랑을 일깨울 수는 있어도 사랑 자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난, 이 책 한 권을 통해 ‘엄마’로서 부족한 내 사랑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마두금 소리에 울며 젖을 물린 낙타처럼, 나 또한 ‘엄마’로서 새롭게 태어나자고 결심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소망도 결국은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랑스러운 엄마’이기보다는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엄마’인 것이다. 꿈은 도망가지 않기에, 꿈에 시간을 쓰지 못 함에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필요할 때, 다시 노력하면 된다.
저자의 딸은 간증을 통해 고백한다.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 늘 공부를 잘 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딸이, 사실은 유명한 ‘아버지’를 위해 공부했다는 것. 하지만, 그 순간순간 너무도 불행했었다는 이야기는 내 가슴을 짓눌렀다. 생활의 풍족함을 준다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나는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아이는 불행할 수 있구나. 저자의 딸은 그러한 불행이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사랑’의 형태가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팠음을 고백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아이들’로 키우지 말자고 다짐한다. 대신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가 되자고. 아직 부모의 품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들에게, 세상은 더없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자고. 우리의 ‘등’이 아닌 ‘가슴’을 보며 자라게 해주자고.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엄마’란 존재가 ‘엄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엄마’로 성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한 ‘성장통’을 겪는 중, 소중한 책 한 권을 만났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엄마’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Chapter
- 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저자특별상(일반부) - 임종훈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금상) - 김벼리 / 광주 운남초 3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은상) - 박혜나 / 경기 체러티 크리스천 중 1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대상(일반부) - 김효진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 대상(학생부) - 신채은 / 울산 문현고 3학년 <윌든>을 읽고
- 금상(일반부) - 남정미 /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미경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강우림 / 목포 덕인고 1학년 <세븐틴 세븐틴>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김규리 / 혜화여고 2학년 <요금 괜찮니 괜찮아>를 읽고
- 은상(일반부) - 김낙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 은상(일반부) - 김현정 /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조은솔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 은상(학생부) - 김은혜 / 민락초 6학년 <남북 공동 초등학교>를 읽고
- 은상(학생부) - 금소담 / 부산 이사벨중 1학년 <세븐틴 세븐틴>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임현진 / 사직여중 1학년 <나는 옷이 아니에요>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견선희 /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을 읽고
- 동상(일반부) - 김미진 / <황금방울새>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수자 / <요즘 괜찮니 괜찮아>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슬기 / <완벽한 계획>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이효중 / <나는 넘어질 때마다 무언가를 줍는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민지 / 영도초 6학년 <바느질 소녀>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예리 / 김해 가야고 1학년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상헌 / 사천 동성초 5학년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박수정 / 연제초 6학년 <빨간머리 앤>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손예진 / 모덕초 1학년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