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566

"인연 이야기" 를 읽고

 

 

법정 스님의 글에는 우리의 잠을 깨우는 죽비치는 소리가 가득히 울려온다. 녹슨 수풀을 헤치며 스님은 우리를 앞서가며 길을 틔워주지만 또한 신호등으로 엄격한 통제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글속에 우리가 감히 저항하지 못하는 합리가 담겨있고 삶의 큰 길이 열려 있음이다. 그는 특정종교로 설파하지만 그것은 우리 일상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이며 그의 신앙은 모든 가슴이 공유하는 열린 믿음이다. 그러기에 그는 스님이기 이전에 길 잃은 양떼의 목자이며 구도자로서의 실천적인 삶을 살면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시대의 황야에서 외치는 고독한 목소리인 것이다.

 

무소유의 삶.

 

빈 것이 충만임을 깨우쳐 주는 그의 글들이 때로는 설레임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며 우리를 유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연이야기>는 불교의 여러경전에서 인연에 관련된 내용들을 발췌하여 스님이 주석을 단,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경고성의 책이다. 이 책은 우리들의 인연이 서로 물고 물린 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가혹하리만치 지독한 순환임을 말하고 있다. 전생의 대가가 현세이며 내세는 현세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에 접목된 우리의 이 같은 인연은 선과 악의 연을 거듭하며 영겁의 세월로 치닫는다. 부처가 된다는 해탈의 그 정점까지 우리는 얼마나 무거운 업보의 무게를 짊어진 채 윤회의 바퀴를 굴려야 하는지. 

 

아무리 굴리며 올라도 산아래도 떨어지고 마는 시지프스의 바위마냥 끝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여정이 그저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스님은 그 세월속에서 잡목처럼 자라나는 악연의 가지를 자르고 선한 인연의 꽃을 피우라고 한다. 비록 지금 우리는 현세라는 간이역을 지나고 있지만 종착역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선업을 쌓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흔들리는 세대일수록 악연의 뿌리는 깊이 내리는 법. 스님의 일갈이 절실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시대가 그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면에서 기독교는 불교에 비해 참 편리한 종교인 듯하다. 아무리 지은 죄가 많을지라도 진정한 참회와 함께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으면 모든 죄를 사하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하늘나라로 갈수가 있어 불교처럼 측량할 길 없는 시간의 윤회 속에 갇혀 신음할 필요가 없을테니까 말이다. 물론 각 종교마다의 특색은 그 신앙의 독특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아무튼 모든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세의 삶이 아닐까한다. 살아가면서 결코 악연의 검은 손을 잡지 말아야하는 권리와 의무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나를 이 무덤같이 어두운 악연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할 것인가!

바로 나! 지금의 내가 그 열쇠를 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가슴에 사랑의 밭을 일구고 자비의 싹을 틔우는 것만이 우리를 빛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 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 타인의 하나를 뻇는 세상.

 

제로섬(zero-sum)의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대칭적으로 기울어가는 우리네 삶의 저울. 돌려주고 나누어주어서 기울어가는 저울을 평형으로 갖다 놓을 때 영겁으로 달음질치는 우리들의 악연의 족쇄가 풀리지 않겠는가!

 

라마스떼!

인도 사람들의 인사말이다. 나에게보다 당신에게 더 많은 신의 축복이 있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지 않은가! 수 천 년을 내려온 그들의 종교가 건져 낸 그 한마디. 라마스떼.. 신이여 나를 버리고 저이를 택하소서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나는 인연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지구 대기권위에 라마스떼라는 또 하나의 층을 우리가 만들어 우리 모두 그 라마스떼층의 공기로 호흡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반구절의 생명수 같은 말씀을 얻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다는 어느 구도자의 정신이 이 책에 담겨있다. 얽키고 설킨 채 수많은 인연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그 삶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엿보인다. 주어진 한번의 목숨마저 미련없이 던지면서 삶의 해답을 구하는 그 몸부림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고독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라고 스님은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네 범속인들은 가뭇없이 사라지는 보랏빛 노을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야만 할 것이다. 그 부르는 소리가 억겁의 시간동안 텅 빈 메아리로 남을지라도 부르고 또 불러 서로의 간격을 좁혀가야 한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그 살가움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임을 알아야겠다.

 

나는 책을 덮으며 알게 모르게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을 회상한다. 타인과 주고받은 상흔을 헤집으니 내 몸 속에서 무수한 벌레가 기어 나온다. 그 벌레가 내 몸속에서 한 마리씩 빠져나올 때마다 나는 자유를 느끼고 평화를 맛본다. 이제는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그들에게 용서받고 싶다. 그리고 내 가슴에 상처를 낸 이들도 모두 용서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 삶의 무게가 먼지처럼 가벼워져 새처럼 창공을 훨훨 날고 싶다. 자유와 평화가 내 손바닥 안에 놓여 있는데. 움켜쥐기만하면 그것은 내 소유가 될 터인데..

 

왜 내가 나인가하는 명제를 앞에 두고 적지 않은 시간을 고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것은 너와 내가 하나이기에 비로소 내가 나일 수 있음을 알았다. 진정한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들에 핀 이름 모를 풀꽃이 나이고 거리에 뒹구는 조그만 돌멩이가 나이고 그리고 너가 바로 나이다.

 

아!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귀결되는 것을.

부처의 길이 그렇게 끝나는 것을.

 

“인연이야기”

 

스님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또 하나의 값진 선물이다. 이제 우리도 스님께 답례를 해야겠다. 우리의 가슴 밭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 그 씨앗이 숲으로 자라나 선업의 열매를 맺는 것이 스님께서 흡족할 우리들의 공양이 아닐까한다. 그리하여 우매한 우리들을 위하여 고뇌한 그 기나 긴 시간들의 보상으로 이제는 절필의 자유를 스님께 안겨야겠다.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겠다.  라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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