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242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 -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를 읽고 

 

                                                                                               경주여고 2학년 박하예지

 

아침저녁으로 날이 제법 쌀쌀합니다. 여름 햇살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더니 어느새 성큼 가을입니다. 일 년 열두 달, 또 책을 읽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떻게 새파란 시월 하늘 아래 선 저를 아시고 딱 <10월October>이란 시가 책에 실려 있는지요. 꼭 같이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몇 년 전 영어시간에 배웠던 시입니다만, 뚝 뚝 떨어지는 이파리에서 수전노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동전을 떠올린 시인의 생각은 여전히 새롭습니다. 식물들에게 가을은 죽음의 계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역시 제게 10월은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수채화로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며칠 전에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화면에 비친 풍경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어 있었거든요. 새삼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가운 바람과 춘추복으로만 무감하게 가을을 인지했을 뿐, 이른 아침과 캄캄한 밤에 잠깐 걷는 기숙사 등교길로는 단풍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거든요.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이상도 하지요. 제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이야기였는데도 불구하구요. 특별히 감동적일 것도 없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선생님께서 자신 있게(?) 전하신 우스갯소리를 읽고도 저는, 웃음보다도 먼저 떨어지는 눈물을 닦느라 바빴습니다.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를 잘 못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탓인 걸까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 8년 동안, 제법 많은 글들을 써 왔습니다. 아마 학창시절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요. 일기, 독후감, 무슨무슨 날마다 여는 백일장, 숙제 등을 쓰면서 저는 한 가지 기술을 터득했어요.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속으로는 비웃으면서 감동한 척 갖은 기교를 우겨넣으면 으레 좋은 점수를 받곤 했지요. 제게 글쓰기란 재미있는 거짓말이었어요. 좋은 글은 화려하고 어려운 비유를 써서 배배 꼬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렵지도, 멋진 비유도 없는데 선생님의 글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고 있다기보다 다감한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 더하여 당신 자신을 읽고 있는 듯 했어요. 곳곳에 배어나는 따뜻한 시선과 사랑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글은 곧 사람이다’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지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조금 더 알고 싶었습니다. 물론 선생님 성함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쓰신 글도 알게 모르게 몇 번 접했지요. 하지만 선생님이 목발을 짚으셨다는 것도,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너무 젊고 행복해 보이시는데……. 다정하고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행복의 무게가 어쩐지 더 짙게 다가옵니다.

선생님이 일생을 사랑하셨다던 시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짧은 영어로 떠듬떠듬 읽어나가다가 곧 포기하고 번역하신 글들을 읽었습니다. 모국어에서 느낄 수 있는 운율이나 리듬감이 떨어져 시어들은 평범했지만, 의미만은 퇴색되지 않고 더 깊게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좋은 글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행복Happiness>이라는 시는 제목부터 어딘가 속을 철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적어두신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달리 잘하는 것도 없었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어요. 그리고 그런 외적인 것들보다도, 도무지 살아감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마음이 나락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극한 조건에 있는 사람보다도 제가 더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마저도 타고난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하는 제목을 보고서도, 뭉클함보다 선뜩함이 앞섰습니다. 밤에 눈 감으며 이것으로 다시는 눈 뜨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영원히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빌다가, 여지없이 환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문득 어느 밤 꿈에서 만난 저승사자가 떠올랐습니다. 그 때 저승사자는 소름 돋도록 생생한 모습이었어요. 심장이 멈춘 듯이 무서웠던 감정을 기억합니다. 저를 스쳐지나갈 때에 느꼈던 안도감도 기억합니다. 꿈에서 깨었을 때 조금 울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잃고 나서야 가지고 있던 것의 소중함을 안다고들 하지요. 저는 만성적인 두통을 갖고 있는데, 그게 심하여져 지독하게 아픈 날이 있어요. 그 때서야 건강했던 날들이 행복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아요. 생각하면, 그리움과 미안함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또 눈물부터 나오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일의 희망도 갖고 있습니다. 잘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선생님이 전해주신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네요. 문득 깨닫는 순간에 저는 또 울고 있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를 찾아 헤매고 있는 동안 진짜 행복과는 멀어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는 일을 겪습니다. 울 곳이라고는 두 자 쯤 되는 독서실 공간 뿐, 이불 뒤집어 쓴 침대에서는 눈물조차 말라붙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다감한 목소리가 전하는 따뜻함에 한없이 울고는 도리어 일어날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의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겨울이 만약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하고 말하지요. 때로 어떤 일들은 나아지기 직전에 최악으로 보인다고도 하지요. 창밖에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은 늦은 새벽, 향기로운 커피 내음을 맡으며 생각합니다. 제 마음의 냄새도 이렇게 그윽하고도 향기로웠으면 좋겠다고요.

선생님께서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번역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팔락팔락 넘어가는 책장에서 선생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과 평생을 함께할 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왔다간 흔적으로 그 따뜻함으로 속이 따뜻하게 데워집니다. I shall not live in vain…… 생전 좋아하셨다는 시 한 구를 하얀 국화꽃 대신 얹어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밝아올 아침에도 축복처럼 꽃비가 내리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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