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236

소통하는 가족 - <아버지의 눈물>을 읽고 

 

                                                                                               광주제일고 3학년 김영우

 

수능 문제집을 사려고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다 ‘아버지의 눈물(김정현/문이당)’ 이란 책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눈물이라니...? 아버지도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난 우리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비록 곡소리는 내셨지만), 사업이 망해서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했을 때에도, 3년 전 봄에 간암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아버지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 또한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는 괴상한 자존심이 있어서,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아프다면서 울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게 대견하다고 하시면서도 약을 발라주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아프면 울어도 돼. 대신에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아프지는 않았지만 콧잔등이 시큰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왜 한 번도 우시질 않는 걸까.

고3 수험생이지만, 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궁금해 했던 의문을 이 책이 해결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맘 먹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버지의 눈물’을 펴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선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 또한 아버지가 되어야만 할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을 때처럼 큰 감동으로 다가오진 않았던 것이다. 울컥하는 기분이 몇 번 느껴지긴 했지만, 그건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상인아버지가 패배의식에 젖어 사는 모습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상인아버지의 책임감과 의무감의 무게에 짓눌린 부담스러움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답답함을 전달받았을 뿐이다. 나는 상인 아버지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결국엔 구속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씩 깨져가는 얼음 위에서 점점 더 깊고 위험한 곳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얕은 물에 풍덩 빠진 뒤 정신을 차리고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이 책 ‘아버지의 눈물’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들 둘의 아버지인 흥기는 백 박사의 벤처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이란 직함으로 근무한다. 백 박사가 국회의언에 출마했을 때 선거를 도와줬다는 명목으로 그 자리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공학이 아닌 정치학을 전공한 흥기는 불확실한 현재 위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어느 날 동창모임에 나갔다가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권유로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공금에 손을 대게 된다. 하지만 주식에서 큰 낭패를 보게 된 뒤 적지 않은 돈을 백 박사 모르게 채워놓아야 했던 흥기는, 돈을 구할 길이 없어지자 급기야 자살까지 결심하게 된다. 게다가 복학하기 위해 등록금과 방세보증금을 갖고 지방에 간 큰 아들 상인이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종적을 감춰버린다. 그러자 흥기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아내는 큰 아들이 가져간 돈을 다 써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사시공부를 하는 작은 아들에게 고시원이라도 얻어주자며 남편을 닦달한다. 결국 상인이 크게 다치는 바람에 죽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 주인공은 백 박사의 신기술을 훔쳐내서 중국으로 도망가려 하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먹고 경찰에 자수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소통하며 화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책임과 의무가 그렇게도 무겁고 벅찬 것이었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고는 우리 아버지의 경우도 떠올려보았다. 5살 꼬맹이 서절에 정원이 있는 넒은 집에서 아버지와 공놀이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일, IMF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그 집까지 빼앗기고 새벽에 도망치듯 몰래 빠져나왔던 일, 엄마와 나를 외할머니 댁에 데려다 놓곤 아버지 혼자 2년 동안이나 빚쟁이들을 피해 노숙자 생활을 하셨던 일, 하지만 다시 나타나셔서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시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학까지 공부시켜주겠다며 호언장담하셨던 일, 빚을 갚는 와중에도 재기를 꿈꾸며 푼푼이 모은 돈을 친한 친구에서 사기당하고 허탈하게 웃으셨던 일..... 어디 그뿐인가. 아버지는 간암선고를 받은 뒤에도 각종 건설현장의 잡부로부터 시작해서 페인트칠 보조, 이삿짐 도우미, 공공근로까지, 남들이 흔히 말하는 막노동을 하시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렇게 모질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는 점이다.사실, 이 책에서도 상인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책 제목은 ‘아버지의 눈물’인데, 정작 책 속의 주인공이 눈물 흘리는 장면은 안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속의 눈물은,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이지, 우리 아버지도 남모르게 많이 우셨을 것이다. 그동안 상인아버지보다 훨씬 더 깊고 굴곡진 인생역경을 헤쳐 오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인아버지처럼 절망과 패배의식에 젖어서, 삶의 회의를 느낄 정도로 비참한 심정으로 살아오시지는 않았으리라 조심스럽게 자문해본다. 나는 되도록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통해 교육과 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어머니 또한 경제적으로 무척 힘드셨지만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어머니의 마음속에서는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거친 말을 내뱉지 않으셨다. 게다가 상인이네 집은 아파트라도 한 채 있지만, 현재 우리 집은 전세도 아닌 월세 방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가족 그 누구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이뤄놓은 것은 별로 없지만, 그 동안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소통’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가족 간에도 소통, 친구 간에도 소통, 이웃 간에도 소통.....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지자체에서도, 나라에서도 소통을 슬로건으로 내놓는다.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 기울이며 상생공영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이네 가족은 왜 소통하지 못했던 것일까? 오로지 최고가 되어야한다는 일류병, 돈만 있으면 행복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 나만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된다는 극심한 이기주의 등등..... 우리를 위한 소리보다는 나만을 위한 소리를, 남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연신 내 말만 우겨대는 사람들의 서로 혼자만 잘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대는 곳이 바로 현대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서로 돕고 협동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상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통의 부재’가 가장 안타까웠다. 흥기와 흥기 아내, 상인과 상우, 그리고 흥기 누나 등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아껴주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기변명과 책임회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상인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서 죽음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 중에서 가장 비겁한 짓이었다. 자살은 진정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고 현실세계로부터 자기만 도피하려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아들 상인은 새 출발을 하겠다는 자기 변명하에 부모님의 속을 뒤집어놓았고, 사시공부를 한다는 상우는 자기우월감에 빠져서 부모형제까지 무시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또한 흥기 아내는 어떠했는가. 자식의 장래를 위한답시고 남편을 사지로까지 몰고 가지 않았던가. 그나마 누나가족이 상인아버지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 큰 위안거리였다. 비록 부유하진 않지만 모든 가족이 자기 위치에서 제 몫을 다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기 누나의 가족은 그 누구보다도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며 소통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우리 가족처럼 말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간암을 꼭 이겨내셨으면 좋겠고, 또 우리 가족이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면서 계속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깟 돈이야 좀 없으면 어떤가. 가족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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