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222

어둠 속, 별빛을 찾는 청춘들에게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 

 

                                                                                             동래구 수안동 강내근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번 고민했다. ‘그래, 이제 이정도까지만 읽자’ 이런 생각을 가지된 것은 책을 절반쯤 읽은 후 부터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 이야기를 다 알게 되면 너무 서러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젊음이란 것은 ‘완성’이란 단어보다 ‘미완성’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 읽지도 않은 책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마치 일기 같은 그 이야기들이 오늘을 사는 내게 어떠한 의미를 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서로 ‘풀’처럼 엉켜 바람에 맞서던 그 시절, 아침 이슬 같은 그 청춘들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 졌던 저항, 자유, 민주주의의 이미지들 뿐 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청춘은 항상 ‘투쟁의 청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 속 그들은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사랑에 아파하고,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평범한 청춘들이 겪는 그러한 일들을 그들 역시 겪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 속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점에서 ‘투쟁’이란 단어의 의미가 바뀌어 갔다.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름의 투쟁적인 청춘의 삶을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지금의 청춘을 살아가는 나와 같이 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윤’은 모두가 뒤바뀐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촌언니와 함께 살 때에도 창문에 검은 색 도화지를 붙여놓고 방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스스로 어둠 속에 숨어 버렸다. 나는 그러한 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윤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도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나도 한때 ‘나의 청춘은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라고 여겼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심장을 태워 버릴 듯한 태양만이 존재하는 그러한 사막 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수업을 듣는 도중에도 연습장 한 귀퉁이에 ‘건조한 삶’이라는 글귀를 가끔씩 끼적였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원하지 않은 인위적인 줄 속에 대학은 나를 강제로 세워 두려했고, 그 속에서 난 오로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의 부족한 점을 ‘스펙’이라는 퍼즐로 채워가는 지겨운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윤이 일부러 그 낯설음을 몸으로 부딪혀, 낯섦 속에서 익숙함을 찾기 위해 학교까지 가는 길을 걸어서 간 것 과 같은 시도는 해보지 않은 채, 다만 내 청춘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다른 탈출구를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고민을 극복하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인연’과 ‘우연’ 덕분이었다. 신입생 시절, 동아리에 우연히 가입 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통해 나의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한 여러 활동들을 통해서 세상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도 내가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한 우연한 인연은 마치 윤에게 ‘미루’와 ‘명서’가 다가간 것과 같이 나에게도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그 해답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주위의 그들을 보지 못한 채 스스로 윤처럼 어둠속에 진심을 숨기고 있었다. 

 

처음 접한 신경숙 작가의 이야기에는 이렇듯 공감 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내 경험과 일치 되는 부분도 찾을 수 있었고 청춘의 시절을 겪은 작가가 느낀 청춘의 고독과 흔적들이 소설 속 문장들 마다 스며들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경험들은 다시 이야기가 되어 새로운 청춘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응원가처럼 들렸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작가 자체도 밝힌 ‘죽음’으로서 상실이 시작되고 ‘죽음’으로서 상실이 끝나는 어쩌면 너무 가혹하고 어두운 청춘들의 모습인 것 같다. 물론 그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청춘의 위기가 전부다 죽음에서 기인하고 죽음으로 끝나는 점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삶 자체가 너무 슬퍼서 작가의 고유권한을 침범한 채 욕심을 부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 속에서도 청춘의 한가운데서 갈등하거나 권태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 내가 가진 슬픔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 하는 그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은 글이 하나 있다. 소설 속 단이 좋아했던 시인인(나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이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쌀쌀한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가을은 내 발밑까지 찾아와 길거리에 흩어져 있다. 뉴스를 보니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단풍소식이 가장 관심을 끈다. 하지만 형형색색 찬란한 빛을 내는 단풍을 보니, 처음 책읽기를 중단할 생각 했던 그때처럼 서럽게 느껴졌다. 단, 미루... 그 푸르렀던 청춘들이 생각이 나서, 그리고 그들이 성숙한 단풍이 되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채, 뜨거운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미어졌다. 하지만 윤 교수도 말하지 않았던가? “슬퍼하지 말라고,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하늘에는 별이 있어서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고.”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떠랴. 그 어둠속에서 이제 우리가 그리고 내가 별이 되어서 어둠을 밝히는 별빛을 만들자. 

 

나도 어느새 명서가 바라던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를 향해 가고 있다. 그렇게 아주 힘센 사람이 되면 푸르렀던 청춘을 다시금 이야기할 때 “그 때는 그 고민이 내겐 아주 컸는데 돌이켜 보니 내가 너무 멀리 와서인지 그 고민이 작아져 보이더라.” 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창밖으로 가을바람이 스쳐가는 소리가 들린다. 날도 점점 쌀쌀해지는 이 순간, 우리, 서로를 보듬어 보자. 손을 잡든 끌어안든 명서가 한 것처럼 내 주위의 사람들을 먼저 안아주자.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자. 사랑만 하기에도 우리 청춘은 짧기에, 그렇게 모르는 사람 백 명쯤 껴안고 난 후, 그 사람에게 말하자. 

 

내.가.그.쪽.으.로.갈.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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