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758

나는 영원히 버리지 않겠다, 내 나라를. 덕혜옹주 - <덕혜옹주>를 읽고

 

                                                                                           대구경화여고 2학년 이현진

 

언젠가 내가 그림이 나온 책이면 뭐든지 좋아했을 그 시절,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실이라는 설명과 함께 나온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빛바랜 사진 속 유독 빛나던 어린 옹주가 있었다. 단정한 차림에 절제된 자세, 그리고 정적인 사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호소하는 깊은 눈동자. 나는 이미 그 순간에 그녀에게 매료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선 항상 그녀를 만날 날을 고대했을지도. 학교에서 대한민국의 역사, 그 중에서 일제 강점기의 조국을 만나는 일은 항상 힘들다.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도 주먹을 꽉 쥐시고 울분을 토하셨으며, 듣는 우리도 ‘와- 저런 나쁜-’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역사 공부를 하며 ‘고종 황제’라는 존함을 보았고, ‘영친왕’도 보았다. 그렇지만 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고귀하신 존함을 들어본 적도, 활자로 본 적도 없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이 무지가 너무 화가 난다. 그리고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 할만큼 죄송스러워진다. 우리는 조국의 황녀를 무참히 내쳤다.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않았다. 평생을 괴롭고 외롭게 보낸 옹주의 일생을 알 수 있는 시간들과 관심을 외면했다. 아- 우리는 지금 이 무슨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 

 

한 남자의 아내이자 예쁜 딸아이의 엄마였을 덕혜옹주.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모든 위치보다 조금 더 소중하고 잃지 않도록 지켜야 했던 조선의 황녀라는 거룩한 이름. 모국을 집어삼키고, 괴롭히고 있는 나라의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런지. 말을 잇지 못하겠다.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고 괴롭기에. 길을 걷다가도 ‘지금 내가 내 나라를 굴러가는 돌 정도로 천하게 대하는 나라의 길을 걷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고 외출을 하지 않고, 어쩌다 사람들과 말을 섞으려고 하면 ‘지금 내가 내 혈통을 더러운 핏줄이라 여기는 자들과 눈을 맞추고 있구나.’ 하며 내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겠지, 내가 만약 덕혜옹주라면. 아마 황녀라는 이름을 저버리고 미치고 말았을 것이다. 다음 날 일본은 딱 한 줄로 신문에 실으리라. ‘조선의 황녀, 도쿠에히메 대일본 온지 일년 만에 정신병동행-’ 만약 내가 덕혜옹주였더라면. 그렇지만 살아 생전의 덕혜옹주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채찍질하며 자신의 본분과 조국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 붙일 사람 하나 없는 땅에서, 조국과 멀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갈 수 없는 일본이라는 땅에서 지쳐 쓰러지지않게 혹독하게 자신을 혼내고 또 혼내고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았다. 딸 정혜에게도 조선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며 황녀라는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고종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쓰러지지 않게 만든 것은 그녀가 조선 최후의 황녀였기 때문이다. 덕혜옹주는 많은 것을, 감히 내가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것들을 감내했다.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오직 황녀라는 이름이였다. 이 찬란하고 빛나는 대한민국의 혈통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셨다. 그래서 정말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어둡고 혼자서 우두커니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놓지않았던 옹주. 현대인들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옹주. 현 사회에서 옹주같은 국민을 만날 수 없음이 비감해졌다.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짧게 숨을 토하며 터져버릴 듯한 심장을 진정시켜줘야 할 정도로 덕혜옹주의 삶은 나에게 짙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달싹여야 했다. 이제야 당신을 알게 되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그리고 당신을 알게 되어서 정말 황송하다고 말이다. 

 

나의 엄마는 내가 당신을 속상하게 하는 말을 하는 날이면, 그 말이 사소한 것이라도 금방 상처받은 얼굴을 하신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가 옹주에게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읽으며, 마음이 찢어지고 또 찢어져 너덜너덜 했을 어머니, 덕혜옹주의 표정이 생각나 심장이 덜컥했다. 우리 엄마의 그 표정과, 덕혜옹주의 얼굴이 교차하며 둥둥 떠다녔다. 그 길로 바로 엄마에게 가 엄마를 꼭 껴안아드리며 이때까지 그렇게 화를 내서 잘못했다고 조용조용히 잘못을 고했다. 어머니로서의 삶도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덕혜옹주를 위해 정혜를 대신해서 나의 어머니에게 대신 사과를 빌었다. 잘못했고, 정말 사랑한다고.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부디 덕혜옹주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고이고 썩어 곪은 상처를 깨끗하게 소독하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모든 딸들은 어머니에게 같은 마음을 가진다.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 정혜가 덕혜옹주보다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옹주가 그녀의 진심을 듣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저 위에서 정혜를 만나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용서했다고 믿는다. 

 

책을 뒤져 낙선재 사진을 찾는다. 낙선재가 크게 찍힌 면을 펴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귀를 기울인다. 천천히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휭휭- 나지막하게 몸을 감싸는 바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박사박- 낙엽 밟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잔잔하고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깊은 그리움과 애절함이 사무친 덕혜옹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가슴에 울린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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