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수많은 이순신을 기다리며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박상현
영화 ‘명량’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 담겨진 그 분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너무도 깊이 각인되어서 그 속에서 살고 싶었던 터이다. 영화를 비롯한 영화배우, 감독, 명량강의 등 수많은 검색어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회하면서 영화를 더 이해하고 장군님을 더 알고 싶었다. 그 과정이 정말 행복해서 세상 시름이 사라졌다. 순회의 끝자락쯤에 [김종대],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만났다. 영화 감독의 고문이셨던 저자의 기사를 접했고, 영화의 핵심이자 근간이 되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은 이미 저자의 책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정 책은 평전이라 할 만큼의 생애를 두루 담고 있다. 장군의 전 일대기를 담으려 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이전 무관생활 모습부터 23회에 걸친 전투와 노량의 빛나는 순국까지 사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집필로 전달하고 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허울만 쓴 육해군 장수와 무책임한 관료, 도망가기 급급했던 임금의 행적으로 대변되는 당시의 답답한 상황과 이런 암울한 시대를 밝히며 한 줄기 빛같은 존재로 남해바다를 종횡하며 전승을 구가하는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이 대조되어 그려진다. 부끄러운 저 반대편 군상들을 보면서 세월호 관련 뉴스에 나오는 다양한 인간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세월호 사건 당시 무고한 가족과 학생들이 생사의 경계를 앞에 둔 모습들이 떠올라 너무 고통스러웠다. 고통에 맞서기가 두려워 내 정신세계에서 몰아 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선장과 선원들, 후속처리에서 제각기 우왕좌왕하며 업무의 혼선을 빚는 각계 지도층들의 모습을 보며 분통터지고 안타까웠다. 마음 속 밑바닥에서는 ‘누가 책임져?’ ‘이 나라가 싫어’와 같은 자괴가 요동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적인 동요와 정신적인 방황은 참으로 지리했다. 이즈음에 영화를 만나고 영화를 통해 책을 만난 것은 참 운이 좋았다. 책을 곱씹으면서 나만의 자가치유 방법을 찾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슬픔의 남해바다에서 수백 년 전 장군님은 애민의 정신으로 싸우셨고 지키셨어. 모두가 피하는 전투에서 국운을 내다보고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모두를 지켜 내셨어’ ‘장군님은 책임지셨지’ ‘그런 분들이 수도 없이 많았던 나라야.’ 이런 내면의 울림으로 자조의 말들을 바꾸어 갔다. 우왕좌왕하는 지도층의 잔상을 위험한 전투의 최선단에서 지휘하는 장군의 단호하고도 의연한 모습으로 바꾸었다. 고맙게도 세월호의 아픈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나의 내면에 책 속의 글들이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지나서 부끄러운 나의 내면과 만났다. 책은 장군의 성품, 언행, 일화 속의 행동까지 세세하게 전하려 하기에 찬찬히 새겨 담으면 오늘 나의 안일한 근무자세와 삶의 태도 역시 뉴스에 나오는 군상들을 비난할 처지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장군의 행적은 사람을 숙연하게 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본받고 싶다. 정보 수집과 인재등용, 사전준비, 솔선, 결단력, 추진력 등 무관으로서 전투에 임하는 당신 모습 모두를 가지고 싶다. 전투에 앞선 정보수집에서는 포로, 머슴 등 신분과 격식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신뢰로운 자료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거북선을 만들 때는 조선 기술만, 칼을 만들 때는 대장장이 능력이면 족했다. 지위고하를 배제한 실용주의적 인재등용으로 적재적소에 개인 능력의 최대치를 집약하여 과업을 완수하였다. 부하들과 토의 역시 공동사고의 과정을 통해 목표의식을 명확히 하고 승리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오늘 대한민국에 그 분께서 행하신 솔선의 리더쉽을 내 것으로 체화하는 공직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명량대승첩’의 전후 부분을 보면 영화화 된 ‘명량’의 정신적 요체를 이루는 선공후사, 애민, 애국정신에 입각한 다양한 일화들이 소개된다. 특히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험한 고문과 백의종군 후, 다시 삼군통제사 교지를 받고 길을 가는 도중에 피난길 백성들을 대하는 모습은 선조보다도 더욱 상왕 같은 장군님의 내면이 잘 보이는 일화다. 온갖 고초와 긴 여정으로 피로가 쌓인 육신을 말에서 내린다. 조우한 백성의 손을 잡아 준다. ‘전란을 잘 견더 달라’ 안부하고 위로한다. 만신창이로 변한 몸을 이끌고 백성을 위하는 이 소소한 모습은 장군께서 누구를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의 온기 담긴 손길과 언행은 백성에서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평온과 신뢰를 선물하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피난길에서 바로 장군의 해군으로 지원하는 백성들도 있었다고 전한다. 믿음은 믿음을 이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영웅에게는 전설, 신화가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영웅은 더욱 미화되고 신비감마저 더해져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물로 신격화된다. 이순신 장군에게도 태몽, 작명, 꿈, 예언 등이 얽힌 일화가 있다.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면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으로 하라’는 시아버지의 현몽을 받는다.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요순시대의 인물, 순(舜)왕의 신(臣)이었던 우(禹)왕과 겹쳐지는 이 작명은 이름부터 큰 인물이었음을 증명하는 한 예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장군에 대한 신격화에 거리를 둔다. 신격화는 장군님을 비현실적인 인물로 만들어 숭고한 정신마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허구의 것으로 하여, 범인이 근접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 이순신을 이 시대에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한민족의 핏줄을 거슬러 가다보면 만나는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몸은 없지만 정신세계를 되살릴 수 있다면, 체화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또 다른 이순신이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에서이다. 따라서 저자의 실증적인 사료접근에 중심을 둔 집필에 깊이 공감한다.
그런 차원에서 무엇보다 이순신, 그분의 정신세계는 자라면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가 너무 궁금하다. 특히 그분의 유년시절에는 누가, 어떤 체험들이 있었는지 관심이 컸다. 부끄럽게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업에 몸을 담았지만 지식 전수에만 골몰할 뿐 뚜렷한 직업관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 시대에서 또는 우리 미래를 위해서 제2 제3의 이순신을 키워야할 사명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속에는 미래의 이순신이 반드시 있고, 나는 그의 유년시절 한 자양분이 되어야한다’는 선명한 직업관이 그려졌다. 그래서 청소년시절을 밝힐만한 다양한 사료들이 부족하다는 대목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어찌됐든 성인 이순신의 인품과 행적들은 사료와 일기로 소상히 남아 있다는 데서 위안을 삼는다. 이들 만이라도 우리 자라는 세대에 함께 할 수 있음은 천행인지도 모르겠다.
이순신 장군은 풍전등화의 국운을 온몸으로 밝히신 꺼지지 않는 촛불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날 장군의 정신을 가리고자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있었다. 그에게 영감을 더한 이는 그의 육신은 가셨으나 정신세계를 옮겨 오고 싶은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의 저자였다. 어둡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이런 시대를 밝히는 촛불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촛불에 촛불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밝히리라 믿는다. 나도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래의 이순신을 그리고 살아가는 작은 촛불이고 싶다.
Chapter
- 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저자특별상(일반부) - 박상현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 대상) - 주동훈 / 가야고2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 금상) - 박소희 / 부산교대 부설초4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 은상) - 강지운 / 목포초 5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일반부(대상) - 배가브리엘 / <너무 애쓰지 말아요>를 읽고
- 학생부(대상) - 이은지 / 부산성모여고 2학년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
- 일반부(금상) - 전예지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
- 일반부(금상) - 정지홍 /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읽고
- 학생부(금상) - 김규리 / 혜화여고 1학년 <정말지 수녀의 바보 마음>을 읽고
- 학생부(금상) - 정소민 / 금곡고 2학년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일반부(은상) - 김수자 / <느리게 더 느리게>를 읽고
- 일반부(은상) - 안압지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
- 학생부(은상) - 박예민 / 휘경여고 2학년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읽고
- 학생부(은상) - 서여리 / 경혜여고 1학년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학생부(은상) - 장서영 / 부산국제고 2학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 일반부(동상) - 김미양 /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을 읽고
- 일반부(동상) - 김서영 /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읽고
- 일반부(동상) - 김홍규 / <격과 치>를 읽고
- 일반부(동상) - 박일호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고
- 일반부(동상) - 최선길 / <느리게 더 느리게>를 읽고
- 학생부(동상) - 금소담 / 남문초 6학년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수아 / 센텀중 2학년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은혜 / 해연중 3학년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해형 / 화명중 2학년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최아영 / 석포초 4학년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를 읽고
- 일반부(은상) - 이미경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