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틀림과 다름, 그 위태로운 경계선에서 -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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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고등학교 2학년 정소민
내가 푸는 수학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 만약 조금의 계산 실수로 인해 나의 답이 정답지에 적힌 답과 다르게 된다면 내가 적은 답은 틀린 것이 된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학에는 정해진 답이 있기에 좋다고 한다. 그 답은 절대로 틀릴 수도, 여러가지가 될 수도 없다. 이와는 다르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어떤 길로 나아가든지 결국은 내가 간 길이 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100명 모두 제각각의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나와 다른 인생을 산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남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따분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사람은? 현대 사회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중시한다. 남과 똑같은 것은 식상하게 생각될 뿐이다. 겉모습으로 보이는 우리는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속모습의 우리는 다름의 ‘기준’을 정해둔다. 이 선 안까지는 나와 ‘다른’ 것이고 그 선을 넘어가게 되면 ‘틀린’ 것으로 치부한다. 책 속의 연희는 그 기준선에서 한 발짝 넘어선 희생양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곱슬머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곱슬머리가 그저 나와 다른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놀림과 따돌림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그 놀림에서 희생당한 이연희는 기준선의 안쪽에서 경계선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머리를 민 순간, 그녀는 완벽한 기준선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단지 남들과 조금 많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다름은 틀림이 된다.
이연희를 수술한 김광호는 이연희를 완벽한 광인으로 받아들이고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이야기들을 광인의 증상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수술을 집도한 김광호 자신도 과거에 광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연희가 작성한 수술 후기에 김광호가 단 주석을 보면, 광기가 사라져 가는 자신은 가끔 비참함이나 수치심에 빠진다고 했다. 그는 광인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광인이라는 말은 겉으로는 미치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세속에 물들어버린 어른들이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그들에게 ‘광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따라할 필요도 없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창가의 토토’라는 책에 나오는 토토는 교장선생님에게 자신이 겪고, 보고,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데 4시간을 썼다. 이연희가 초록색 스웨터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늘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순수한 동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연희는 남들과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그녀는 서랍 뒤에서 발견된 초록색 스웨터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사실 그 초록색 스웨터는 초록색이 아닌 붉은색이었다. 수술실에서 이연희가 입고 있던 스웨터는 한 올 한 올 풀려서 붉은 털실 공이 되었다. 어쩌면 초록색 스웨터가 뜻하는 바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이연희가 아니었을까. 남들과는 틀린 색으로 존재하는 광인 이연희 말이다. 그러나 그 스웨터도 사실은 붉은색 털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붉은색 털실은 꼭 사람의 핏줄 같아서, 사람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말은, 틀린 색으로 보였지만 결국 남들과 똑같은 붉은색, 그러니까 사람인 이연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독창적인 세계가 아닌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행동하는 것을 정상인의 범주에 넣는 것은 도대체 누가 한 일일까. 누구도 광인의 기준을 정하지 않았는데, 그저 누군가가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광인의 이름표를 달아주는 사회는 누가 만든 것일까. 왜 우리는 그런 사회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자 나 또한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또한 길거리에서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길이 가고 신기한 시선으로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그 가까이에 다가가는 것을 꺼려한다. 겉으로는 다름의 경계를 가진 사회를 삐뚤게 쳐다보면서도 내 속에서 어느새 다름의 경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경계를 아주 허물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름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것들에 경계를 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다름을 배척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옳음으로 고치려고 하는 사회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수학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옳음이 없고 또한 틀림도 없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누군가 자체이다. 그런 우리에게 동그라미, 가위표를 매기는 사회야 말로 가위표를 쳐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틀림과 다름의 경계선 안팎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경계선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경계선을 최대한 무너뜨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언젠간 가위표가 아닌 동그라미를 매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소망한다.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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