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9360

'희망'의 이야기로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 - 

 

                                                                                                                                             안압지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 신경숙 님의 「외딴방」에서, 1996년 1월 16일 -

 

박민근 님의「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 제일 먼저 한 일은 1996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내 영혼을 일깨웠던 문구를 적어놓은 노트를 펼쳐보는 거였다. ‘소망의 詩’라 이름붙인 그 노트엔 당시 내가 푹 빠져 있었던 신경숙, 황지우, 양귀자, 은희경, 조정래, 공지영, 이외수,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토 에코, 그리고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들과 함께「철학에세이」의 실천적이며 세계관이 돋보이는 문장이며, 학교 대자보에서 본 다소 과격한 내용까지 날짜와 요일별로 기록했던 자취가 있었다. 그리고 가수 이문세의 ‘火葬’이라는 노래와 1997년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광수생각이란 만화,「미천한 사람 주드」라는 작품에서 탄생한 영화「주드」,「포레스트 검프」,「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선우 감독의「꽃잎」에 이르기까지 당시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온갖 문화매체와 내 스무 살의 고민들이 그 속에 함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신이 아픈 건 아직 희망의 이야기를 찾지 못해서다, 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줄 이야기를 한 편의 그림책에, 시와 소설에, 영화에, 다큐멘터리에 진하게 녹여내고 있었다. 인생의 참의미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스무 살의 나와 묘하게 닮아 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은 말라있던 내 독서열정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의 사례에서 특히 여성으로서의 상처와 아픈 사연들이 가슴에 와 박히었다. 열한 살 때 성적 학대를 경험한 세정 씨는 여전히 열한 살 상처 난 그날 속에 살고 있었다. 이런 세정 씨에게 저자는 오프라 윈프리를 소개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것이 자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의 상처까지 치유시킬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었다. 자신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오프라 윈프리에게 감응한 세정 씨는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점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과 조건, 사랑의 문제에 관해 상처받고 고민하는 지현 씨와 은석 씨의 이야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결혼을 ‘미친 짓’이라 믿었던 남자친구와의 결별로 힘들어한 지현 씨는 안톤 체호프의「귀여운 여인」이라는 소설의 ‘올렌카’를 만나게 되면서 달라진다. 매순간 누군가를 사랑했고, 끊임없이 자신을 그 대상에 동일시했던 ‘올렌카’의 사랑이 가장 진실되어 보인다고 느낀 지현 씨는 그간 남자친구를 몰아세웠던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그러면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은석 씨와 함께 다시금 진실된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나 또한 5년여 전 남편과의 결혼을 앞두고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해서 마치 내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들의 고민이, 상처가 이해되었고 그 치유과정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지금 꿈꾸지 않는 자도 유죄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1996년 1월 16일부터 시작된 내 스무 살의 노트가 2010년 6월 7일 박범신 님의 「은교」라는 작품에서 멈춰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해는 내가 결혼하던 해이기도 했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하며 20대의 터널을 지나와 이제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30대 후반 여성인 내게 이 문구는 먹먹함 그 자체였다. 열아홉 살의 고등학교 자퇴생인 재윤은 자신이 기러기임에도 비버의 둥지에 잘못 떨어진 후 비버의 삶에 적응한 기러기의 이야기에서 충격을 받는다. 세상 밖으로 나가보기로 결심하곤 그만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러기는 살기 위해 힘껏 날갯짓을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 기러기는 높이 비상한다. 재윤에게 ‘인생이란 낭떠러지일 때 등 뒤에 날개가 솟기도 하는 법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한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열여섯 되던 해에 스스로 그림그리기를 중단한 경험이 있음을 재윤에게 말해준다. 재윤은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사내자식이 모슨 그림이냐며 강제로 미술을 못하게 한 엄마로 인해 초등학교 4학년 때 꿈을 놓아버리고 좌절했다. 이에 저자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옷에 관심이 많은 재윤과 함께 의상디자이너라는 꿈을 찾기 시작한다. 저자는 롤 모델로 코코 샤넬을 소개하며 불행했으나 늘 꿈을 꾸었던 그녀의 슬픈 일대기를 재윤에게 보여주게 되고 어느새 의욕이 샘솟은 재윤은 의상디자인학과 진학을 목표로 검정고시 준비를 하며 다시는 스스로 꿈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십대 시절에 화가를 꿈꾸다 스스로 그만둔 저자와 미술에 대한 열정을 엄마로부터 제지당한 재윤의 이야기에 과연 내 꿈은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지금 내게 꿈, 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열다섯 살에 A.J. 크로닌의「성채」를 읽고 작가의 꿈을 키워온 나는 대학시절 문학에의 열정을 연마하며 그 꿈의 연장선상에서 잡지사, 신문사 등에서 치열하게 일해 왔지만 정작 소설가, 로서의 어떤 결실도 이루지 못한 채 지금은 그때의 재윤처럼 생을 잃어버린 박제마냥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듯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꿈은 잠시 내 인생에서 보류되고 있을 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가면서 삶에서의 경험을 더 단단하게 다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른일곱 살에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가렛 미첼과 마흔셋이라는 나이에 집필을 시작해 무려 26년간 피와 땀, 혼을 고스란히 쏟아낸「토지」로 아직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는 박경리 작가처럼 나 또한 지금을 즐기고 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지난 추석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로받았던 음악으로 「You raise me up」이라는 노래가 선정된 것이 기억났다.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더 큰 내가 됩니다, 라는 노랫말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선율과 함께 듣는 내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는 각자의 상처로 저자를 찾아온 34명의 내담자들,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준 ‘희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 모든 사례들이 나의 이야기, 내 주변 사랑하는 이들의 생채기인 것만 같아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를 반추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행복한 가을이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소개했던 심리치유에 도움이 되는 책, 영상, 영화 등은 꼭 한 번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의미 있는 이야기로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저자는 여전히 삶이 주는 상처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깊고 따뜻한,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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