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9373

-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읽고 -

 

                                                                                                                                             휘경여자고등학교 2학년 박예민

 

나는 평소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에서 유앤 사무총장이라는 세계 최고자리까지 오르게 된 반기문 총장님을 존경한다. 이런 장황한 수식어들이 그의 이름 뒤에 붙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있어서 반기문 사무총장님은 그만큼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 같다. 어릴 때 반기문 총장님의 기사를 접했을 때는 그를 위한 기사를 쓰고 싶었고, 그보다 더 어릴 때는 그와 함께 유엔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가 내 인생의 등불이자 멘토가 되어주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하여 궁금증을 갖게 되었는데, 바로 그분은 마야 안젤루였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사실 이 전까지 ‘마야 안젤루’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여 아예 모르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러나 책날개의 설명을 보면서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고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야 안젤루는 미국에서 거주했던 흑인여성이다. 그녀의 자서전이라기보다 한편의 소설 같은 의미심장한 제목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어떻게 흑인들이 미국에 거주하게 되고, 백인들에 의해 차별 받게 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을 시작으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의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을 마구잡이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 오늘날로 치자면 납치나 인신매매와 같이 말이다.

 

마야 안젤루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에 의해 아칸소주 할머니네에 가게 된 3살부터 16살까지 유년기부터 사춘기에 이르는 그녀의 삶을 이 책에 담았다. 그녀는 한 살 위인 오빠 베일리와 할머니인 마마, 삼촌 윌리엄과 ‘윌리엄 존슨 잡화점’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당시 1930년대 미국대공황 시기였으며 그곳에서 항상 차별 받던 작은 흑인여자아이는 물질적으로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정신적으로도 열악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베일리는 항상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녀를 열등감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또한 같은 동네의 사는 흑인 여성 버사 플라워즈 부인은 그녀로 하여금 문학의 흥미를 이끌어 주었고 예술에 대한 발판을 다지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해주었다. 후에 만나게 되는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인 비비언 백스터와 뒤에서 그녀를 계속해서 책임져준 마마와 윌리엄. 그들과 마야의 많은 에피소드가 책안에 담겨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충격적 이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볼까 한다.

 

그녀는 충치가 생겨 마마와 함께 마마의 도움을 받은 링컨이라는 사람이 치료하는 시내의 치과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마야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의 손녀였음 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은 치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이것도 모자라 검둥이 입에 손을 집어넣느니 차라리 개의 주둥이에 손을 집어넣는 다는 등의 몰상식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유년시절, 누구나 다 “쟤는 왜 이쁘지도 않은데 인기가 많아?”, “선생님은 왜 공부 잘하는 애들만 칭찬해주시지?”라는 등의 질투심을 가지는 그런 경험.. 돌아보면 코웃음을 칠 만한 일이다. 주인공인 마야 안젤루는 단지 타고난 까만 피부색 때문에 어릴 적부터 극도의 차별을 경험한다.

 

나는 검정색을 그들과 달리 평가하고 싶다. 무언가 와서 닿기라도 하면 색이 쉽게 변해버리는 약한 흰색,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흰색보다는 어떤 색이 와서 닿더라도 변하지 않는, 올곧은 강한 검정색이 좋다. 세상에 의해 바뀌는 것은 흰색이고, 어느 색과 만나도 본연의 색을 유지하고 오히려 다른 색깔을, 세상을 바꿔버리는 것은 검정색이라고 말이다. 

 

세상의 편견과 억압 속에서 자라온 어린 흑인소녀를 난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백인 우위 사회에서 흑인과 여성이라는 신체적 조건은 그녀를 더없이 아래로 추락하게 하는 이중적인 차별을 받게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흑인들은 치장도 할 수 없고 아무리 가난한 백인들보다 못한 존재이며, 백인들의 뒤치다꺼리만 했다. 물론 그들은 다른 삶은 꿈도 꿀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를 향한 백인들의 이러한 차별, 태어날 때부터 한 쪽으로 기울어져있도록 정해진 운명, 그래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는 운명. 그 운명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견뎌 낼 수 있었을까? 그녀처럼 수많은 도전들을 겪어낼 수 있었을까? 

 

내가 중학교 때, 아무런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하다가 전학을 간 아이가 있었다. 언젠가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왜 아무도 그 아이를 챙겨주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질문을 들은 아이들은 그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쭉 왕따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런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여러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그 아이는 전학을 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마야 안젤루와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단지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태어났다 해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 후에 나는 전학 간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와 그 아이의 상황은 다르지만, 남들과 다른 차별을 잘 견뎌 내고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야 안젤루가 여자라는 약자라는 차별과 흑인이라는 차별을 이겨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그녀 말고도 차별을 극복한 사람들은 레게의 전설 밥말리, 흑인들을 노예로 부터 해방시킨 넬슨 만델라,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등이 있다. 그들 모두 흑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의 극복과정도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마야 안젤루는 8살 때,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강간당해 실어증을 겪었고 16살인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으며, 2년 뒤에는 창녀촌의 ‘마담’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 흑인 인권가, 역사학자, 대학교수, 영화배우와 감독 등의 많은 직책을 가지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고 정말 최악에 다달 했었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최초의 여자차장, 현재 미국인들이 뽑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대단한 그녀의 뒤에는 이렇듯 많은 아픔과 절망이 있었다. 안젤루는 이런 아픔과 절망을 겪지 않고서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조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불공평함 속에서 살아왔던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는 나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결코 좌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아직 그녀의 유년시절만 담긴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어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의 나머지 인생을 기록한 파란만장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도 더 알고 싶다. 

 

그녀가 전하는 문장 하나하나마다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명력을 느꼈다. 생동감 있는 그녀만의 특별한 표현 하나하나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던 시간의 순서 없이 무작정 나열한 에피소드에 흥미를 불어 넣어 주었다. 또한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의 유년시절 또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미화시키기 마련인데, 그녀는 달랐다. 자신에 대한 너무 솔직한 표현들 때문에 어느 때는 놀라기도 하였다. 남발하는 비속어와 읽기 낯 뜨거운 저속한 단어들은 처음에 그녀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본 그녀는 용기 있고 대담한 소녀였다. 

 

책 제목이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는 마야 안젤루가 전하고자 한 내용을 정말 정확히 집약한 문장이다. 인사말도 더 전에 책을 시작하는 첫 장, 그녀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가장 첫마디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역경과 신들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는 힘센 모든 희망의 검정 새에게 이 책을 바친다.’였다. 그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책을 읽어 내려가며 마침내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는 온몸이 전율로 가득차고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갇힌 새의 울음소리와 자유로운 새의 울음소리는 엄연히 다르다. 우는 것과 노래하는 것 또한 다르다.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는 있는 새는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모른다. 오직 새장에 갇힌 새만이 자유를 노래할 수 있다. 나도 알아요! 그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도 안다구요! 계속해서 소리 없는 소리침과 작가에 대한 공감이 내 가슴속에 맴돌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희망을 스스로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전할 수 없는 박수를 보내었다.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고 느껴질 때, 세상이 나에게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불공평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 때, 이젠 그녀를 떠올리려 한다. 극도의 차별 속 현실을 타파하고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걸어간, 강한 의지를 가진 그녀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우리에게 큰 숙제를 내주고 태초의 곳으로 돌아갔다. 자유와 평화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미국이지만, 그 내면에서는 아직도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모순점이 존재했다. 특히 유색인종인 흑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미국사회,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도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삶 속 교훈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흑인의 목소리로 미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거짓 없이 들려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녀처럼 멋진 여성이 되는 날을 꿈꿔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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