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0339

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고 - 

 

                                                                                                                                             박일호

 

지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자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자본주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뉴욕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 결코 좌파라고 생각할 수 없는 제프리 삭스 같은 경제학자까지 시위대를 이끌었다. 2011년 11월에는 미국 하버드대학에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갓 입학한 하버드대생 70명이 저명한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멘큐 교수의 경제학 원론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그가 주입하는 경제학이 빈부격차를 영구화하고 있으며, 세계금융위기를 유발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등 그의 강의가 편향됐다는 이유다. 멘큐 교수는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고,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다. 장하준 교수의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그런 면에서 시의적절하다. ‘Economics : The User’s Guide(경제학 사용설명서)‘라는 영어 제목이 말해 주듯이 보통 사람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며, 사람들이 경제학을 어떻게 바라봤으면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도 받기 전인 1990년, 27세 나이에 한국인 최초의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에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2014년에는 영국의 정치 평론지 [프로스펙트]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사상가 50인’ 중 9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동안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주류 경제학의 통설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내는 책마다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경제학의 위상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금융 위기가 발발한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 기존의 경제이론이 무엇보다 2008년 금융 위기의 도래를 내다보지 못했고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이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 어떤 경제학자들은 금융의 무모한 팽창을 열렬히 지지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자본주의 역사를 다룬 3장과 경제학의 대표적인 학파들을 소개한 4장 ‘백화제방’이다. 우리는 경제학하면 대개 신고전주의학파 한 가지 정도만 아는 경우가 많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신고전주의학파를 편식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 이론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주요학파만 해도 9개에 이른다. 고전주의학파, 신고전주의학파, 케인스학파, 마르크스학파, 슘페터학파, 개발주의 전통, 행동주의학파, 제도학파, 오스트리아학파가 그것이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를 특정 이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특정 질문만 하게 되고, 특정한 각도에서만 답을 찾게 된다. 그러나 경제학적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완전히 분석할 수 없다. 그러니 ‘망치만 쥔 사람’, 더욱이 다른 연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책에는 각각의 학파에 대한 개요 및 특징과 주된 논점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뼈를 바르고 살을 헤쳐 비교 분석하며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덕분에 시야가 확 트인다. 아예 작정하고 경제학파에 대한 요약 비교를 4쪽에 걸쳐 표로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168-171쪽]을 대하면 오랜만에 대학 강의실에 앉아 경제학 수업을 듣는 기분이 제대로 든다. 현재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주의 경제학파에서는 생산 부문을 심각하게 간과한다. 한 나라가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느냐 만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것이 그 나라의 생산 능력이 발전하는 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제조업 부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다. 제조업이야말로 지난 2세기 동안 새로운 기술과 조직능력을 만들어 낸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이 주도해 번영을 이룬 경제의 대명사라고 생각하는 스위스와 싱가포르가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제조강국이라는 것이 그 방증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이 친숙하게 품고 있던 통념과 상식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하면 ‘자유 무역’과 ‘외국인 투자 유치’로 성공한 나라의 본보기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토지의 90퍼센트 이상을 국가가 소유하고 있고, 주택의 85퍼센트를 국영 주택 공사에서 공급하고, 국민총생산의 22퍼센트를 국영 기업에서 생산하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한편으로 보면 제일 자본주의적인 나라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제일 사회주의적이다. ‘규제완화나 민영화가 만능은 아니다’ ‘빈곤과 불평등은 인간이 제어할 수 있다’ ‘금융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 등의 주장은 그의 전작들을 읽어온 독자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동어반복은 아니다. 주장은 더 단호해졌고 논리는 한층 정교해졌다. 거기다 다양하고 풍부한 비유와 사례가 설득력을 높인다. 

 

장하준의 경제학은 should나 must가 아닌, let’s와 shall we의 경제학이다. 책에는 경제학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현실에 닿고 대중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그의 열망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경제학 교육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의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고 만다. 사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자신의 견해를 과도하게 확신한 전문가들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쳤다. 가까운 예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 경제학자와 ‘기술관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전문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핵심 경제 이론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경제 문제들(금융 규제 완화, 복지 예산 삭감, 기름값, 의료 개혁 등)에 대해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전문 경제학자들에 비해 현실에 더 깊이 밀착돼 있고 시야도 편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제학 강의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학은 전문가에게 맡기기엔 너무 중요하다. 경제 문제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전문가들 손에만 맡겨 둘 수 없다. 우리가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학적 지식을 갖춰야 된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사실 약간의 경제지식을 쌓는 것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게 더 어려울지 모른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수입 담론이나 포퓰리스틱한 정치적 수사를 걷어내고 경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실현 가능한 경제학적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철저하게 경제현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독할 가치가 있다. 어쩌면 요즘 회자膾炙되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이 책을 주위에 널리 소개하는 것으로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강의 수업료를 대신하기로 했다.

Chapter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