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9374

저녁 노을을 함께 바라보며 - <느리게 더 느리게>를 읽고 -

 

                                                                                                                                             최선길

 

참으로 오랜만에 그 옛날 추억이 가득한 낙동강 가에 앉았다. 석양이 넘어가는 강가 평상에 앉아 저녁 노을을 발갛게 가득 품은 강물과 오실재 그리고 강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평화롭게 강물 위를 날아다니는 물새들의 모습에서, 강물 따라 느긋하게 서서 가을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수양버들의 행렬, 어부가 어설프게 쳐 놓은 그물 위에서 비상하는 잉어떼도 노을빛에 물들어 온통 그림의 한 장면으로 내게 들어온다. 둑 위에 어슴프레하게 저녁빛이 황혼이 되어 우리들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친구들과 여름방학 내내 뛰어놀았던 모래사장은 그대로인데, 그 옛날 어린 시절 우리 다섯 식구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던 그 들판에 이제 세월이 지나 다시 이 곳에 왔다. 세상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 독서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삶의 혜택을 풍부하게 주신 부모님의 은덕으로 [느리게 더 느리게]의 저자 쟝샤오형이 말했던 행복의 조건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는 듯하다. 저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가진 것이 얼마만인가? 저녁 노을을 배경 삼아 부드럽게 흘러가는 차의 향기를 느끼며 이렇게 둘이 앉아 있는 것이 진정 삶의 기쁨과 행복이 아니던가!

 

[느리게 더 느리게]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세계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 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에게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행복학 강의에 관한 내용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센델을 뛰어넘는 하버드 인기 강의인데, 이스라엘 출신 샤호르 교수의 [Happier] 책을 번역한 책이다. 행복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총 15강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행복의 개념, 행복의 방해 요소, 행복을 누리기 위한 정신적 자세, 행복의 요소, 의미 등이 풍부한 사례와 함께 실려 있으며, 왜 세계 최고의 하버드대학생들이 이 강의에 열광하게 되는지, 그리고 이 책의 이야기 모두가이 현대인 모두의 가슴을 흔들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저자가 전해주는 삶의 화두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느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자신은 학생들과 학교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가정 생활에도 최선을 다해 너무나 만족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부인의 표정이 영 아니란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였지만, 부인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듯한데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선배도 자신도 모르게 밥맛도 없고 의욕도 상실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잘못 했는가. 하면서 자신의 삶의 전반을 반성해 보았다고 했다. 여러 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인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 없는 것 같아서 어느 날 마음을 크게 먹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부인 왈, “ 내 어릴 적에는 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 최고였는데 요즘 너무나 비참하다. 00는 엄청나게 부자이고, 00는 정말 고급차를 끌고 동창회에 왔다는데 내 모양은 이게 뭔가. 밖에 나가서는 그저 기가 죽이 싫어 자신을 포장하고 자존심 때문에 내색도 않지만, 막상 집에 와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나 슬프고 비참하다. 지금껏 30년을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앞으로 또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몸도 아프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말 서럽다.” 

 

그 선배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 선생이 뭐 어때서, 뭐가 비참하다는 것인지, 뭐가 구질구질하다는 것인지,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자신은 그냥 평교사하면서 부인과 아이들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부인이 자신을 그렇게 부족하다고 여기는 줄 몰랐다고 했단다. 선배도 나에게 그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부부의 가치관이 이렇게 달라서 문제가 될지도 몰랐고, 오랜 세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 그러한 성격 차이는 쉽게 해소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비싼 집이나 고급 차량, 명품 가방이 부부의 연을 의심할 만큼 중요한가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오붓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부인은 늘 헌신적으로 가정을 위해 희생해 온 것에 대해 늘 감사해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그날 평생 나를 위해 말없이 헌신해 준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감사 인사라도 할 것을.

 

“죽어라 뛰어다니며 일하지 않으면 밥 한 술 먹기도 어려운 이 치열한 경쟁 시대에 한가로이 행복을 논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은 언제부턴가 목표와 수단이 뒤바뀌어버린 현대인의 아픈 초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 끼 밥을 함께 먹어 줄 가족이 있고, 저녁 무렵이면 부부가 함께 산보할 수 있는 여유만 있어도 그런 행복이 얼마나 좋은가!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묵살한 채 내일의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궁핍한 경제 상황에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조선 시대의 안분지족하겠다는 선비들의 어설픈 삶의 흉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끝없이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과연 행복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풍족하든 궁핍하든 인간은 언제나 행복 추구를 그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도, 심신을 충분히 재정비할 수 있는 휴식도 결국은 모두 더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인생살이에서 행복은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주객이 전도되어 지엽적인 수단에 집착할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도서관에서 인문학 책 출판 프로젝트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1권씩 10년 동안 진행한다는 [2014 고교생 인문학 책 출판 10星 프로젝트 : 사마천의 사기열전, 인간의 길을 묻다] 활동인데, 매주 학생 좌장이 바뀌면서 집중 토론회를 실시하는 것이다. 사마천 사관의 핵심인 ‘인간이 역사의 주역’에 대해 학생들이 늘 공감하면서 토론에 임하는데, 가끔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하나같이 돈, 물질적 풍요라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고 인간 본질의 중요성을 많이 생각하면서 전국에서 고교생이 처음으로 인문학 책을 출판하는 이 학생들조차 행복의 결정적인 요소는 돈밖에 없다고 당연하게 대답하는 상황에서 돈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황금만능주의의 자본 권력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오롯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 학생들의 생각을 무엇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그러나 과연 돈만 있으면 행복이 완성될까? 

 

아무리 많은 부를 갖고 있어도 일을 마치고 황량한 아파트를 열고 들어오는 심정은 행복이 아니다. 비록 좁은 공간이라도 문을 열면 온가족이 환한 미소를 띠면서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았노라고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따뜻하게 반겨주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그 옛날 가지고 있었던 행복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다. 그들 중 형제와 진심어린 우애를 나누고 배필과 진정한 사랑을 나눈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부와 명예, 모든 것을 가졌어도 진실한 우애와 사랑을 갖지 못했다면 결국은 빈털터리나 다름없다. 거실에 둘러 앉아 하루 일과를 돌아보고 가족들의 환대를 받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있겠는가?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아빠 엄마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아이의 부드러운 손과 발 그리고 뺨을 만지고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가끔은 주무시다가 거실의 소리에 일어나 아들 내외 손자 손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 노 부부의 기쁨을 어디에 견줄 수 있겠는가? 추운 겨울 날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온 군밤을 놓고 온가족이 둘러 앉아 맛있게 먹으면서 담소를 즐기는 그 기쁨은 어디에 비교하겠는가?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추억을 신기하게 들어주는 손자의 그 잘생기고 귀여운 눈동자의 초롱초롱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수억만 금보다 귀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이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눈코 뜰새없이 바쁜 일상 생활에서 정말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물질적 풍요, 드넓은 고급 주택, 명품 브랜드, 여유로운 경제 생활,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상류층 생활의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벽한 자신을 꿈꾸며 오직 완벽을 향해 달려간다. 실제로 완벽한 경우도 없겠지만 스스로 만족할 상황이 되었을 때 과연 세상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답게 느껴질까? 자신의 불완전함을 담담히 직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과 조화롭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다. 행복은 그야말로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면서 자선을 베푸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전혀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상대에게 쏟아주는 그러한 사랑에서 행복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러한 행복의 최종 수혜자는 바로 자신이 된다.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전세계 개발도상국에 1,500만 권의 도서를 기증했고, 16,000개의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1,800개의 학교를 지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국제시장 전문가로 촉망받으며 최고의 연봉과 주택,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으며 최상류층의 생활을 향유하던 존 우드가 히말라야-네팔 트레킹에 나섰다가 우연히 한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책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어린이들을 목격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룸투리드(Room to read) 재단을 설립한 이야기를 담은 [히말라야 도서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 날 아침 당나귀 여덟 마리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책을 가득 싣고 네팔의 조악한 산간 오지 마을 바훈단다 마을로 떠났다. 존우드는 아버지와 함께 전 세계에서 기증받은 책을 수송하기 위해 마르시엔디 강을 거슬러 위험천만한 다리를 몇 개나 건너야 했다.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바훈단다 지역의 주민들과 아이들이 극심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세상을 책으로 접하게 된 아이들이 달려들었고, 어느 선생님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랜 세월 책을 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책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과 손을 모으고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는 주민들의 ‘나마스테’ 인사에 존 우드도 너무나 행복할 뿐이었다. 

 

존 우드는 최고의 유망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히말라야 산맥의 산간 오지 마을 네팔의 바훈단다 마을의 어린이들과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경험을 쌓게 해준 그 자선 사업으로 자신이 오히려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이 깊은 산간 마을에서 목격하면서 너무나 커다란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행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행복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기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남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하며 불평 불만에 빠지면 바로 눈앞에 있던 행복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삶은 언제나 아름답고 행복은 어느 곳에나 있다. 전세계에서 어렵게 오랜 기간 모은 책들을 수송하면서 겪었던 숱한 어려움, 네팔에 입국한 후 낙후국가의 특유의 열악한 교통 사정을 뚫고 당나귀 여덟 마리에 수많은 책을 가득 싣고 떠난 바훈단다 길에 존 우드는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회의하지 않았을까?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들었을까? 산림지대를 통과하고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에 그렇게 많은 다리를 건너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안락한 생활을 떠올려 보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바훈단다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책을 안기고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존 우드의 행복감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 곁에서 아주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매일 집안에서 청소하고, 밥 짓고 반찬 만들고, 세탁해 주고 나를 위해 알뜰살뜰 챙겨주는 아내에 대하여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여 간단한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만나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있음에 내가 존재하고 행복한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만날 때마다 미소를 보내고 덕담을 주고 받으며 하루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산책을 나섰다가 나무 밑에서 가을바람을 누리며 앉아 있는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도 나의 행복을 지켜주는 토대이다. 중국이 G2 국가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도자 등소평이 90세 이상 장수하였는데, 언젠가 기자들과 간담에서 장수 비결을 밝힌 적이 있다. 첫째, 황하에서 수영하는 것. 둘째,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마작을 즐겼다. 셋째,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 그리고 친척들과 둘러 앉아 담소를 즐기는 것이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의 행복에 정말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강변에 앉아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에 젖어 차를 한잔 마시는 여유로운 [느리게 더 느리게]를 누리고 싶다. 강물의 부드러운 기운이 둑 길 저 멀리서 걸어오면, 뭉게구름도 저녁 노을을 물씬 품고서 수양버들 너머로 불어오는 가을 바람이 귓가에 스쳐가는 이 곳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돌아보며 삶을 누리고 싶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라 온천지가 환하게 빛나는 논둑길 따라 조용하게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를 벗삼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전원의 그 향기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 가끔은 길가에 앉아 보름달을 빗겨 안은 박꽃 그 하얀 색 천지를 바라보며 우리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내가 좋아하는 시라도 읊고 싶다. 언제까지나 나를 위해 헌신해 준 아내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그 정겨운 시간을 함께 누리고 싶다. 길가의 이름 모를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고, 시골길 보름달 천지를 누리며 조금은 지치더라도 서로를 보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내가 치는 기타 솜씨가 부족해도 기꺼이 박수를 치면서 기뻐해 주는 사람과 함께 저 강변 마을에서 누리는 낙향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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