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시선 - <학교 2013>을 읽고 -
개성고등학교 2학년 1반 하연재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섰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울을 보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2년 정도를 거울에 무심했던 건지, 내 얼굴에 무심했던 건지 거울과 본체만체하며 살았다.
며칠 전 시험도 끝났겠다 여유로운 마음에 기분 좋게 세수를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무심하게 얼굴을 돌렸지만, 그 짧은 순간 스친 정형적인 '고등학생 얼굴'이 2년 만에 거울 앞으로 발을 이끌었다. 밝게 비치는 형광등 아래에서 오랜만에 바라본 얼굴은 중학생 때에 비해 많이 변해있었다. 눈 밑은 어두컴컴했고 블랙헤드도 늘어났다. 초롱초롱하던 눈은 어디 가고 거울에 비친 탁한 눈동자를 보니까 갑자기 확 늙은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해졌다. 그때, 앞머리 뒤편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깜짝 놀란 마음에 머리를 조금씩 걷어내고 반짝이는 물체를 눈앞에 확실히 가져왔을 때 갑자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흰머리가 돋아났다. 그것도 3개씩이나. 당황한 마음에 이모한테 이야기하니 새치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새치도 어쨌든 하얀색 머리이지 않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흰머리는 나중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그때쯤 생길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3년 안에 일어났다. 이 모든 일이. 그 짧은 순간 중학교 졸업에서부터 고등학교 2학년 끄트머리에 서 있는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등학생이 되고 다른 친구들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느슨한 삶을 산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의 어른들은 그저 여유로운 고등학생이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다. 나름대로는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학교에 가면 책에 고개를 파묻고 '책만을'바라보며 공부만 하는 아이들, 온종일 잠만 자는 아이들, 뒤편에 앉아서 수업 끝날 때까지 노는 아이들 같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1점이라도 높게 받아 인서울을 해야만 성공한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신념아래에서, 이미 늦어버린 공부 자포자기하는 마음에, 공부도 노는 것도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즈음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모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란 공통분모가 있었다. 모두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다 다르지만 '미래'라는 한 가지가 우리를 학교로 모이게 했고, 우릴 묶어두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친구들이 답답해 보였다.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도 급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평생에 있어 한 번밖에 없는 십대가 너무 급했고 아까웠다. 가만히 있어도 재미있는 일이 넘쳐나야 하는 십대에 이렇게 각진 공간에서 모두 각 잡고 앉아 '성공'이란 단어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매일 아침 지치게 하였다. 그래서 반항하는 마음에 다른 아이들이 문제집을 필 때 옆에 앉아 책 한 권을 들고 앉아 열심히 읽었다. 지금 네가 풀고 있는 문제가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이런 행동들은 주위에 친구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 철없는 아이의 철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냥 난 친구들과 함께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즐기다'라는 단어는 사치일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있어 십대는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라 참고 견뎌야 하는 시기가 되어있었다. 대학 가면 펼쳐질 밝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놀고 싶고 먹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친구들이 내뱉는 "이건 대학 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라는 말이 귓속에 들어올 때마다 무엇인가 나를 푹푹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과 내일도 엄연히 다른데 17살의 자신과 20살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얼마나 다를까? 20살에 마주하게 될 자신을 위해서 17살의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상황들을 잘 느껴뒀다가 20살에 한 층 더 성숙하게 발산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십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느낄 수 있는 충분한 감정과 상황들이 나중으로 미루어져야 한다는 현실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이런 버거움 속에서 성적은 끝을 향해 쭉쭉 떨어지고 아직 인생을 잘 모르지만,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과연 내가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이 맞나? 내 가치관이 이상한것일까? 나한테 있어 미래란 무엇일까? 이렇게 많은 질문이 점점 어깨를 눌러왔다. 그럴수록 주위 친구들의 표정이 하나씩 느껴졌다. 모두 학교에서 괜찮은 척 즐거운 척 웃으며 떠들지만 속으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수도권이 아닌 부산에서 태어나서 문화적으로든 교육적으로든 수도권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런 서울 아이들을 이기기 위해서 모두 자신만의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이자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래서 잘 보지 않던 문제집을 들고, 펜을 들어 조금이나마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십대. 그것도 정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원하는 십대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십대이다. 어쩔 수 없는 을인 입장인 나는, 아니 우리는 갑을 위해서 을의 입장을 잠시 접어둔 채로 갑에게 맞춰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갈등상황 속에서 내린 결론이다. 사회라는 건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모두가 어울리기 위해선 보통이상은 해야 그 사회에 속할 수 있다. 그래야 남들 사는 만큼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찍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남들만큼 살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이게 길고 긴 12년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약 2주 뒤면 수능이 끝나고 이제 '예비'수험생이 아닌 본격적인 수험생생활을 해야 한다. 솔직히 자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보다 더 불안하다. 그래도 지금 난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는 현실에 놓여있고, 이런 현실을 이겨내야만 무엇인가를 진행할 수 있다. 그 희미한 무엇인가를 위해 남은 380일 정도를 불태워볼 예정이다. 분명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난 2년간 치열하게 공부한 것은 암기를 통한 지식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삶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고민하며 지나간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모여 '나'라는 튼튼한 틀을 만들었으니, 이제 여기에 '지식'이라는 멋진 요소를 가미하기만 하면 된다. 집을 지을 때도 땅을 다지는 건 한참 걸리지만 건물을 세우는 것은 빨리 세운다. 분명 땅을 다지는데 누구보다 오래 많은 공을 들였으니, 그 누구보다 안정적인 건물을 세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구나 이 시기는 힘들고 지친다. 학교교문만 보면 갑자기 배가 아파진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실 문만 열고 들어오면 머리가 아픈 아이도 있다. 그래도 모두 견딘다. 이 세상에 시련 없는 사람도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도 없다. 단지 우리는 아직도 배워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힘든 것 같기도 하다.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개개인 모두 자세히 보아야 예쁘기 때문에 괜히 자기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언젠가 며칠 전처럼 우연히 거울 볼 일이 생길 것이다. 그때 마주하게 될 나는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걸어간다.
Chapter
- 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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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부(금상) - 김재호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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