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3031

내 마음의 렌즈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

 

                                                                                                                                              김재호

 

[내 마음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한정되어 있고, 내가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보고 싶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세상도 따라서 그렇게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내 의지로 렌즈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다 말고 나는 절대적인 노력..... 중얼거리며 책을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내년 2월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내가 요즘 스스로를 돌아보며 느끼는 점은, 예전과 달리 점점 차갑고 각박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친구나 친지, 주위의 지인들 혹은 신문방송으로 접하는 뭇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좋은 점은 접어두고 나쁜 점과 싫은 점을 먼저 부각시켜 독설로 공격의 화상을 쏘아대거나, 별것도 아닌 일로 설전을 벌이다가 괜한 면박을 주어 자리를 불편케 하거나, 무엇보다 가장 가까우므로 더 많이 상처 받는 가족에게 예의 없이 군다든가 하는, 마치 내가 가진 최초의 마음씨가 사악한 것처럼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이기적인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재어보곤 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책은 몹시 오염된 내 마음의 렌즈를 정화시키는 증류수나 마음의 중심을 다잡는 굳건한 심지처럼 다가왔다. 책은 내게 조곤조곤 타이르듯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눈에 들어오는 건 자신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있기 때문이며, 어떤 이의 결점이 보이고 그 결점이 잊히지 않는 건 자신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해답을 제시했다. 누군가가 믿고 싫으면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보고 내 안에도 그와 비슷한 허물이 없는지 살펴보라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몸속에 독소가 쌓이고 그 독소를 제거하려면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는걸 깨달으라고, 가슴에 사랑을 품고 미움의 근원을 먼저 파악하고 한번쯤은 넉넉하게 사랑을 베풀어 미운 마음을 줄이라고, 아아, 나도 그리 될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을 미워하고 헐뜯는 것만큼 큰 죄가 없음을 들으며 컸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도 인간으로서는 존귀한 사람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가치기준을 품고 컸다. 그런 내가 탁해진 내 마음의 거울을 통해 탁해진 나를 발견 할 지경이 되다니..... 나는 그동안 어떤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평가했는가를 새삼 되돌아보았다. 나와 다른 가치관과 성향의 차이. 그것이 내게 미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음을 알아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신이 만든 상(相)에 딱 맞으면 좋고, 맞지 않으면 싫다는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무지한 자’라는 글귀를 가슴에 담을 일이다. 내 마음의 렌즈가 어제보다 조금 아름다워졌다. 

 

[마음을 다쳤을 때 보복심을 일으키면 내 고통만 보입니다. 그 대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내면의 자비빛을 일깨워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나에게 고통을 준 상대도 결국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책은 내가 부끄러워 숨고 싶은 잠언 같은 말씀으로 내 마음의 렌즈를 또 한번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치는 경우는 허다하다. 더욱이 고도한 물질문명과 배금주의가 낳은 타락한 욕망으로 인간성이 피폐해가는 21세기에는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분노를 참지 못해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다쳤을 때 혜민스님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친해지라 한다. 화, 서운함, 미움, 원망 같은 불편한 감정이 밀려올 때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격해지지 말고 조용히 관조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라 한다. 나쁜 감정의 에너지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어떤 점이 상대방을 자극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라고 한다. 순식간에 솟는 그 감정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마음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구름과 같은 손님이라고 한다. 이에 내 마음의 렌즈는 즉각 반발한다. 사람이 아무리 이성의 동물이라지만 그에 못잖은 감정의 동물인데, 도를 닦는 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리 될 수가 있느냐고. 나는 내 마음의 렌즈를 꺼내어 본다. 어림도 없다. 

 

틈틈이 책을 읽고 난 며칠 뒤, 서로의 망가진 모습도 흉허물로 여기지 않는 오랜 친구와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20대의 젊은 혈기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팽팽하게 격론했다. 서로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주망이 먹히지 않는 데 대한 감정이 날선 비방으로 고조되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문득 책을 떠올렸다. “어째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소리를 지르던 내가 먼저 헐뜯기를 멈추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인간에게는 각자의 생각이 있고 네 생각이 나와 상반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니까. 단지 다를 뿐.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허공에 흩어지는 뜬구름이야. 그 없는 실체가 한순간 사람을 휘둘러 수렁이나 궁지에 빠뜨리기도 하지. 내 머리는 책의 기억을 마음으로 전달하기에 바빴고, 내 마음은 그 글을 음미하고 혼자 조용히 삼키기에 바빴다. 그렇게 제3자를 바라보듯이 관조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니 격한 의식이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 들면서 불편한 마음 상태가 천천히 사라져갔고, 해답도 구해지지 않는 논쟁으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게 에너지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조용한 관조. 실로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분노를 참고, 격분의 순간에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감정의 파동은 더 증폭되지 않고 수그러들 것이다. 그렇다면 순간의 화를 못 참아 빚어지는 수많은 인적 물적 사고는 줄어들 테고,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무서워 빨리 저 세상으로 가야겠다는 어르신들의 탄식도 사라질 텐데..... 나는 책을 읽으며 몇 차례나 내 마음의 렌즈를 끄집어내곤 했다.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가끔은 난 수도자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책은 내게 성숙한 인간, 조금이라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한 평생 삶을 가치 있게, 즐겁게,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풀며 살아보라고 한다. 이 깨우침이 조금이라도 내게 전해졌을까. 나는 내 마음의 렌즈를 꺼낸다. 분명히 달라졌다. 이제는 훨씬 맑아진 내 마음의 렌즈를 나는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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