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718

이순신을 가슴에 품을 딸에게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견선희

 

두툼한 편지 잘 받았어. 읽는 내내 우리 딸 웃는 얼굴이 떠올라 참 따스하더구나. 벌써 호주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을 했다니 무엇보다 기쁘다. 오늘 엄만 네게 꼭 하고픈 이야기가 있단다. 이순신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정리한 책 한 권을 만났거든. 40년 가까이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이순신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한 분이 쓴 책이야.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벅차올랐고,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을 우리 딸에게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구나. 

 

어렸을 적부터 네가 위인전집에서 가장 좋아하던 분이 이순신이었지. 기억하니? 왜 10살 때, 교통사고로 한동안 병원신세를 졌던 때 그런 말을 했었지. “이순신 장군은 다리가 부러져도 다시 말에 올라타 시험을 끝냈잖아요!” 그렇게 이순신을 떠올리며 아픔을 참던 네 초롱초롱한 눈을, 엄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해. 그래, 이순신이 무과 시험 도중 다리가 부러졌을 때, 버들가지 껍질로 상처를 싸매고 다시 말에 올라타 시험을 마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지. 어렸던 네게도 이순신의 용맹함은 크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였어. 

 

고백할게. 엄마는 책을 읽어가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단다. 어린 네가 엄마는 어떤 위인을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었을 때마다 늘 망설임 없이 이순신의 이름을 올렸었던 것에 대해서. 

 

실은 그분의 삶에 대해, 정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정말로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듯, 이제라도 이순신의 삶을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순신을 그냥 관념적으로 존경한다고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이순신’ 이름 석 자의 무게가 엄마의 가슴에 주는 울림이 너무나 크고 깊어졌구나. 쉽게 그 이름 석 자를 존경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우리의 삶으로, 그 존경의 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이순신이 밟은 길은 온통 험한 가시밭길이었어. 왕과 그를 모함하는 세력들이 이순신의 공을 알아주기는커녕 파면하고, 투옥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였으나 이순신은 절망하지도, 그들을 원망하지도 않았단다. 빛나는 공을 세웠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에도, 피땀 흘려 키운 수만의 수군이 몰살되었을 때에도, 모든 것을 잃은 몸으로 백의종군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원망과 격분 대신 인내로, 충으로, 소명의식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어. 수년을 피땀 흘려 준비한 수백 척 전함이 직책을 맡은 자들의 잘못으로 모두 바다 속으로 던져져 겨우 12척이 남았을 때…, 그 의연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구나. 그 곧고, 웅숭깊은 정신이 스며있는 목소리가.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전에는 이순신을 왜 성웅(聖雄)이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단다. 단순하게, 패전을 거듭하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라 그렇게 부르는가보다 생각했었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어. 이순신이 목숨 걸고 지켜낸 이 땅의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 앞에 성스러울 성(聖)자를 마음을 다해서 놓아드리고 싶다. 

 

사랑하는 딸아. 기억하렴,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걸. 사실 이순신은 평범한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속한 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분을 닮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야. 하지만 우리 용기를 내어 이순신을 가슴에 품어보자. 어두운 밤바다를 비추어주는 등대처럼, 그분을 우리 삶의 길잡이로 삼고 살자꾸나. 앞으로 네 앞길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될 거야. 인생은 비단길 같은 매끄러운 길보다는 자갈밭일 때가 더 많은 법이란다. 어떤 험한 길을 만나더라도 결코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네가 되었으면 한다. 네 가슴속의 이순신께 부끄럽지 않도록.

 

낯선 환경에서 꿈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너에게, 빛나는 등대가 되어줄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에 대해 한없이 감사드리고 싶구나. 항상 이순신을 가슴속에 품고 당당히 네 길을 걸어가거라. 엄만 믿는다. 앞으로 네가 맡은 일이 무엇이든, 너에게 닥칠 상황이 어떤 것이든 이순신처럼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채워간다면 후회 없는 삶이 되리라는 것을. 

 

2013.10.25.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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