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867

허락된 삶을 살아간다는 건 -'무지개 곶의 찻집'을 읽고 - 

 

                                                                                                                           이사벨고등학교 3학년 4반 김주경

 

나는 흔히들 말하는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고3’이다. 물론 죽어라 수시준비, 수능공부만 하는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길에 서 있지만 말이다. 대부분 고3은 입시준비를 하지만 나는 수능이 아닌 작품 포트폴리오와 영어공부에 초점을 맞추는 고등학생 3학년이다. 하지만 친구들 못지않게 학교를 마치자마자 밤늦게까지 붓을 내려놓지 못하고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면서 여느 입시생 못지않게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이 기분을 알겠지만 정말이지 쳇바퀴 굴러가듯 학교-학원-집-학교-학원-집만 반복하는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난 대체 지금 뭐하면서 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런 회의감과 물음들이 뒤섞인, 그러나 여전히 틀에 박힌 일상에서 만난 곳이 바로 ‘무지개 곶의 찻집’이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이제 막 개학을 했을 때, 학교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고3이 이 와중에 학교에서 책을 읽어?’라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쩌면 그러한 시선이 내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무지개 곶에 있는 찻집의 문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아담한 카페였지만 그래서 더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들과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세상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편안한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생생하게 그 찻집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아직까지도 이렇게 담고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가장 처음 들려왔던 노래는 ‘amazing grace' 즉, 놀라운 은혜였다. 그 선율과 공기 속에는 찻집 주인인 에쓰코씨와 노조미라는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노조미의 아빠가 있었다. 노조미와 노조미의 아빠는 둘 다 너무나도 컸던 엄마이자 아내의 빈자리를 이겨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의외로 어린 노조미가 아빠보다 더 씩씩하게 웃으며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놀랐다. 

노조미를 보고 있으니 내 뜻대로 잘 안된다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고3은 너무 잔인하다고 투정부리던 내가 그 아이보다 더 어리게 느껴졌다. 사실 힘든 일들만 생각한다고 해서 힘든 일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내 삶 부분 부분마다 행복한 것들이 자리 잡고 있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에쓰코씨가 준 아이스크림 한 스푼에도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 노조미인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후회되기도 했다. 아니, 분명히 나도 노조미 나이 때는 그럴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고민이 생겨도 과자 한 봉지만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곤 했으니까. ‘그렇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동일인물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Amazing grace'가 끝난 뒤 노조미와 아저씨가 찻집 문을 나설 때, 비로소 아저씨도 나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한 자 한 자 글을 적어가고 있는 이 시간도 아저씨 삶에 찾아온, 그리고 내 삶에 찾아온 ‘놀라운 은혜’였다는 것을……. 

 

그렇게 내 마음의 떨림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한 계절은 흐르고 여름이 되었다. 장마철이라 계속 비가 오던 한여름, 오랜만에 날씨가 굉장히 맑았던 날, 언젠가 겪게 될 미래의 나와 비슷한 한 대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날의 배경음악은 ‘Girls on the beach'. 그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구직활동 걱정에 시간을 쏟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지금 나와 내 친구들이 졸업을 앞두고 가야 할 대학교를 걱정하며 여기저기 원서를 쓰면서 하루하루 복잡한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에게 찻집주인이자 세상을 먼저 겪어본 인생선배인 에쓰코씨는 ‘힘내라, 잘 될 거다, 아직 넌 젊다, 노력하면 된다.’ 등의 많은 어른들이 해주는 조언들 대신에 어쩌면 뜬금없게 느껴지는 ’Girls on the beach'를 선물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곧 스무 살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도, 이미 20대인 그에게도 그저 ‘지금 그 순간순간을 즐겨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열심히 노력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참고 견디면 좋은날이 온다는 그런 식상한 말들 대신에 인생을 먼저 겪어본 선배로써 진심으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여름, 사랑과 한 세트라는 ‘Girls on the beach'를 선물해 주신 게 아닐까. 내가 힘들어하고 매일 걱정하면서, 불안해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내 인생의 단 한 번뿐인 19살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1초, 2초 계속 사라져가고 있으니까.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 행복을 위해 조금 더 좋은 대학교를 가고, 조금 더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고, 조금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위해, 하고 있는 이 모든 노력과 행동들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 노래가 끝났지만 여전히 그 여운이 녹아있는 공기들 속에서 난 다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주어진 내 열아홉 살은 즐거움, 행복함과 함께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나는 그 날 이후로도 많은 노래들과 사람들을 더 만났다. ‘The prayer'가 끝났을 때는 내 인생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용기가 생겼고, ’Love me tender’가 끝났을 때엔 잊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들과 그 시간의 감정들을 오랜만에 찾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은 곡은 ‘Thank you for the music'이다. 내가 듣게 된 마지막 노래여서 더 그랬지만 그냥 제목 그 자체였다. 많이 지쳐 있었고,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했었던 요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데 왜 행복하지가 않은 거냐며, 왜 오히려 더 힘들기만 한 거냐며 회의감에 빠져있었다.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끝날까? 정말 끝나기는 하나?’라는 생각이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다. 분명히 그랬던 마음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지개 곶에 있는 조그마한 찻집에서 에쓰코씨가 선물한 노래들로 인해 치유되어 있었다. 

에쓰코씨도,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도 다 정말 감사했고, 제목만으로도, 가사만으로도, 그 음 하나하나만으로도 날 치유해준 음악이란 존재에도 감사했다. 난 이제 찻집에서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예전의 나와는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느낀다. 물론 여전히 학교를 마치자마자 7시간동안 쉬지도 못한 채 그림을 그리고 나면 어깨가 빠질 것만 같고, 집에 가는 발걸음도 무겁다. 하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고, 열정을 쏟아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살아 숨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삶’이라는 건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기쁘고 즐거운 것도, 슬프고 화나는 것도 ‘삶’이라는 선물이 주어진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란 것이 나에게도 주어졌다. 그래서 난 선생님들이, 어른들이 사람도 아니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이지만, 내 삶에 단 한번 있는 대한민국 고3이기 때문에, 내 인생 마지막 열아홉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도, 앞으로도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가슴 벅차고, 설렐 것이다. 

 

무지개는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무지개를 보는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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