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870

샛노란 색깔의 책, 이 스타일 어때?

 

김서영

 

나의 아들들아, 나의 딸아, 나는 지금 너희들이 잠든 방에 가서 걷어 올린 런닝을 배까지 내려주고 밀쳐버린 이불을 가슴으로 끌어올리고 베개를 다시 받쳐주고 이 글을 쓴다. 편지라는 게 쓰는 일도, 받는 일도 영 익숙지 않아서, 너희들도 편지를 읽으며 ‘어, 우리 엄마 왜 저러시지?’ 하고 놀랄 지도 몰라. 그리 놀랠 일은 아니야.

 

엄마는 너희들이 아주 어렸을 적, 내 무릎에 너희들을 눕혀놓고 동화를 읽어주곤 했었지. 권정생 선생님의「강아지똥」이나 로버트 먼치의「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토니 로스의「왜요?」같은 책을. 그러면 너희들은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우는 장면에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언제나 말썽을 피우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이제 언제까지나 엄마를 사랑할 것이라는 노래를 듣곤 꾀꼬리처럼 ‘Love you forever’라고 말하여 나를 기쁘게 해주었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들을 재잘거리던 너희들을 보며「왜요?」라는 책을 읽어준 걸 은근히 후회하기도 했었지. 그러나 너희들이 커가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더 이상 무릎을 내주지 않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눈물을 흘리던 일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일도, 그 많던 의문들도 사라져버렸어. 페루 잉카문명의 고대도시 마추픽추에 살던 사람들이 일순간 사라졌듯이. 우리 집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시시콜콜한 게임소리에 묻히고 말았어. ‘책 읽어라.’, ‘책보다 TV가 재밌어요.’ 우리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 엄마는 가슴이 벌렁거려. 너희들 세 명의 힘은 엄마보다 커졌고 목소리만 큰 나는 굵은 머리의 너희들에게 윽박지르지. 너희는 엄마의 옛이야기를 시시해하고 스마트폰의 별로 스마트하지 않는 놀이에 빠져있지. 이제 나는 조금씩 힘이 빠져. 너희들이 강남 스타일에 젖어 그 노래가사를 흥얼거리고 리듬에 맞춰 춤추고 있을 때, 엄마는 조용히 책을 읽었구나. 강남 스타일이 아닌「최재천 스타일」을, 샛노란 표지의 책을.

 

아들들아, 딸아! 엄마는 요즘, 한 달에 열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토론을 준비하고 있단다. 벌써 읽은 책이 스무 권. 그 중 한 권이 바로 그 책이야. 종승이는 이미 최재천 교수님의 다른 책을 몇 권 읽었지.「최재천 스타일」을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엄마가 고백하건대, 나는 중고등학교 때 수학과 과학은 정말 못했단다. 과학은 왜 어려워야 했던지,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원소주기율표나 화학식, 인체구조 등에서 좌절했지. 과학자하면 차갑고, 괴짜에다, 난해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고 말이야. 너희들도 그렇다고 얘기했었지. 여하튼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너희들도, 나도 다 과학에서 멀다는 거지. 그런데 엄마는 자연과학자가 쓰신 그 책을 읽고서는 ‘아, 과학은 외우는 공식이 아니라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단다. 

 

책을 펼쳐보렴. 아니, 표지부터 봐! 샛노란 것이 민들레색이야.「강아지똥」이 자기 몸을 주고서 살려낸 그 노란 민들레꽃. 엄마는 과감히 책 표지를 넘겼어. 두렵지가 않았어. 표지를 넘기니 이번엔 보라색바탕이 보여.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글에서 필이 확 꽂혔다고나 할까. 내 처음 생각은 이랬지, 과학은 딱딱한 거북이 껍질 같고 시란 보드라운 병아리 털과 같을 건데 어떻게 과학자가 시인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과학자는 시인 같은 감수성을 가져야 하고 세상에 대해 따듯한 마음을 지녀야 된다는 것으로 엄마는 해석했어. 그렇다면 정의로운 종승이, 인정 많은 종영이, 그리고 속 깊은 우리 수경이는 이미 시인들이야. 그리고 이 책은 글자가 작지도 않고 공백도 제법 있어. 같이 더 가볼래?

 

시인 같은 과학자가 쓴 책에는 자신의 스타일이 쭉 나와 있어. 그리고 그분의 생활, 사랑, 멘토, 숲, 공부, 시선 등이 쓰여 있단다. 이를테면 카키색 조끼, 와인, 춤, 고등학생들을 위한 특강, 부부,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하신다고 해. 너희들이 좋아하는 목록에는 뭐가 있을까? 한번 말해볼래? 축구, 돼지국밥, 낙곱새, 마이클잭슨, 강아지, 이런 거? 엄마는 ‘부부’라는 대목이 참 좋더구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학문의 동반자. 달라서 늘 자극이 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퉁겨보는 울림판-특히, 과학자가 이런 음악적인 용어를 쓰다니 멋져-. 너희들의 엄마아빠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 살짝 부러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글의 소제목 밑에는 그 소제목에 어울리는 다른 책이 소개되어 있어. “생명”이라는 소제목에서는 ‘오타니 준코의「다이고로야 고마워」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이 적혀있어. 그 분의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으로 빨려드는 마법도 느낄 수 있어. 책을 읽다가 다른 책을 소개받는 것은, 친한 친구로부터 다른 친구를 소개받는 것처럼 설레고 신나는 일이야. 엄마는 벌써 읽고 싶은 책에다 별도 달고 밑줄도 긋고 그랬어. 그분은 자신이 읽은 책들마다 때로는 따듯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또는 서운하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생각을 붙여가며 다시 자신의 글로 소화시켜 나가고 있어.

 

동물과 식물에 관한 내용도 참 애틋하고 따사로워. 2007년 태안에서 기름유출사고에서 살아난 바닷가 생명에 대한 기적과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아름답고도 슬픈 동물 북극곰 이야기에 어쩌면 너희들은 눈물을 글썽일지도 몰라. 50년 이상을 탄자니아에서 침팬지와 더불어 살면서 동물 사랑을 실천하신 제인 구달 이야기, 다윈 혁명, 꽃과 나무와 곤충과 개미에 대한 과학자의 따듯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책의 중간쯤에 와 있고 과학이 바로 일상의 한부분임을 느끼게 된단다. 물론 좀 어려운 내용도 있어. 그러면 과감히 통과하길! 엄마가 어디선가 본 글인데, 독자에게는 10가지 권리가 있는데 그 중 건너뛰며 읽을 권리라는 게 있더라고. 아, 참 종영이는 알지.「늑대의 눈」을 쓴 프랑스 작가 다니엘 뻬냑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야. 그러니 그럴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 

 

이제 편지가 슬슬 지겨워지고 졸립지? 그런데 이 말은 꼭 소개하고 싶어. “호모 심비우스”라는 건데 ‘함께 사는 인간’이라는 뜻이래. 우리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인간이 있어. 현명이라는 것을 빌미로 무차별적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손잡고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현명함일 거라는 거지. 나아가 우리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인간과 동물이, 인간과 식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존중해줄 때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화분에 물주기, 강아지 먹이주기, 쓰레기 분리수거하기, 친구랑 음식 나누어 먹기 등 우리가 공생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많단다.

 

어느덧 책의 끝부분에 왔어. ‘비움, 귀 기울임, 받아들임’ 이런 단어들이 보여. 이에 덧붙여 엄마가 너희 세 남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의 견해 인정해주기. 종영이 생각이 형 종승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종영이의 생각을 ‘틀렸다’라고 하는 것은 위험해. 나도 반성 많이 한단다. 너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엄마 생각만 고집하고 군림하려고 했던 것 말이야.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너희들이 너의 세계가 인정받길 원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엄마의 세계를 조금 이해해 주었으면 하고 바래. 최재천 교수님은 하루 일정 시간을 오로지 자신만의 것-글쓰기-으로 만든다고 하셔. 난 공감이야. 엄마 노릇을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이만큼이라도 너희들을 키워온 나에게 내 시간과 공간을 줬으면, 다시 말하면 여유를 주면 정말 고맙겠어. 그래야 엄마도 성장하지. 너희들과 맞추려면 말이야, 수경이 이해할 수 있겠니? 

 

생명사랑, 책과 글에 대한 열망,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기, 앎과 삶이 하나 되기. 이것이 바로 최재천 스타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희들은 각자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길 바래. 강남은 강남스타일이 있는 거구, 최재천 교수님은 그 스타일이 있거든. 억지로 그 스타일을 조 ㅊ 는 것은 무리지. 네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 너희들 것 인양 하는 것은 어색해. 너희다운, 그리고 너희를 성장시킬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거야. 다음번에도 편지로 만나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2012년 10월 노란 낙엽이 뒹구는 날

엄마가 사랑하는 우리 아들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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