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880

'가시고백'를 읽고

 

                                                                                                                                             전예지

 

누구나 털어놓기 힘든 사연을 안고 살아가며, 누구나 힘겨운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고자 애쓴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추고 싶어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자신의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듯한 동지애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그날 밤에 후회하곤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했지? 아..’라고 말이다.

 

교단에 선 지 8년차. 

 

꼭 내 어릴 적 모습과 같은-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든든한 지원군을 만들고 싶어하는-학생들과 매일같이 생활하며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의 사연을 들었고, 그들의 고백에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울기도 하였다. 모든 아이들의 사연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위로받고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자 노력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시간들 동안 나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주고 치유하고자 노력했던가. 형식적인 위로로 또 다른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사실 어쩌면 한동안은 힘겹고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입장으로 공감하며 나름대로 겪었거나 주워들었던 경험들을 섞어가며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척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난 어른인 척 했고, 아이들의 크고 작은 고민들을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추상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가시고백」을 읽으며 나의 지난 8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지지를 받는 ‘용창느님’까지는 되지 못 해도, 아니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의 아프고 힘겨운 시간을 함께 나누고픈 진심으로 다가간 누군가로 기억될 수 있기를. 

 

그 덕분에 올해 만난 아이들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물건을 계속 훔치는 해일이가 되어 다가가기도 했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상처받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안고 살면서 한편으로는 아빠를 진심으로 연민하는 지란이가 되어 다가가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멋진 반장이지만 용기 없이 짝사랑만 하는 다영이가 되어 아이들과 호흡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모습이든 진심으로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 학생들에게 나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참으로 어렵게만 느꼈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릴 적 동지애를 느끼면서도 후회를 안으며 친구들을 늘 대했던 기억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2학기를 맞이하고 보다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지난 시간들 동안 학업에, 교우 관계에, 스펙 정리에 힘들어하던 아이들에게 ‘힐링’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좋은 음악 한 곡 들려주고 용기를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에 내가 정말 힘들고 외로웠을 때 위로받았던 노래를 들려주었다.

 

‘Not Going Anywhere'

 

3년 전 이맘때, 일과 도중 급작스럽게 아버지의 암투병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동안 부모님께서 비밀로 하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되었다. 요즘 워낙 암은 흔한 질병이 되었고, 주변에서도 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기는 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참으로 어렵고 아프기만 했다. 겨우 정신을 차려 병원에 갔던 기억, 운전대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실감나지 않아 한동안 멍했던 기억, 병실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참으로 서러웠던 기억, 그러면서도 다음날 학교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 했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했던..

 

해결할 수 없는 아버지의 병을 뒤로한 채 출근해서 반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수업을 해야 했던 그 당시는 참으로 힘들기만 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거나 기댈 수 없었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던 그 때.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척 웃어야 했던 내 모습이 광대처럼 느껴져서 한없이 울기도 했었지.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 

그때 라디오에서 문득 이 노래를 들었어.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그래, 난 사라지지 않을 거고..도망치지 않을 거야.. 

 

진심으로 내 고백을 들어주고, 가시를 뽑아내어 피가 나는 그 상처를 아이들이 어루만져주고 있다. 나는 동지애를 바라지도 않았고, 또 후회하지도 않는다. 얘들아,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내가 겪어내기 힘든 일에 부닥치게 된단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우리는 살아내어야 해. 어디에도 가지 않고, 바로 우리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말자.

 

나는 그렇게, 앞으로도 내게 숱한 고백을 할 아이들과 함께 나의 자리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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