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587

두근두근, 가슴 뛰는 일상을 꿈꾸다 -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이연우

 

고시원 창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다. 가을, 이라는 것을 문득 느낀다. 그러고 보니 10월도 반이 지났다. 9월이 오기 전 읽어 보라던 책을 이제야 펼친다. 썩 내키지 않는 마음임은 어쩔 수 없다. 그가 선물한 몇 권의 책들은 사실 내 취향과 많이 달랐다. 권해준 책이 어땠냐는 그의 물음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마다 그는 그것을 편향성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다. 정해놓은 몇몇 작가의 작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내 책읽기를 그는 늘 질타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편협한 독서 취향과는 무관한 개인적 성향의 문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일단 제목은 마음에 든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은 인생 앞에서 두근거려 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한 지금의 내게, 자신의 인생이 두근거린다고 말하는 제목은 끌림으로 다가온다. 10대 때는 자존심과 자만심의 모호한 경계에 서서 내 인생이 타인들의 그것보다 찬란히 빛날거라 속단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실패와 그토록 꿈꿔 온 시험에서 여러 번 낙방한 끝에 인생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내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여기, 17살에 인생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가 체득한 한 가족이 있다. 17살, 소소한 일상마저 웃음이 되는 나이. 그런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 한대수와 최미라. 그들은 어려운 선택 위에 던져진다. 평소 임신도 책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도 그들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배려심 없는 내 소신을 냉담히 말하기에 그들은 너무 어리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기에 무모한, 한편으로는 어른스러운 선택을 한다.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나은 아이 ‘아름’. 아름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이의 삶을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17살의 아름이는 조로증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나이 열일곱에 아름이는 출산을 택했던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무게를 한껏 견뎌내고 있다. 다만, 그들의 부모가 ‘특별한 선택’을 한 것에 비해 아름이는 인생으로부터 어쩔 수 없는 ‘받아들임’을 강요받게 된다. 팔십의 몸을 인생으로부터 강요 받은 열일곱의 아름은 외형적 부산물로 정신적 성숙도 강요 받았다. 외형으로 인해 또래에 비해 일찍 성숙할 수밖에 없었던 아름이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꿈꾼다. 실패하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인간이라면 수없이 경험하게 되는 그 감정이 아름이에겐 동경이고 꿈일 뿐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고, 실패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임에도 아름이의 삶은 실패를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실패를 느껴보고 싶다는 그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아’ 탄식이 나왔다. 명치를 막고 있던 가시가 일순 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내게 실패는 부끄러움이었고 모멸이었고 타인에게 보이기 싫은 상처였다. 몇 번의 시험 실패는 나를 고시원이라는 틀 안에 가뒀다. 지인들과 만나는 것조차 꺼리게 되고 주변 사람의 전화를 피하고, 어쩌다 외출할 일이 있어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실패자라는 낙인이 내 이마에 찍힌 것처럼 땅만 보고 걷는 날이 많았다. 그 낙인을 찍은 사람도, 한 평 남짓한 좁은 방에 나를 가둔 사람도 내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실패를 열망하는 순수한 아이, 아름을 통해 배운다. 한 번도 실패를 해 보지 않은 아름에게 처음으로 실패를 맛보게 해 준 것은 첫사랑 서하다. 병원비에 힘겨워 하는 부모의 짐을 덜어주고자 방송에 출연하고 그 후 인연을 맺게 된 서하. 아름은 그녀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조금씩 설레고 그보다 더 많이 행복해 한다. 그러나 서하가 36살의 남자라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은 상처로 막을 내린다. 서하가 남자였다는 사실에 나도 적지 않게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이 한 번도 사랑해 보지 않았다면, 이성적 사랑은 느껴보지도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면 더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름에게는 부모가 있었고 친구(장씨 할아버지)도 있었지만 사랑의 자리는 부재했다. 비록 그것이 일방적 진실이었다 해도, 아름이가 한 사랑을 가짜라고 매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보지 않는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것,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그러면서 스스로 성숙해 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고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름의 사랑은 완성작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터무니없이 행복하기만 한 소설을 기대했다. 가슴 떨리는 일로 가득한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길 바랐다. 그러나 아름이의 세계는 터무니없이 행복하지도 가슴 떨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슴을 졸여야 할 순간이 많았고, 아픈 마음을 애써 동여매며 아름의 시간을 읽어나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나는 분명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누구의 인생도 빛나지 않는 순간은 없다. 단지 아름처럼 치열하게 인생을 만들어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실패를 꿈꾸는 소년 아름처럼 어린아이처럼 울게 되더라도 실패에 맞서는 것, 사소한 일상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을 두근거리게 하는 열쇠가 아닌가 한다. 

 

다시금 고시원 창문 밖을 본다. 가을이라 하늘도 나뭇잎도 제법 여물었다. 오늘은 좁은 고시원이 아니라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하고 싶다. 당당해지리라, 세상에 그리고 내 자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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