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591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진실의 힘 - <7년의 밤>을 읽고 -

 

김선영

 

운명이 때때로 인간에게 ‘불행’이라는 질풍을 던져 줄 때가 있다. 그럴 때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최악의 패를 잡게 되는 상황들은 사실과 진실 사이에 ‘그러나’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는 순간, 나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나’ 때문에 혼란이 왔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우리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그러나’가 존재하는 것일까? 지금 한창 이슈가 되어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든 영화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쉽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뉴스에서 흘려들었던 단순한 사실 이면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없었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진실로 인해 먹먹해진 마음이 부당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행동을 이끌어 내게 만들었다. 이런 게 바로 진실의 힘이라는 걸까? 


이 소설은 사실 뒤에 가려진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소녀를 죽이고, 많은 사람들을 익사시킨 살인마 현수. 결국 사형까지 당한 그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이지만, 만일 그에게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면? 실수로 인한 살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쳐가던 그가 많은 사람들을 익사시키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게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아들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그의 행동 이면에는 그의 감정을 조정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남자가 있었다. 바로 현수에게 딸을 잃은 오영제.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철저한 복수를 꿈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근본적으로 딸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이 바로 그였다면? 우리가 만일 이러한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어도 마냥 현수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 끝까지 내몰린 서원에게 “그것은 네가 사형수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빚이야”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 진실을 알고 난 후 나의 마음은 현수를 비난하는 대신 오영제를 욕하고, 서원을 손가락질 하는 대신 감싸주고 싶은 쪽으로 변해버렸다. 사실 뒤에 숨겨진 진실이 내 마음을 그렇게 변화시킨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이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말했다. 즉, 인생은 선택이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모두가 선택의 순간에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범죄도 없고, 미움도 없고, 오직 평화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다. 사소한 실수로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 작은 욕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사람들의 소식을 TV 뉴스를 통해서 늘 들으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소식들에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결국 내 이웃, 내 가족,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가진다.” 운명이 나에게 시험하듯 ‘불행’이라는 질풍을 던져주었을 때,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싸늘한 병실 침대에서 눈을 감아버렸을 때, 그때 난 이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들처럼 평범하리라 믿어왔던 내 삶에 이렇게 큰 불행이 숨어있을지 몰랐다는 배신감에 하늘과 내 운명을 수도 없이 원망했지만, 결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 뿐이었다. 현수가 무면허로 음주운전만 하지 않았다면 세령을 차로 치는 사고를 내지 않았겠지? 그러면 자신의 범죄를 숨기고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만일 그 날 오영제가 아내 하영으로부터 당한 이혼소송에서 패소하지 않았더라면 딸의 생일날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겠지? 그랬다면 세령이 자다가 도망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현수의 차에 치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현수가 사형수가 되는 일도, 서원이 살인자의 아들이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만약’ 이라는 가정을 세워서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재구성해 본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려보고 흐뭇한 마음을 가져보지만, 삶이란 늘 예측불허라는 걸 곧 깨달아 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소설 속처럼 불행한 일들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새삼 나를 깨웠다. 그래서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많은 연민을 느꼈나보다. 그들이 하나같이 내 이웃 같고, 친구 같고, 가족 같아서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 것 같다. 특히 서원의 남은 인생이 가장 염려스럽다. 열두 살이란 나이에 겪은 사건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가, 7년의 밤을 견디고 이제 겨우 열아홉이 된 그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사형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을 알게 된 그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아버지를 용서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현수처럼 아버지란 존재로 인해 늘 악몽에 시달리는 인생을 살게 될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온전히 서원의 몫으로 남겨지겠지만,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단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가 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숙제이며,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진실의 힘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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