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589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신민희

 

침대 위에 놓인 액자 속에서 젊은 여자가 웃고 있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말이다. 20대 초반의 싱그러움을 머금은 얼굴이 영원하길 빌면서, 그 사진을 머리맡에 두었다. 내 나이 24살. 저 액자 속에 놓인 여자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고 이제 곧 저 여자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내가 살게 된다. 이제 내 삶의 나이테는 어머니가 나를 낳았던 나이, 어머니가 살지 못했던 나이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간을 되짚어갔다. 마치 내 애기를 그대로 써 놓은 듯이, 혹은 젊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듯이 말이다. 이제는 어머니에게 물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활자 속에 쏟아졌다.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똑똑 한글자씩 한방울씩 떨어졌다. 아직 버리지 못한 사진첩 속엔 스무 살의 어린 여자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을 지금보다 더 어릴 때도 보았지만 스무 살의 나이를 넘긴 지금에 와서 이 사진을 보자니 다른 빛깔을 내고 있었다. 먹고 사는 일은 왜 이토록 눈물나는 것일까. 그 나이는 어머니가 되기에도, 밥 먹는 일의 고달픔을 알기에도 하여 제 자식 먹이는 것이 더 중요해지기엔 어린 나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보다 더 어린 열일곱의 나이에 부모가 되어야 했던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 우리 어머니도 저랬겠구나’, ‘저런 생각을 가졌겠구나’ 하는 공명들로 눈물이 왈칵했다. 부모가 아닌 청춘으로써 스무 살의 삶, 열일곱의 삶을 또 다른 청춘이 이해하게 했다. 열일곱에 부모가 된 이들은 어느새 그때의 나이가 된 아들을 자식으로 두게 된다. 일찍 부모가 된 이들처럼 일찍 어른이 된 아들이다. 젊은 아버지와 늙은 자식의 이야기는 내게 또 다른 의미였다.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를 보며 나를 떠올렸다. 언젠가 책을 읽다 나이를 순서대로 먹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왈칵했던 적이 있다.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란 생각에, 그러니 넌 괜찮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아름이를 보며 나도 조로증이라는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늙지만 난 조금 빨리 늙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조로증이라는 병 때문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늙어 버렸을 수도, 일찍 철들어 버렸기에 조로증이라는 병이 걸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늙은이. 평소에 난 주위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14살 때도 24살 때도 말이다.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한 나이인데도 어른이 되어서도 또 누군가의 눈에는 34살처럼 보이는가 보다. 또 시간보다 한 발짝 앞서가서 내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어릴 때 나를 낳은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순탄할 수가 없었다. 덜컥 아이는 생겨버렸고 경제력은 없으니 힘없고 가난한 부모였다. 지하단칸방에 차려진 신혼집에서 부모님은 연탄배달에 부업까지 하며 일찍 어른이 되고 있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겁고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은 나이에 포기하고 책임져야하는 일들 속에서 말이다. 자신의 여름을 잃은 부모님은 그럴수록 내게 거는 기대가 컸다. ‘내처럼 살면 안 된다’ 는 알지 못할 자책감 속에서 자식만큼은 훌륭하게 키워내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난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 아닌 것들에 반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는 편인데 특히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할 만큼 놀라고는 한다. 움직임은 소리를 만들어 내고 바람이 부는 소리, 노래 부르는 소리, 종이 울리는 소리들은 저마다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소리를 들으며 움직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해야만 했다. 주위의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말이다. 무언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가지는 보호색이었다. 그때마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은 어찌 할 수 없었다.

 

울음소리를 감지한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자살기도를 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다행히 울음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그 사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난 어린 아이였기에 그 사실에 대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어른이었기에 아무말도 꺼내지 않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슴만 쉴새 없이 뛰었다. 그 뒤로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말이다. 몇 개월 전과 똑같은 이유로, 그래서 난 예전처럼 그냥 모른척하고 있으면 저절로 일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지금 내 곁에 어머니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은 자식 앞에서 어른인척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어머니도 조로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늙어버려서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죽음이 다가왔을 거라고. 다 컸다고 생각했던 나도 부모님을 이해하는 데 그 후로 십 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두근두근 설레기보다 마음 졸였던 시간들 속에서 글 쓰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어렸을 때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떼를 쓰면 부모님일 속상해하신다는 것을 이해한 순간이 있었다. 그 후로는 말수가 줄었다.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서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돋보기를 갖다 대기도 하고, 굴리고 굴려 둥글게 만들어 뱉어내고는 했다. 그렇다 보니 모난 잔여물들이 속으로만 가득 쌓여 갔고 푸념처럼 중얼거린 글들은 흐르지 않을 것만 같던 날들을 견뎌내게 해주었다. 아름에게도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두근두근 그 여름>이라는 이야기의 작가는 김애란이 아니라 한아름인 것일지도 모른다. 한아름이라는 인물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일지라도 이제 아름이는 그 곳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어른이 되어 서글픈 이들을 위해 건네는 한 잔의 위로주 같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다가 다시 또 토해내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그 계절의 순환 속에서 또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어버려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래서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 그래서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두근두근 내 인생을 떠올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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