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영광독서 감상문
UPGRADE -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을 읽고
서울 광양고 김나리
‘안녕하세요. 더 새로워진 오징어땅콩입니다. 저를 골라주세요.’
‘오우, 언니 안녕! 나는 지난번에 언니가 골랐던 딸기 콘이야. 이번엔 생크림이 함유됐어, 어때?’
‘여기 좀 봐주세요. 저는 이번에 새로 나온 멕시칸 스파이시 맛의 꼬깔콘!’
‘안녕하세요. 전 크림 케잌입니다. 칼슘이 첨가된 업그레이드 몽쉘이지요.’
업그레이드? 무슨 과자를 고를까 하다가 이 문구 때문에 몽쉘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문구구나, 과자에 별 수식어를 다 붙이는군. 내 입이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하면서 중얼거리고 있다.
문득 집에 있는 우리 집 컴퓨터가 생각난다. 아빠가 어제 컴퓨터가 바이러스가 잘 걸린다고 인터넷도 느려서 CPU를 업그레이드 해야겠다고 하셨지... 그 때다. 난 생각의 나무에 가지를 하나 더 치며 외쳤다.
아! 내 머리도 업그레이드 받을 수 있다면! 왠지 모르게 끌린 그 상술적 멘트가 있는 몽쉘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위에는 낯선 책 하나가 놓여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제목이 너무 거창한 거 아냐? 상술적인 멘트가 이젠 책의 제목까지 침범했군. 풉. 그런데 갑자기 왠 책이지? 쪽지가 있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리의 위대한 하루가 되기 바라며 -엄마.’
그렇게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처음에 난 적개심을 가진 채 책을 읽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고민을 맡긴 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이 책을 읽기 며칠 전까지 시험 기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이번에도 점수는 그대로이다. 잘한다고도 못한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점수가 벌써 5년째이다. 그 사이에 내 위아래로 점수변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난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고 말이다. 전교1등하는 친구처럼 몇 주전부터 한 적도 있었고, 시험 직전에는 밤을 샌 적도 있었는데 왜 점수는 오르지 않았는지 억울했다.
혹시...?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내방이다. 동생과 같이 쓰는 그 방에선 집중이 되어 잘 되어 가고 있을 때 동생이 말을 걸고, 사소한 것을 꼬투리고 해서 말싸움도 종종 생긴다. 그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거야 .그렇죠? 폰더씨는 확신을 듣고 싶어 하는 내게 다음과 같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하여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 내 과거에 대하여 책임을 짐으로써 나는 내 자신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나는 앞으로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 나의 교육배경, 나의 유전자, 일상생활의 다양한 여건이 나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이런 통제하기 어려운 힘들에게 미룬다면, 나는 과거의 거미줄에 사로잡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앞을 내다보겠다. 나의 과거가 나의 운명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묘한 느낌이 내 전신을 감싸고돈다. 이건 폰더씨가 내게 전한 첫 번째 메시지의 일부 일뿐인데도, 강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너무 깊숙하게 있어서 깨닫지 못했던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강한 느낌은 나를 미래를 생각하게끔 한다. 어렸을 때 엄마 것처럼 예쁜 구두가 신고 싶어서 빨리 되고 싶었던 어른, 초등학생일 때 어리다고 무시받기 싫어서 되고 싶었던 어른, 중학교 때 학교 정기고사를 안 보기 때문에 되고 싶었던 어른이 그 문 앞인 고등학생에 와서는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요새 ‘입시’라는 가장 큰 틀 안에서 사소한 것들도 신경을 쓰고 걱정을 하니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일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 난 무엇을 했을까 하는 회의감이 하루에 적어도 한 번꼴로 찾아온다. 폰더씨가 미소를 띄우며 두 번째 쪽지를 건네 온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매일 매일을 웃음으로 맞이하겠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나는 7초 동안 마음껏 웃겠다. 이렇게 잠시 웃으면 흥분이 내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과거에 나는 어떤 우울한 상황을 만나면 크게 낙담하다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얻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행복한 사람. 열쇠는 여기 있었군. 난 으레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색안경을 끼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곤 했다. 그래서 점점 나약하고 무기력해졌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자조적인 생각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단 3초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킨 미운 사람들. 그 사람들 탓이야 라고 외치는 내게 폰더씨가 마지막 쪽지를 건네준다.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맞이하겠다. 이 순간 나의 인생은 새로운 희망과 확신으로 차고 넘친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이제 분노와 적개심을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용서는 아무 대가없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냥 용서해주는 이 간단한 행위로 나는 버거워했던 과거의 악마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 속에 새로운 마음,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 』
용서, 분노로 펄펄 끓으면서 복수 따위 생각 속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던 나의 모습이 너무나 어리게만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문구는 마음에 와 닿는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면서 설레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작? 영어로 표현하자면 업그레이드? 난 이 다섯 글자가 내가 받은 세 번째 쪽지 아니 모든 쪽지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확신한다. 책을 다 읽은 오후,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굉장히 푸름을 느낀다.
저 하얀 구름은 내가 방금 먹은 몽쉘의 크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왠지 끌린 업그레이드 몽쉘을 말하는 것이다. 난 슈퍼에서 업그레이드되고 싶었던 내 소원을 누군가 들어줬음에 감사한 기분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확실히.
“몽쉘, 그대는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 어떤가. 난 아주 대만족이라네. 아! 슈퍼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고 요즘 사람들의 기호를 사로잡기위한 상술적 문구라고 표현해서 미안하네.” 그리고는 아직 내 책상위에 있는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잊을 뻔했군. 이 책 제목에도 상술적인 표현이라고 했었지. 다섯 손가락을 펴서 책 겉표지를 가볍게 쓸면서 ‘미안해’라고 소곤거렸다. 그리고 ‘오늘은 나의 위대한 하루야.’라고 덧붙였다. 이 기분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어서 핸드폰 액정화면을 바꾸는데,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내 손가락은 핸드폰 문자자판을 꾹꾹 누르면 이렇게 쓰고 있었다. UPGRADE !!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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