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과거로의 여행(흉터의 꽃)
양지영
정말 다행이었다. 그즈음 난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페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사키를 간다고 하니 일본어 선생님이<흉터의 꽃>을 추천해주었다. 여행가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고 갔으니 나로서는 너무나 다행한 일이었다. 영화관에서는 군함도가 개봉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현장이 여과 없이 고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영화보다도 더 참혹한 현장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목도하게 되었다. 책은 마치 예리한 칼날에 베이는 것처럼 섬뜩했다. <흉터의 꽃>은 그냥 화염의 불길이었다. 화마가 따로 없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름 돋는 묘사에 진저리를 쳤고, 책 속에서 통곡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책은 4대 째 원폭으로 고통 받는 강분희 할머니, 그녀의 딸 박인옥,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손자 진수, 진호, 박인옥의 손녀까지 3인칭 서술시점으로 그날의 역사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부관페리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이어주는 큰 배다. 배에 승선하니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다. 출발시간 저녁 9시. 검은 물결을 헤치고 배가 출항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배 위로 올라왔다. 밤이라 밑을 내려다보니 바다는 온통 검은 빛이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예전 현해탄으로 불렸던 이 마의 해협에서 소설 속 강순구와 내천댁은 불안함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배안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벌어주겠다는 일본의 꾐에 속아서 온 스무 살 청년도 있었을 것이고, 나물 캐거나, 우물에서 물을 긷다 끌려온 정신대 소녀도 있었을 것이다. 71년이나 지난 돌이킬 수 없는 조선인 징용의 현장에서 나는 먹먹한 심정으로 멀어져 가는 부산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느 시인은 사람의 눈물이 모여 바다가 되었다는 시적인 표현을 썼는데 이 검은 바다는 그야말로 아주 오래전 피맺힌 조선인들의 애통한 눈물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것 같았다. 가난하고 배고픈 내 조국의 땅보다 하얀 쌀밥과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그 곳, 약속의 땅으로 달려가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배는 밤새 출렁거리며 시모노세키로 향해 달려갔다.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소설의 내용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소설가 정현재는 자신의 아버지가 히로시마 출신이라는 것, 자신이 피폭당한 2세라는 것, 딸이 다운증후군 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으로부터 도망 다녔던 정현재는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것에 어떤 운명을 이끌려 소설을 시작한다. 서사는 현재시점의 정현재의 시선과 강분희 일가의 시선으로 교차되고 있다. 두 개의 축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원폭의 후유증이 얼마나 개인적인 삶을 파괴하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타고 있는 부관페리는 과거와 현재가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과거에 이 배를 통해 오갔을 윗대 조상들 위에 현재의 내가 다시 이 물길을 통해 지나간다. 현재는 늘 그렇듯이 과거를 반추하게 되어있다. 현재라고 규정된 시간은 바로 과거가 되어버리고 그것은 곧바로 기억이란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생생한 과거의 시간을 조우하고 싶었다. 물길위에 뿌려진 수많은 눈물을 기억하고 싶었다.
밤새 달려온 배가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했다. 다시 나가사키 항으로 가는 배로 갈아탔다. 30분정도 달렸을까 원자폭탄의 두 번째 장소인 나가사키 평화공원이 보였다. 군데군데 동상이 보이고 1945. 8, 9, 11:02일이란 숫자에 눈이 멎었다. 나는 소설 속 히로시마에 투하된 작가의 세밀한 묘사가 떠올라 진저리를 쳤다. 원폭이 투하된 지점의 온도는 섭씨 6천만 도였다. 사람 몸속의 장기가 증발해 버리고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사람들의 형체가 날아갔다. 전신주와 나무와 철근과 바위가 녹아내리고 순식간에 증발되어 버리는 지구 종말의 순간과 다름없었다. 내가 딛고 있는 바로 이 땅에서 말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풍이 물드는 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생과 사를 가르는 피맺힌 절규를 떠올리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평화 공원은 그날의 공포와 상관없이 천연덕스런 맑은 얼굴이었다. 거센 물줄기를 품어내는 분수가 평화의 샘이라고 한다. 목말라 죽어간 원혼들을 추모하는 곳이었다. 공원 중간에 누가 그렸는지 그날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보니 세밀화였다. 사람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아비규환이었다. 위령비 앞에서도 역시 생수병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꽃으로 추모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물 한바가지를 퍼서 위령비에 힘껏 뿌렸다. 고향을 그리며, 가족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죽어갔을 많은 조선인들,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원폭지옥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살아 있다 한들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소설 속 강분희 할머니는 피폭된 후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한 많은 생을 살았다.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혼했지만 노망든 시어머니와 시동생도 둘이 있는 가난한 집이었다. 결혼생활은 남편이 휘두르는 구타와 가사노동으로 허리 한 번 펼 날이 없는 또 다른 지옥의 불구덩이였다. 생은 질기고 가혹했다. 아버지 강순구는 죽는 순간에도 원폭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당한 조선인들은 한국에 와서도 이중고통에 시달린다. 특히 소설에서는 피폭된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인 여성들의 절절한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일본에서 겨우 살아 나왔지만 또 다른 고통의 삶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였던가, 강분희 할머니 주변은 모두가 적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인옥이 처럼 다리가 절거나 인규는 뜨거운 열병 속에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 인규의 죽음이후로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해준 동철마저도 등을 돌린다.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일은 또 하나의 원폭 지옥 속을 헤매는 일이었다. 어미로서 자식이 발목을 잡았고,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그날의 기억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작가의 말처럼 부패하지 않는 기억이었다. 그녀의 딸 박인옥의 삶도 엄마의 삶과 동일시된다. 박인옥이 낳은 아들 역시 뇌성마비로 원폭3세의 한을 품으며 살아간다. 결코 끊어지지 않은, 끊을 수도 없는 잔인한 대물림의 견고한 사슬이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잔인했던 그날과 그 이후에 겪었던 지난한 삶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피폭 후 뼈 속을 파고드는 고통을 참으면서도 지속해야할 삶의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인간이 하는 행동 중에 가장 어리석고 끔찍하고 추한 것이 전쟁이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라는 것에 힘을 싣는다. 사랑만이 전쟁과 죽음을 이길 수 있다. 사랑은 원자폭탄보다 힘이 세다는 걸 작가는 말하고 있은 것이다. 진호 여자 친구는 박인옥이 환우회 활동을 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신세대다. 원폭 피해자 가족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이 없고, 진호 그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박인옥은 그제야 가슴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울음을 토해낸다. 진짜 사랑을 본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징그러운 흉터투성이라 해도 사랑 앞에는 그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현실을 비로소 마주한 것이다.
흉터는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져 간다. 그러나 더 빠르게 치유하는 방법은 사랑이라는 묘약이다. 상처를 살피고 돌보는 일,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박인옥이 히로시마에서 자신의 몸이 원폭 피해의 증언자로 서게 된다. 자신의 아들도 환우3세로서 잔인한 대물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린다. 강단있는 그녀의 용기에 감추었던 흉터에서 새살이 돋고 꽃이 핀다. 강분희 할머니 역시 자신의 과거에 함몰하지 않고 살은 사람들 이야기, 살아갈 사람들에 대한 용기 있는 발언이 있었기에 이 소설은 완성되었다고 본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용기 있게 직면한 사람들이었다.
평화공원에 걸린 수천마리의 종이학이 바람에 펄럭인다. 내면에 가려진 일본의 뻔뻔함은 이미 도를 넘었다. 전범국가, 가해국가였던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았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피해 국가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일제 강제 징용의 군함도 역시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소설에서는 피폭자를 위한 환우회 활동이 활발하다. 김형률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역사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김형률은 한국 최초로 원폭2세임을 알린 청년이었다. 그는 원폭2세 환우들에게 절대 꺼지지 않을 희망의 불씨를 남기고 간 사람이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겁다. 일제강점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과거는 과거가 되지 않았고 여전히 살아서 현재인 우리 앞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리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외침을 기억하라고, 조상들의 눈물을 기억하는 이상 일본은 더 이상 우리를 깔보지 않을 것이다.
흉터의 꽃은 이렇게 한 봉오리 열매가 되어 완성되었다. 작가의 끈질긴 취재와 원폭에 대한 탐구가 없었더라면 이 책은 우리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처절한 삶을 살아낸 분희가 흉터라면, 원폭 피해를 전면으로 알려내고 있는 인옥은 꽃입니다. 원폭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생명을 보듬으며 버텨나간 이들. 원폭 피해는 영원히 기억되고 치유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이 있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싶다.
Chapter
- 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양지영 / <흉터의 꽃>을 읽고
- 대상(학생부) - 이유빈 / <물컹하고 쫀득한 두려움>을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상미 / <영초언니>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장수민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금소담 / <꿈을 요리하는 카페>를 읽고
- 금상(학생부) - 변희주 / <빨간 나무>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동택 /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정유진 / <자존감 수업>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조영남 / <여행하는 인간>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오세영 / <안 읽어씨 가족과 책 요리점>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전대산 / <아몬드>를 읽고
- 은상(학생부) - 최다은 / <열일곱 살의 털>을 읽고
- 동상(일반부) - 강나리 /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영혜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유경 / <영초언니>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정원주 / <야행>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조영진 / <호모데우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명우 /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동상(학생부) - 박세아 / <땅이 통곡하는 한>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윤도완 / <꿈을 요리하는 마법카페>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형준 / <슈퍼 암탉 치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정다혜 / <내 친구 맹자의 마음 학교>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