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상처 입은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던“빨간 나무”를 읽고
변희주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약 반년동안,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책을 좋아했으나 책읽기가 즐겁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그림책 “빨간 나무”(숀 탠 지음, 풀빛 펴냄)를 만났다. 간결한 문장과 커다란 그림이 있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다른 그림책들과는 다르게 어두운 분위기를 뿜어내었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림책을 진작 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올 지경이어서, 그림책에 감동하는 동시에, 나를 이해해주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게 느껴졌다. 평소에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라며 보지도 않았던 얇은 그림책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를 나는 알게 되었다.
책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슬픔과 괴로움이 배경으로 느껴지지만, 무표정의 단발머리 주인공은 힘듦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린다(‘기다리고 기다립니다’라는 말이 계속 반복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기다란 생각의 터널을 지나 희망인 ‘빨간 나무’를 발견하는 순간, 드디어 밝게 웃는다. 그림책을 그릴 때 이 부분을 의도하였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장면은 ‘내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울에 빠졌던 내게 나약하다며, 나를 나무라고 더욱 힘내서, 더 노력하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은 힘주어 말하곤 했다. 그 말들이 나는 힘들었다. 그런 내 마음에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찡한 구절이 이 책에는 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라는 구절이다. 폭력과도 같은 말들-힘내라, 노력해라-을 들을 때, 나는 책의 글귀와 같이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때의 내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힘에 부쳐 명확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거나 반박을 하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아, 그때만 생각하면 조금 복잡한 심정이다. 결국 듣기가 너무 괴로워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오열을 하며 마음을 털어 놓았지만, 그 때 느낀 감정은 아직까지도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어, 책의 글귀가 더욱 깊게 박혀져 왔을지도 모르겠다.
우울함이나, 슬픔을 겪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겪어본 적 없는 일을 어떻게 알 수가 있나. 그러다보니 슬프거나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과 거리감을 느낀다. 거부감 또한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들과 멀어지기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우울에 빠진 사람의 대인관계는 빠르게 정리되어 그나마 이해를 해주는 아주 약간의 사람들과만 교류하게 되고, 좁아진 대인관계는 또 다시 악순환이 되어 자신에게 타격을 주고 만다. 내가 경험했지만 나 역시도 각각의 다른 상황과 내용의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어라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빨간 나무”는 말한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라고, 그것은 빨간 나무, 곧 희망이며, 언젠가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괜찮아 질 것이라고.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겪었고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책에 표현된 것처럼 ‘마음도 머리도 없는 기계’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이 별거 아닌 거고, 바로 극복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말들은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힘든 사람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말이어서 듣기가 괴롭다. 지금이 너무나도 힘들어 그저 버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자신이 겪는 고통이 별거 아니라는 뉘앙스의 말이 고통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어떻게 들리겠나. 애초에, 크나큰 고통과 슬픔과 우울에 빠져 있는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 커다란 산을 넘을 수 있을까? 버티는 게 최선인 사람이? 그런 에너지가 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 것은 천천히 진행되어야만 하는 문제다.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바로 그림책 “빨간 나무”에서 나온 내용처럼. 그리고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버린다. 내가 겪은 일이지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 그림책을 보고 싶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림책이 주는 위안의 늪에 빠지게 되어버렸다. 진심으로 와닿는 위안과 격려였다. “빨간 나무”로부터 시작하여 나는 내가 힘들었을 때, 그래도 곁에 남아 나에게 많은 것을 도와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가르쳐주는 “이보다 멋진 선물은 없어”(페트릭 맥도넬 지음)와 같은 그림책들을 읽어나갔다. 이 그림책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격려의 시간을 주었다. 이처럼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그림책은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기다려줄 것이다, 그 마음 곁에서.
지금도 내게 다가오는 많은 것들에 내가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끝없는 자기 검열도 해야 하고,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내 마음에는 내가 키워낸 빨간 나무 한 그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Chapter
- 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양지영 / <흉터의 꽃>을 읽고
- 대상(학생부) - 이유빈 / <물컹하고 쫀득한 두려움>을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상미 / <영초언니>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장수민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금소담 / <꿈을 요리하는 카페>를 읽고
- 금상(학생부) - 변희주 / <빨간 나무>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동택 /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정유진 / <자존감 수업>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조영남 / <여행하는 인간>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오세영 / <안 읽어씨 가족과 책 요리점>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전대산 / <아몬드>를 읽고
- 은상(학생부) - 최다은 / <열일곱 살의 털>을 읽고
- 동상(일반부) - 강나리 /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영혜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유경 / <영초언니>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정원주 / <야행>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조영진 / <호모데우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명우 /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동상(학생부) - 박세아 / <땅이 통곡하는 한>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윤도완 / <꿈을 요리하는 마법카페>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형준 / <슈퍼 암탉 치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정다혜 / <내 친구 맹자의 마음 학교>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