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180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법
《자존감 수업》, 윤홍균, 심플라이프

정유진

 

  부정적 감정이 때론 독서의 원동력이 된다. 나의 경우 과장된 카피를 앞세운 자기계발서를 불신한다. 이는 편견에 가까운 뿌리깊은 감정이기에, 대개 강도 높은 비판 욕구를 일깨울뿐 진지한 독서로 이어지진 않는다. 《자존감 수업》이 내건 슬로건 역시 반감을 사기 충분했다. ‘자존감,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오늘부터 자존감 있는 삶!’ 짧은 시간에 영어를 정복할 수 있다는 어학실용서 홍보문구를 연상시키는 카피는, 암기할 영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어제 없던 자존감이 오늘은 불현 듯 생겨날것처럼 장담한다. 평소같으면 속임수라 단정하고 외면했을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실직’이라는 사적 정황이 작용했다. 어쨌거나 실업자라는 지위는 세간의 관점으로 행복감 저하, 자존감 하락의 대표적 외부요인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이 독서가 실은, 행복한 삶의 첫 걸음이라는 자존감 상승의 비기(祕技), 어디 한번 들어나보자, 하는 불손한 태도에서 출발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존감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밝힌 후,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버려야할 것들과 실천방법을 기술한다.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 매체에 언급된 사건,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자존감이 인간관계와 삶의 질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분석한다. 그러나 이때 분석은 심리학 전문가로서의 ‘학술적 해석’이라기 보다, 자존감 하락으로 인한 인생의 암흑기를 겪은 저자가 독자에게 경험적 차원에서 전하는 ‘조언’에 가깝다. 본격 심리학 서적이 아니라, 전문가가 쓴 비전문적 에세이라는 점은 《자존감 수업》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한층 용이하게 한다. 사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은 자존감에 대한 학술적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아 고통스럽고,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내면이 병들고 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누군가는 점집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책이 주는 배움의 효용성에 주목해 자기계발서를 집어 든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를 진단한 후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점성술과 자기계발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진단 단계에서 독자(혹은 청자)가 느끼는 열성적인 공감이 해결과 실천의 단계에 이르면 시들해지는 것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부분 역시, 3~5장에서 언급하는 자존감 하락을 부르는 부정적 감정과 태도였다. 이는 가족, 직장, 친구, 연인관계에 이르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아온 사례를 바탕으로 자존감 하락의 원인을 진단하기 때문에 마치 내 경험을 꿰뚫어 본 듯한 저자의 통찰력에 깊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의 세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감정이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자존감의 척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는 사랑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자존감 하락 원인은 대부분 ‘사랑받을 자격 여부’를 고민하면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런 성향은 대개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확장되고, 자신에 대한 불신은 손쉽게 타인을 향한 의존으로 전환된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겸손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깎아내리고, 남들의 평가에 의존해 중요한 일을 결정하려는 친구들이 있다. 결과는 대개 후회와 자책으로 끝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의 원인이 자기결정권 부재로 인한 책임 회피에 있다고 설명한다. 보통은 실패를 통해 미래의 행동지침이나 대처법을 배우지만, 자존감이 낮아 타인의 결정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자기합리화로 실패의 책임에서 도망치고, 경험을 통해서도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잘못된 습관이나 태도,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것을 ‘재건’하려면, 기존의 오류를 고쳐서 활용하고,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존감 수업》에서 제안하는 재건법은, 쓸모없는 부분은 ‘버리고’ 손 쓸 수 없이 망가진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타인과의 관계, 개선의 여지 없이 착취를 반복하는 직장생활,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열등감, 자책감 등과 결별하는 것. 2교시 수업을 들으려면 어쨌든 지금 듣고 있는 지루한 1교시 수업이 끝나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많은 것을 버리고 내려놓을 준비가 된 2교시 수업 참가자들에게 이 책이 펼쳐놓는 해법은 얼마나 믿음직스러울까. 당연하게도 비워진 마음으로 시작한 수업은 이제 채워넣는 연습으로 진행된다. 타인과 자신의 행복을 비교하면서 느끼던 열등감이 비워진 자리에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아는 낙관을 채운다. 자기비하와 자책의 빈자리에는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거나 멸시당하는 대상으로 특정된 인간은 없으며,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 한 나를 대신해 스스로를 사랑해줄 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새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불가능한 과업에 몰두하느니,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자신의 내면과 화해하는 것이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로운 일이다. 한마디로 저자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 의미없는 이타심을 버리고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라’가 자존감 회복의 궁극적 해법이라니,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치게 뻔하고 안이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책에는 자신의 현재상황을 긍정하고 사랑하기 위한 실천법이 몇가지 제시되기는 한다. 예를 들어, 낙관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걷기, 자기긍정 메시지를 혼잣말로 되뇌기, 물리적으로 스스로를 토닥이고 위로하는 나비의자법,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을 떨치고 현재의 과제에 집중하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 중 무엇도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안겨주지 못한다.
  《자존감 수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의 삶이 나아질 거라고 주장하는 대다수 자기계발서의 한계는, ‘남을 변화시키려하지 말고,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실체 없는 자기수련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달리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삶의 여유를 추구하고 싶어도 사회구조는 점점 더 경쟁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성취감을 느낄 때보다 약자의 위치에 놓여 부당한 대우를 받고 소외감에 시달릴 때가 더 많다. 내가 남을 존중한다고 해서 남이 반드시 같은 값의 존중을 되돌려 주는 것도 아니다. 이러하니,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뜯어고칠 힘이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저자의 말마따나, 당장 해결 불가능한 “문제의 근원”에 집착하느니, 타들어가는 내 마음의 현상태를 보살필 밖에. 나는 앞서 진단에 비해 공감도가 떨어지는 실천법에 대해 언급한바 있다. 만일 내가 《자존감 수업》이라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대신, 점술가를 찾았다면 현재의 역경(실직상태)을 타파할 강력한 부적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술적 토템에 기대는 심리 기저에는 효능에 대한 진지한 믿음보다, 내 손에 거머쥔 ‘실체’가 주는 위안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존감 수업》이 나에게 준 교훈은, 인생에서 고통을 완화시키고 위안을 주는 ‘부적’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적어도 남의 손을 빌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며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괜찮아’ ‘잘 될 거야’ 같은 일종의 주술적 자기최면이 불가피하다면, 남이 써준 답을 베개 밑에 숨겨두고 허황된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내 손으로 쓴 ‘희망’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거듭 학습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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