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영광독서 감상문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을 읽고
부산시 북구 덕천2동 이소희
... ....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목이 길긴 한데 반 토막이다. 호기심이 나를 불렀다. 17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나머지 문장을 이어 본 책이다. 왜 나에게 ‘남겨진 생이 단 3일밖에 없다면’이라고 묻는 걸까?
질문이 슬기를 부르는 때도 있지만, 어떤 질문은 사람을 ‘질문 그 자체’에 목을 매어 따라가게 만들어 버린다.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 - 후에 이어질 문장을 본능적으로 작성해보는 것이다. 나는 ‘3일’이란 말에 ‘어머나 어떡하지! 3일밖에 안된대!’하고 덜컥 마음이 흔들려 거기에만 오매불망 목을 매달아 버리는 게 아닐지.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긴장감에 더하여 ‘큰일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 짧은 시간 안에 되도록이면 많이, 빨리 해치워야 해.’라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조급함을 선사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급한 걸음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어찌 보면 그것은 너무나 허무한 질문이지 않을까? 정말 대부분의 경우(킬러나 자살계획 제외!)를 제외하고는 ‘3일밖에’ 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순간이란 없다. 17편의 글을 읽어보았을 때 그런 예외의 경우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현실에서 있지도 않을 가정을 들어 무려 17명의 사람들과 나 같은 독자들에게 마음고생을 시키는 걸까. 밉다!
솔직히 말해서 골치가 아팠던 만큼 심오한 결론이 있길 기대했다. 명사들은 죽음 앞에서 뭔가 심오한 것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거야. 아마 그런 기대 때문에 다소 실망어린 첫 읽음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17편 모두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망만 하고 덮어버리기엔 무엇인가 너무 아까웠다. 나는 무엇을 자꾸 바라는 걸까? 어쩌면 너무 초연해짐을 바라는 게 아니었나? (멋있는 명사들이라면 말이지! 하고 말이다.)
나는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이제 나도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이라는 반쪽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자, 나는 18번째 죽음을 받는 사람. 제일 먼저 비밀스럽게 써오던 일기뭉치가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진다. 물건의 처분에 골몰한다. 3일간 해 볼만한 것은 다 해보고 죽으려 발버둥 쳐본다. 어쩌면 그렇게 계획세우는 데에만 반나절이 꼬박 지나가버릴지도 모르겠다.
이미 시계바늘은 째각째각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싸늘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속이 탄다.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모두 극렬한 진실을 띄어야 할 것 같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시쳇말로 엑기스로 살다가는 거다. 그러다 순간 멈칫한다. 정말, 그 미뤄두어 아쉬웠던 것을 몰아서 다 해 버리면 마지막 순간 ‘제대로 끝나네!’하며 죽을 수 있다는 걸까? 계획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3일이라는 제한 시간보다 3일 동안 숨가쁘게 하는 행동이 더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무섭다. 무섭다. 거듭 무섭기 그지없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행위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낡은 충전 건전지 같은, 금속의 짜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3일이라는 시간, 소모되는 힘겨운 걸음걸음마다 내가 무엇을 느끼게 될는지. 즐거워야 할 행위들을 소모하면서 나는 짭조름한 비애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나.
구효서 님의 글처럼, 마침내 호미를 떨어뜨리고 상이 맺혀지지 않는 까무룩한 순간 내가 느끼는 것은 뿌듯함이나 담담함이 아닌....... 그것은 ‘피로함’이 아닐까! 나는 잠시 3일의 시간에 벗어나서 편한 현실에 몸을 맡긴다. 좋은 것 싫은 것을 분류한다. 무서움이 좀 덜해진다. 당장 어머니를 안아보고 싶다. 그런데 멀리 계신다. 퇴근하고 밤에 자기 전에 전화나 한 통 해봐야지, 하고 접는다. 통속적인 하루가 흘러간다.
3일이란 확정된 선고가 존재하지 않기에 나는 편히 생활한다. 평범하게 생활한다. 그리고 너무나 인색하게 생활한다! 모르긴 해도 3일 후 죽음이라는 선고가 내려진 세상 속의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단박에 어머니 계신 곳으로 달려 사랑한다고 말하며 숨 막히도록 껴안아 볼 것이다. 마지막에야 이렇게 하다니, 하면 왠지 모를 억울함에 울먹여 볼 일이다. 아마 이 책-17개의 목소리가 말하는 건 그러지 말라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마지막 순간의 심오한 깨달음 보단 그 전의 훨씬 넉넉한 나날속에서 조그마한 진실인들 일찍 깨닫길 원할 터이다. 그런 것이 앞 토막 10분을 보면 위기절정결말까지 두루두루 읊어댈 수 있는 통속적인 것이라 해도. 알면서도 못하는 일이 많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까지 다 합쳐서 하나를 말하는 모습, 책장을 넘기다 그만 콧날이 시큰해진 건 지금 나의 모습이 너무나 인색하게 평범한 까닭이다. 책이 말하는 것, 아니 17명의 사람들에게 한 토막의 문장이 던져졌던 건 가혹한 선고가 아니었다.
3일 동안 무얼 어떻게 잘 해볼까 하는 계획 세우기도 아니었다. 정말 여기서 이야기 하는 건, 뭐랄까, “3일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살아야하는 그 전의 길고 긴 삶에 관한 조언이라 믿는다. 질문은 죽음이었지만 답은 삶. 그리고 그 속에 푹 잠겨있어야 할 사랑. 살아있는 동안 여전히 일상에 젖어 고만고만하게 지내다 눈까풀 너머 망그러지는 세상, 한 사람 한 사람의 글이 회색 바람에 날리는 마른 낙엽처럼 머릿속을 스치운다.
정말이지 담담함으로 주욱 나아갔던 구효서 님의 모습, 재미나게(!) 알찬 시간을 모색했던 김지룡님의 모습, 비양도의 소금기 바람을 묻혀오며 실망스럽고 허무한 시간마저 하나의 과정일뿐이라 이야기하는 장우현 님, 그리고 많은 사람들....... 넉넉히 살아 있을 때 아낌없이 사랑하자고.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야 할 일이라면, 그 일상은 아낌없이 주위를 사랑함이 녹아들어 있어야 할 거라고. 3일이란 선고는 없어도 언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을 깊게 사랑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난리 법석이나 비통함보다는 아주 작은 아쉬움을 느낄 것 같다. 물론 그 이유는 얼마나 알차게 내 것을 챙기며 살아왔나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주고 살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나는 책을 덮고 다시 한 번 물끄러미 제목을 바라본다.
3일 후의 확정된 죽음 선고는 앞으로도 없을 일이다. 허나 그 반쪽의 문장, 17명의 크고 작은 목소리는 사랑에 인색한 일상에 적이 만족했던 나의 폐부를 찌른다. 잊지 말라고. 하루하루 죽음을 옆에 두고 사랑하라고. 17편의 글, 3일간의 생을 묻는 이 책에는 검은 죽음의 강물이 아닌 생의 뜨거운 핏물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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