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김영혜
“언니는 왜 결혼했어?” - 동생이 대뜸 물었다. 동생의 대학 동기가 비혼을 결심하자 그녀의 엄마는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동생의 동기가 엄마는 결혼을 하니 행복하냐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이내 표정을 바꿔 준비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왜 결혼을 선택했던 걸까? 진지한 얼굴로 물어오는 동생에게 나는 이렇다할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동생의 물음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때 눈에 들어 온 책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었다.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에서 뭔가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1. 보통의 존재가 전해주는 위로
도시 설계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라비는 업무로 커스틴을 만나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그녀의 태도에 호감을 느낀다. 커스틴 역시 감정표현에 있어 솔직하지 못한 자신과 달리 자유롭고 생기 있는 라비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결혼한다. 이야기는 그 후부터 시작된다. 커스틴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면으로 삭히는 방법으로 자기를 지켜왔다. 라비는 커스틴의 자기방어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위로가 필요할 때 커스틴이 보여주는 냉담한 반응에 위축되고 상처받는다. 연애 전부터,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해 스스로를 혐오하던 라비는 커스틴의 냉담함에 빈정거림으로 대응한다. 육아가 시작되면서 피로에 찌든 둘은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의 힘든 삶에 매몰되어 서로를 탓한다. 별 것 아닌, 그저 그런 일로 싸우는 생활 속에서 라비는 출장을 갔다가 로런이라는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 외도를 한다. 죄책감과 합리화의 줄타기에서 혼란스러운 라비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커스틴에게 ‘지루하다’며 독설을 내뱉는다. 이후 일상에서 사소한 문제에 날을 곤두세우던 둘은 심리치료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 상담을 통해 완벽함을 포기하고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된 둘은 둘 만의 휴가를 다녀온다. 휴가를 마친 후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라비는 완벽한 행복은 없다고 말한다. 행복은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오며, 우리는 그 짧은 행복 속에 만족을 누리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비는 카메라를 향해 씽긋 웃는다.
‘사랑’을 소재로 하는 소설의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이 책은 라비와 커스틴의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매우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책 전체 분량의 8할은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에서 서로 사고 싶은 컵의 디자인이 달라 말다툼을 한 후,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일화와 같이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뿐이다. 특이한 것은 이야기 토막마다 등장하는 상담가 ‘페어베어’여사의 목소리다. 페어베어의 심리학적 논평은 독자가 인물들의 생활에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분석은 독자의 삶에 적용된다. 책을 읽다보면 일단은 안심이 된다. 샤워 후,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았다고 신랑에게 격분하는 이 찌질함(?)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평범한 사람들인 ‘라비’와 ‘커스틴’이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똑같이 냉탕에 있다고 해서 내가 있는 곳이 온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냉탕에 있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다.
#2. 찌질함의 근원
소설의 핵심은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페어베어의 말과 그로 인해 성숙해져가는 커스틴과 라비에 있다. 결혼을 하고보니 가장 힘든 것은 상대의 눈흘김이 아니라 나의 치졸함이었다. 우리 부부는 주변에서 생각이 깊고 남을 배려해준다는 공통적인 평가를 받곤 하였다. 하지만 유독 서로에게는 유치하고 치졸하였으며 이는 서로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에 작가는 말한다. 사랑에서의 치졸함과 유치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인간이 생애 최초로 경험하는 사랑인 ‘부모와의 애착’에 초점을 맞춘다. 새가 눈을 뜨고 제일 처음 본 존재를 엄마로 각인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경험하는 엄마의 무조건적인 수용과 이해, 보살핌을 ‘이상적인 사랑’으로 되새긴다. 결혼생활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찌질함의 근원은 바로 이 ‘이상적인 사랑’에 있다. 낭만적이기만 한 사랑의 이면에는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는 나의 어리광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사랑에 대한 이상은 연인을 만나며 발현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도 완벽하지 않은 ‘한 인간’인 엄마가 주는 사랑이기에 허점이 있다. 우리의 양육과정은 완벽할 수 없으며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성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의 만남과 생활인 결혼은 완벽할 수가 없다. 완벽한 개인은 없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이해해주는 ‘완벽한 사람’도 없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과 살기에 다소 피곤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자에게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받고 줄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자 사랑의 특권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발언처럼 말이다.
#3. 낭만적이지 않은 일상에 대한 찬사
우리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다. 연예인 부부의 생활을 보여주는 예능에서처럼 창밖을 불꽃으로 수놓는 거대한 이벤트도, 넓은 집에서 유기견을 키우고,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며 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들과 캠프파이어를 하는 한적함도 보통의 존재인 우리 부부의 삶에는 없다. 우리의 삶에는 아파트 대출금과 밤이 늦었는데도 자지 않겠다고 자지러지는 딸아이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빨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인류의 영광이 ‘작고 미미한 우리의 일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때문에 이 ‘작고 미미한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힘은 과학의 발전이나 민주주의의 진보와 같은 거시적인 것도 있지만 개인이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며 회사를 나가고, 아이를 올곧게 키워 배우자와 안락한 가정을 일구는 미시적인 것도 있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일상에 작가가 보내는 찬사는 미미한 나의 생활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고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잠투정에 짜증이 난 아내를 위로해주고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러 가는 신랑의 일상에 찬사를 보내는 것 또한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결혼을 선택한 이유
결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사회 초년생이던 우리는 주로 버스를 타고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의 종착지는 대부분 우리집 앞이었다. 연애 초부터 나의 연인은 한결같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몸을 맡긴 채 한시간 반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일이 바빠 자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털레털레 돌아가는 그의 발자국을 가로등이 조붓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유난히 시리게 마음에 남던 날 나는 그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애 기간 동안 싸웠던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우리는 가정환경이나 직업, 성향이 비슷했다. 비슷한 우리가 이렇게나 서로를 아끼기에 그 누구보다도 알콩달콩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와 만나 마음을 같이하여 결혼을 하는 것은 기적이었다. 그런 기적 속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유지하는 데는 노력이 따랐다. 막상 부대끼며 살아보니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남자와 여자라서 달랐고 이과를 전공하고 문과를 전공해서 달랐다. 그리고 너였고 나라서 달랐다.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없어 우리는 싸웠고 실망했고 상처받았다. 결혼의 시작은 우리는 다른 연인들과는 다르며 특별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우리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지지고 볶으며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의 의미는 이런 반복적인 삶이 아니라 싸우고 헐뜯는 순간에도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마음에 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전경(前景)이기보다는 배경(背景)에 발을 딛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결혼생활에서 배우자인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아닌 전경으로 존재한다. 아마도 착각에서 비롯된 결혼생활을 많은 사람들이 유지해 나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모든 삶에서 내가 전경일 수는 없다. 스쳐가는 많은 인연들 속에서 하나의 삶에서만큼은 전경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고 있는 나를 무심하게 지나치는 행인들 속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가쁜 숨을 고르며 우산을 들고 나에게 달려와 줄 것이기 때문이다.
Chapter
- 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양지영 / <흉터의 꽃>을 읽고
- 대상(학생부) - 이유빈 / <물컹하고 쫀득한 두려움>을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상미 / <영초언니>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장수민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금소담 / <꿈을 요리하는 카페>를 읽고
- 금상(학생부) - 변희주 / <빨간 나무>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동택 /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정유진 / <자존감 수업>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조영남 / <여행하는 인간>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오세영 / <안 읽어씨 가족과 책 요리점>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전대산 / <아몬드>를 읽고
- 은상(학생부) - 최다은 / <열일곱 살의 털>을 읽고
- 동상(일반부) - 강나리 /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영혜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유경 / <영초언니>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정원주 / <야행>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조영진 / <호모데우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명우 /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동상(학생부) - 박세아 / <땅이 통곡하는 한>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윤도완 / <꿈을 요리하는 마법카페>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형준 / <슈퍼 암탉 치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정다혜 / <내 친구 맹자의 마음 학교>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