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자유의지와 알고리즘
-「호모데우스」를 읽고
조영진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허상이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다. 저자는 생명공학의 최신 발견들과 실험들을 소개하면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인류가 지어낸 허구적 상상이라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저자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이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인가?
역사는 분명 발전해왔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리고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류가 20세기에 한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는 것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저자가 역사의 발전을 위한 인류의 노력을 논하는 것이 모순으로 느껴졌다. 책을 계속 읽는다.
역사는 발전했다. 인류 문명은 진보해왔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 테러범, 범죄자의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오류는 없어 보인다.
「호모데우스」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핵심 개념은 ‘알고리즘’이다. 알파고가 인간 최고수 바둑 기사들을 연이어 꺾어 큰 화제가 되면서 ‘알고리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저자에 의하면 알고리즘은 알파고와 같은 기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며, 이 감정이 모든 포유류의 생존과 번식 활동에 작동하는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라고 말한다.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기계를 제어하는 알고리즘은 기계장치와 전기회로다. 인간은 감각, 감정, 생각이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긴팔원숭이가 바나나를 발견했는데 근처에 사자가 숨어 있는 걸 보았다. 긴팔원숭이는 배고프다. 사자를 보니 두렵다. 긴팔원숭이는 이런 상황에서 감각, 감정, 욕망의 폭풍을 경험한다. 이것이 긴팔원숭이의 계산과정이고 알고리즘이다. 계산 결과는 느낌으로 나타난다. 털이 쭈뼛 서고, 근육이 경직된다. 원숭이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결정한다. ‘바나나를 향해 진격하자!’ 물론 겁을 먹고 정반대의 결정을 하는 긴팔원숭이도 있다.
알고리즘은 모든 포유류와 조류의 삶을 제어한다. 인간도 배우자, 직업, 거주지 같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들을 감각, 감정, 욕망이라고 불리는 정교한 유기적 알고리즘을 통해 결정한다. 지금까지는 인간을 제어하는 유기적 알고리즘보다 뛰어난 알고리즘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보다 훨씬 오류가 적고 뛰어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점점 더 정교한 전자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있고, 결국엔 전자 알고리즘이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해독해 그것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하여 모든 사람에게 풍요, 건강, 평화의 보편적 표준을 보장하는 것이 20세기 인류의 목표였다. 21세기에는 불멸, 행복, 신성을 얻은 것이 인류의 목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새로운 목표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준 저 너머를 향하는 것이어서, 새로운 초인간 계급의 탄생을 예고한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인류가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데우스(HomoDeus에서 Deus는 신을 뜻한다)로 바꾸는 것이다.
정말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데우스로 진화하여 신적인 지위를 획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진화는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할 것인가? 유발 하라리는 그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한 발 물러난다. 자신의 예측은 인류가 21세기에 무엇을 추구할지에 관한 것이지, 인류의 추구가 실제로 성공할지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지식과 정보가 쌓일수록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어진다는 ‘지식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지식의 역설이란 우리가 데이터를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되는 것을 말한다. 카를 마르크스를 예로 이 개념을 들여다보자. 마르크스는 19세기 중엽에 탁월한 경제적 통찰로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 예측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탁월한 통찰을 품은 책이라는 걸 알아챈 자본주의자들이 이 책을 정독하였고, 마르크스의 분석 도구와 통찰을 차용했다. 그리하여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고 국민을 정치 체제 안으로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측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붕괴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예측은 그의 뛰어난 통찰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이 역사 지식의 역설이다. 행동을 바꾼 지식은 행동을 바꾸었기 때문에 용도 폐기된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가 뛰어난 통찰을 품은 책이라면 이 책을 정독한 자들이 여기에 제기된 많은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다. 그리하여 「호모데우스」에서 예측한 미래는 결국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본주의 역사를 말하고, 페미니스트가 가부장제 사회의 형성과정을 공부하고, 미국 흑인들이 노예무역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유는 미래 예측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다. 다른 운명을 꿈꾸기 위해서다.
기술의 진보는 생명체의 진화처럼 선택 불가능한 속성이 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인간은 기술을 구상하게 되면 그 기술을 구현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능력은 없어 보인다. 인간은 결국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초지능적 알고리즘을 개발해낼 것이다.
나는 이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내가 하는 모든 결정들이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하자. 인간의 내적 알고리즘보다 훨씬 뛰어난 외부 알고리즘이 등장하여 모든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그 알고리즘에 맡기게 되는 세상이 온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값싸고 효율적인 알고리즘 기계를 찾으러 다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되는 것일까? 나를 정말 섬뜩하게 하는 것은 나의 이런 질문과 의혹조차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데이터 처리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심호흡을 하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과거에서 해방되기 위해 노력한다. 학자들의 미래 예측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본다. 다른 운명을 상상해본다. 생물학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욕망이 내 속에 분명히 존재함을 느낀다.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다.
Chapter
- 제2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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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학생부) - 이유빈 / <물컹하고 쫀득한 두려움>을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상미 / <영초언니>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장수민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금상(학생부) - 금소담 / <꿈을 요리하는 카페>를 읽고
- 금상(학생부) - 변희주 / <빨간 나무>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동택 /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정유진 / <자존감 수업>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조영남 / <여행하는 인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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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상(학생부) - 전대산 / <아몬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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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일반부) - 강나리 /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영혜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서유경 / <영초언니>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정원주 / <야행>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조영진 / <호모데우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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