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522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읽고

'그냥 버스기사'가 태운 어마어마한 승객들

                           ​                                                                                                                                                    김지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노래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다가오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을 곱씹으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새삼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오늘 읽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도 그랬다. 단순히 버스기사가 일상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엮은 책 정도로 여겼는데,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저자의 생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운전하는 생의 버스에 잠시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그냥 버스기사’라고 써붙여 놓았다.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한 표현이다. 사실 버스에 올라탄 우리들도 그냥 승객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화를 통해 진정한 배려가 시작된다. 1인칭의 세계에서는 애초부터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을 아예 ‘그냥 버스기사’로 둔갑시키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버스기사의 행동패턴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올라탄 버스의 버스기사들이 왜 그렇게 화난 표정을 하고 있고, 행선지를 묻기라도 할라치면 왜 그렇게 퉁명스러운지, 왜 그렇게 정거장을 무시하고 달릴 때가 많은지를 등등을 말이다.
  버스는 흔하다. 버스기사도 참 흔하다. 그렇게 흔한 인생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냥 버스기사’는 이런 흔한 일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엮어지고, 또 상처나고 고장난 흔적들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여물어가고 아름다운 빛깔들로 채색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아무도 그저 그런 인생은 없게 된다. 모두가 어마어마한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을 종일 태우고 다님으로 저자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버스는 삶의 현장이다. 동공이 아리도록 매서운 추위에도 달려야 하고,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에도 달려야 한다.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새벽을 태우고 달려야 할 때도 있고, 퇴근길에 숨막히는 교통체증을 비집고 달릴 때도 있다. 그런가하면 사춘기시절의 손바닥만한 고민과 첫 소개팅의 두근거림과 회사에 첫 출근하는 사람의 긴장과 오래 전 연인과 걷던 거리를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회한이 고스란히 버스 곳곳에 묻어 있다. 버스가 오고, 버스가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버스를 타는 이 평범한 일상에 우리의 삶이 녹아 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암묵적 동의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요즘이야 교통시스템이 시각적으로도 잘 구현되어서 기다리는 버스가 몇 분 후에 올지 예측가능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버스가 오는 편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오겠지하며 버티는 것이다. 내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버스가 지나갔을지라도 어김없이 버스는 왔다. 버스는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세월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고, 헤어진 연인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버스는 늘 우리 삶의 언저리에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흔하디 흔한 ‘그냥 버스기사’가 있었다.
  저자는 버스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꺼내기 힘든 가정사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그리고 자신의 딸이 가진 장애에 대해서도. 멀리서보면 평범한 듯한 가장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모두가 아픈 사람들이다. 저자는 버스기사로서 겪는 고충만큼 집에서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생활반경 속에서만큼은 ‘그냥 버스기사’가 아닌 ‘진짜 버스기사’가 되어서 때로는 접촉사고도 일으키고, 승객들과 시비도 붙고 하게 된다. 무사고이면 좋겠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버스안팎으로 보이는 풍경들처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지난하게 펼쳐지는 현재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책을 덮고 지금껏 내가 만난 ‘그냥 버스기사’에 대해 떠올려 본다. 말없이 기계적으로 운전하던 그들에 대해 연민과 동시에 존경심이 일어난다. 내가 흔들리고 내가 무너질 때도 늘 변함없이 지속적인 패턴으로 생활의 지축을 떠받치던 사람들이다. 오늘 나는 버스에 오르며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그냥 버스기사’를 향해 고백할 작정이다. 그냥 ‘수고하십니다’라고. 그들이 아무 대꾸없이 멀리 창밖만을 바라볼 뿐이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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