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075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 메트로폴 호텔에서 강제수용소까지

                                                                                                                                                                                                                                                                       이상미

 

  나에게 러시아 문학은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두께에 압도당했던 ‘죄와 벌’의 주인공은 발음도 어려운 라스콜리니코프였고,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죽음을 파헤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앞으로 되넘기게 만든 세 아들의 이름은 드미트리와 이반, 그리고 알렉세이였다. 게다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던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에는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사랑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얽혀 있어서 인물관계도라도 그리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들의 결말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그 이유가 책의 부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무수히 등장하는 생소한 이름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나의 부족한 인내심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이들은 내게 정복하기 힘든 산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와중에 최초로 완독(完讀)의 기쁨을 안겨준 책이 바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처음에 어떤 계기로 이 소설을 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한창 입시 준비 중이었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그때의 감흥을 떠올리며 일부러 다시 찾아 읽었을 때에도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게 감동과 재미는 여전했다. 하지만 좀처럼 러시아 작가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웠던 나는 그러고도 한참만에야 두 번째 완독작인  ‘모스크바의 신사’를 만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묵직한 책을 대할 때마다 자꾸만 솔제니친의 작품이 떠올랐던 것은 두 작품이 시간적 배경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감생활의 어느 평범한 하루를 그린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작가의 실제 경험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45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던 것이 빌미가 되어 체포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수용소에서 무려 10년을 강제노역으로 보내게 된다. 그곳에는 슈호프 외에도 정치범으로 몰려 고위직에서 밀려난 전직 관료나 아버지가 부농이었다는 내력 때문에 끌려온 작업반장,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영화감독, 스파이로 내몰린 장교 등 악명 높았던 스탈린 시대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편, 슈호프의 10년형을 뛰어넘을 만한 형벌로 평생을 메트로폴 호텔에서만 갇혀 지내야하는 ‘모스크바의 신사’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 역시 볼셰비키 혁명 후 귀족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비운의 인물이다. 이런 로스토프 백작의 주위에도 어김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름을 빌려준 것이 자신의 목숨을 구제하게 된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의 원작자인 친구 미시카가 있었고, 가혹한 삶을 지탱하게 해준 벗들- 주방장 에밀, 지배인 안드레이, 재봉사 마리나-도 있다. 또, 사랑하는 연인 안나와 좁은 다락방에 웅크리고 있던 그를 호텔 뒤편의 무한한 세계로 이끌어준 니나, 그런 니나가 맡기고 간 딸 소피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 물론, 한결같이 적대적이었던 총지배인 비숍처럼 이전과 달라진 세상에서 마음껏 위세를 떨치고 싶은 무리들도 존재했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 계급인 슈호프와 태생부터가 달랐던 부르주아 로스토프 백작 사이에는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탈린 시대의 서막을 연 백작의 불행으로부터 그 종말의 끝자락에 자리한 슈호프의 고통까지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음 ‘빵과 평화’를 부르짖었던 레닌의 이상주의가 공산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스탈린의 급진 강경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혁명의 선봉장에 섰던 이들은 적이든 동지든 간에 자신들의 노선에 부합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숙청했다. 그래서 그들은 백작을 스위트룸에서 다락방으로 내쫓았고, 미식가였던 그를 고객들의 입맛을 돕는 웨이터로 변모시켰다. 또, 인간 정신이 담긴 시를 갈구하는 미시카를 시베리아로 끌고 갔으며, 열성적인 청년 단원인 니나와 니나의 남편을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한 세대가 지난 뒤에 강제수용소의 무고한 죄수들과 슈호프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렸던 순수한 이념이 권력욕에 의해 매몰되고 마는 현실을 지켜본 로스토프는 무산계급(無産階級)을 대신한 볼셰비키의 승리가 아무리 확고하다 해도 그들도 머잖아 연회를 열게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한다.  
   그렇다면 되풀이되는 탐욕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에 익숙해진 슈호프는 배급받은 빵조각을 작업장까지 몰래 숨겨 와서 허기를 달래고, 뜻하지 않게 동료의 수프까지 차지하게 된 오늘 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꾼이 마누라의 죽음을 맞을 때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듯이. 그런 의미에서 로스토프 백작의 일상도 슈호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니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스터키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까지 마음껏 누비고 다니고, 다락방 옷장으로 통하는 그만의 비밀서재를 마련하는 등 점차 절망의 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로빈슨크루스가 되어 갔다. 하지만 만능열쇠로 얻은 것은 온전한 자유가 아니라 슈호프의 빵조각이나 덤으로 얻은 수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순간, 백작은 무의미한 세상과 작별하기로 작정한다. 마침내 죽은 누이의 10주기를 기해 이 계획을 실행하려고 지붕 위로 올라섰을 때, 때마침 잡역부 아브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벌이 돌아왔어요.’라고. 노인의 이 한 마디는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아브람의 벌통에 모인 벌꿀에서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모스크바가 아닌, 고향 니즈니노브고르도의 사과나무 향이 났기 때문이다.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 꿀벌처럼 언젠가 자신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로스토프 백작은 수용소의 삶에 순응해가는 슈호프와는 달리 극적인 반전을 꿈꾸며 주도면밀하게 탈출극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방대한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다루면서도 막힘없이 읽히고,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근접하기 힘든 러시아식 이름들을 정감 넘치게 바꾸어버린 데 있다. 이 책에서는 백작에게 늘 버팀목이 되었던 ‘삼인회’ 멤버들은 물론이고 마지막까지 함께 한 연인 안나와 사랑스러운 니나와 소피야, 심지어 비밀과외의 대상이었던 공산당 간부 오시프조차도 아주 매력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특히, 오시프와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 ‘카사블랑카’는 적인 동시에 동무였던 한 남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였기에 무척 인상 깊었다. 그것은 비록 화합하기 어려운 사이였지만,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 이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비유와 암시였을 것이다. 게다가 로스토프 자신도 야비한 기회주의자 비숍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대신 망설임 없이 스탈린의 초상화에다 총구멍을 냄으로써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속박한 존재에 대해 멋있게 복수를 하지 않았던가!
   생전에 아버지가 아끼고 사랑했던 책이었지만 자신은 끝내 깊이를 알 수 없었던 몽테뉴의 ‘수상록’ 속에 구시대의 잔재인 기념주화를 가득 채워 소피야를 탈출시킨 것이나 핀란드 망명으로 위장한 뒤 안나와 함께 유유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무리는 통쾌하다 못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유쾌한 풍자가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가 비극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대낀 솔제니친식 극사실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먼 이국땅 어느 이방인의 판타지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세상 어디쯤에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 또 다른 어느 곳에서 로스토프 백작이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손으로 라벨을 떼지 않은 와인을 따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Chapter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