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도마뱀이 나타나는 협곡에서>
- '호랑이의 눈'을 읽고 -
금소담
데이비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잃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처럼 슬프고 절망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데이비가 그랬던 것처럼 씻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학교도, 사람들도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나와 아주 가까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주 개인적이고도 사소한 이야기이다. 여전히 이 이야기를 이렇게 얘기하기엔 조금 많이 힘들고, 또 아프지만 그래도 데이비가 그랬듯 ‘익숙’해 져야하기에 뭔가 오늘은 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
내가 사는 삶에서 죽음은 내게서 먼 것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사랑하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워낙 나이가 많으셨고, 멀리 사시는 할머니를 명절날이나 중요한 날에 일 년에 몇 번 보지 않았고, 내가 어린 나이라 그다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누군가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죽음은 나와 먼 것 같아, 항상 내게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까지의 나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꽤나 열심히 살았고, 사랑받았기에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우리 반 역시 그대로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3학년이 되는 것이 아쉬웠으나 설렜고, 행복했다. 새 친구들을 만나고, 친구들과 친해지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밝은 시간들이었다. 새 학년이 되고 두 번째 월요일이었다. 학교에선 갑자기 전교생을 강당으로 불러 모았다. 우리학교에는 행사가 잦았고, 항상 강당에서 행사를 했기에 친구들과 함께 오늘은 또 무슨 행사를 할지 기대하며 웃고 떠들며 강당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우리와 같이 설레고 기대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고, 마이크를 드신 교장선생님께서는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힘든 시간을 만든 말 몇 마디를 조심스레 꺼내셨다.
“3학년 몇 반에, 모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말을 들었지만,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옆 친구들을 붙잡으며 뭐라고? 걔가 뭐했다고? 라고 묻기 바빴다. 그런데 그 곁에서 그 친구와 친했던 친구들 몇은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그제야 상황이 판단되기 시작하며 강당에는 정적만 가득하였다. 사실을 알고 난 후의 모든 말들과 사건들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고, 두려워졌다. 그 친구는 내가 사랑하던 ‘우리 반’이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며칠 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그다지 친하진 않아도 말도 하고, 함께 청소도 하고. 근데 그런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다니. 그것도 스스로 말이다. 선생님은 분명 우리 곁을 떠났다는 말만 하셨지만, 학교 내에는 금세 소문이 퍼졌다. “아파트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대. 유서도 없었대. 교복을 입고 있었대.” 등이었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없다는 것이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두려웠고,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괜찮을 줄 알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드리기에는 여전히 어렸다. 사람의 ‘죽음’을 받아드리기에 어리지 않은 나이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혼란스러운 마음과 큰 충격에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뭘 해야 할지 처음으로 인생에서 혼란이 왔다. 내가 하는 것들이 옳은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그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나 역시 영향을 끼친 것만 같아 계속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나와 가까운 아이도 아니었고, 그 아이와 많은 것들을 함께 하진 않았지만 심지어는 그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조금만 더 잘 해주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지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진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들어서, 내가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욱 커져서, 다 내 잘못 같아서 그래서 너무나 미안해졌다. 그 아이의 행동과 그 결과를 알고 난 후, 일주일 정도는 정말 모든 것이 미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웃을 때마다, 친구들과 잡담을 떠들 때마다, 수업을 듣는 것도, 내겐 너무나 사소한 길을 걷는 일이나, 맛있는 걸 먹을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얘기할 때, 바이올린을 켤 때,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씻을 때, 그냥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지금 그 친구는 할 수 없는 것이니 너무 미안해졌다. 내가 조금 덜 행복했으면, 네가 조금 더 행복했을런지. 내가 네게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너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런지. 매일 밤을 눈물로 보냈고, 힘들다고, 무섭다고, 나를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부모님이 곁에서 함께 누워 이런 저런 말을 해 주셔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두려웠다. 미안했다. 사람들은 힘들어 하는 내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얘기했으나, 내겐 그 말이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들어도 여전히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다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마주한 그 친구가 없는 현실보다 더 두려웠던 건 그 친구를 잊는 것이었다. 내가 점점 무뎌지는 것도, 원래부터 없었던 친구처럼 다들 너무 안정적으로 잘 사는 게, 수학여행도 가고, 시험도 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 친구를 잊으면 그 친구에 대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 친구를 잊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자꾸만 잊어졌다. 나는 자꾸만 행복해졌고, 힘들었던 시간마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꽤나 오랜 시간동안 나는 내가 완벽하게 잊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죄책감이라도 잊지 않았을까. 좀 많이 무뎌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사실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하루는 나와 꽤나 친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중학교 때 자살시도 했었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는데 사람들이 미리 신고해서 에어 메트 위로 떨어졌어. 나 수면제도 많이 먹어보고, 손목도 여러 번 끄어 봤는데 안 죽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때의 공포와 죄책감과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어떤 반응을 해 줘야 할지, 내가 뭐라고 말 해줘야 그 친구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그 친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 나 역시 너무 많이 두렵고, 떨려서 딱 세 마디를 해 주었다. “A야, 그러지 마. 네 인생이 정말 중요하잖아.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그 친구에게 그리고 어쩌면 그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 말들 밖에 없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모두에게 그냥 괜찮다고, 그러지 말라고, 내가 널 많이 사랑하고 있으니 제발 힘을 내 달라고. 하루만, 하루만 그렇게 평생을 살아달라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드리기에 모두가 어리니까, 호랑이의 눈을 가진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눈을 뜰 수 없는 날이 될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더 힘을 내서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내일일지라도,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던 내일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대가 정말로 힘들다면, 당신 역시 당신의 눈을 떠 보길 바란다. 그 때, 당신은 호랑이의 눈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자전거를 타고, 헬멧을 쓰고, 도마뱀이 나오는 협곡으로 내려와 주길. 내가 그 곳에서 물을 들고 그대를 기다릴 것이니. 내가 그대를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 말할테니. 그대가 나를 찾아오는 그 길과 돌아가는 길, 그리고 그대의 인생을 축복하며 기도할테니 말이다.
Chapter
- 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김지혜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읽고
- 대상(학생부) - 김정우 / <새의 선물>을 읽고
- 금상(일반부) - 강윤정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상미 /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 금상(학생부) - 금소담 / <호랑이의 눈>을 읽고
- 금상(학생부) - 이동현 / <아들아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서유경 /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오창숙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정희연 /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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